천안함 관련

충격 증언, 천안함 작전관이 말한 사고 지점은 달랐다

道雨 2012. 7. 10. 12:16

 

 

 

       충격 증언, 천안함 작전관이 말한 사고 지점은 달랐다

 

[천안함 공판] 사고해역 수심 20m 내외… 합조단 주장 “46m”와 달라

 

조현호 기자 | chh@mediatoday.co.kr  

 

 

천안함 사고해역의 수심에 대해 사건당시 당직사관이었던 천안함 작전관이 “수심은 20m 내외였다”고 증언해 ‘북한 어뢰를 맞고 함미가 침몰한 곳의 수심이 45~47m’라는 국방부 합조단 발표와 크게 차이가 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수심 20m인 곳은 어뢰피격지점이라고 발표한 지점으로부터 크게는 2km 이상 떨어져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수심 20m인 곳 가운데엔 작전상황도상 ‘최초좌초’라 기재된 백령도 해안가도 포함돼있다.

 

또한 사고직전 천안함 후타실 CCTV 장면인 것으로 오인케 했던, 천안함 합조단 최종보고서 상의 사진에 등장하는 승조원 가운데 생존장병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보고서에 있는 사진은 천안함 사고 직전 상황은 아니라는 증언도 나왔다.

 

천안함 사고 당시 천안함 작전관이자 당직사관이었던 박연수 해군대위는 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재판장 박순관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에 대한 천안함 12차 공판에서 ‘사건직후 어뢰피격으로 판단한 이유’에 대해 “수심이 20m 내외였고, 수상 특이접촉물이 없었으며, 절단면을 확인한 결과 이런 피해를 줄 수 있는 것은 어뢰 뿐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사건직후 수심이 20m라 판단한 근거에 대해 박 전 작전관은 “배에 측심기가 작동하고 있었고, 그를 보고 판단한 것”이라고 밝혔다. ‘쾅’하는 소리가 나기 직전에 확인한 것이냐는 변호인측 신문에 그는 “(수심에 대한 상황을) 수시로 본다”고 답했다.

 

박 작전관은 ‘사고시간이 2010년 3월 26일 21시20분 이후’라고 판단한 근거에 대해 “매시간 30분마다 문자정보망을 이용해 기상보고를 하는데, 보통 5분 전에 미리 작성한다. (당직장병이) 문자정보망을 작성하는 것을 봤다”며 “그 시간은 내가 추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천안함 작전상황도에 박영선 민주당 의원의 천안함 항적자료를 기입한 것.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

 

또한 박 작전관은 천안함이 백령도 서남해안에서 A지점(21시05분)에서 B지점(21시09분)으로 유턴(변침)했다는 박영선 민주당 의원의 항적자료 상 위치를 사고 다음날 유가족에게 상황 설명을 했던 ‘작전상황도’에 적용할 경우, 천안함이 사고시각(21시22분)에 ‘최초좌초’(백령도 서방근해) 지점까지 간 것 아니냐는 변호인 신문에 “정확하지는 않지만 가능성은 있다”고 답했다. 지난달 최원일 전 천안함장이 밝혔던 ‘가능성이 있다’는 답과 동일했다.

 

 

박 전 작전관은 사고 당일 천안함이 경비구역에 대해 남동~북서 방향으로 변침하며 1시간 당 2회 정도씩 순환기동했으며, 기동 속도는 6~7노트(시속 12km)였다고 밝혔다. 이를 계산한 대략적인 항적의 총 길이가 6km 되느냐는 변호인의 분석에 대해 박 전 작전관은 “그렇다”고 시인했다. 사고당시 해상상태는 파고 2.5m 내외였으며 시정은 3마일이었다고 그는 전했다.
 

   
박연수 전 천안함 작전관(해군 대위)이 9일 오후 재판을 마치고 재판정을 나서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를 두고 신 대표의 변론을 맡고 있는 김형태 변호사는 “어뢰피격지점의 평균수심이 47m라는 것이라면 박 작전관의 수심 20m 증언은 사고지점이 전혀 다르다는 뜻”이라며 “국방부 합조단 보고서상 사고위치와 전혀 맞지 않음을 보여주는 증언”이라고 지적했다.

 

최문순 당시 민주당 천안함 특위 위원과 함께 지난 2010년 8월 백령도 사고 해역 탐사를 진행했던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는 9일 밤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당시 백령도 서방과 서남방쪽의 수심이 20m인 곳에서 함미 침몰지점(어뢰피격지점)인 수심 45~47m 지점까지는 적어도 2km 이상은 떨어져있었다”며 “어뢰를 맞고 6~7노트의 속도로 기동했다해도 10분은 걸리며, 어뢰에 맞고 엔진이 정지된 상태에서 표류한 채 그리로 간다는 것은 당시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강조류 상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어뢰맞은 자리가 20m 해역’이라는 박 전 작전관의 증언대로라면 침몰해역 수심이 45~47m라는 국방부의 사고지점 발표는 또 틀리다는 얘기”라며 “백령도 해역 탐사 때 조사한 바로는 오히려 작전상황도상 ‘최초좌초’라 찍힌 곳이 수심 20m 해역”이라고 지적했다.

 

 

   
천안함 함미

 

특히 사고당시 수심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는 천안함 당직사관이 사고해역 수심을 20m라고 증언한 것은 국방부 합조단의 보고서 내용을 반박한 의미이기도 하다고 이 대표는 의문을 제기했다.

 

 

이와 함께 이날 재판에서는 사고 순간 ‘꽝~꽈앙’(1~2초 간격)하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함수가 우현 방향으로 90도 각도로 기울어졌다는 국방부 합조단 주장의 진위도 도마에 올랐다.

박연수 전 작전관은 사고 순간 ‘쾅’ 하는 소리와 자신이 20~30cm 떠올랐다가 넘어졌고, 배가 순식간에 오른쪽으로 90도 각도로 기울어졌다고 증언했다. 특히 그는 “내 체감한 것으로는 그렇다”며 “우현쪽 바닥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반해 사고당시 천안함 함교 우현에서 견시업무를 했던 공창표 하사는 이날 재판에 나와 “(쾅하는 소리와 함께) 충격이 생긴 순간에 (함교쪽에 있는) 봉을 잡고 (발로) 난간을 받치고 있어서 튀어나가지 않았다”며 “(충격시 떠오른 것은) 못느꼈다”고 밝혔다.

공하사는 함수가 기울어지는 순간에 대해 “허벅지까지 물이 찼고, 기울어지는 과정에서 물이 빨리 들어왔다”며 “이광희 중사가 문을 열고 나오라고 해서 나갔는데, 우현에서 좌현으로 중앙문을 통해 좀 많이 밟고 가야 했다. 몇도인지는 모르지만 90도로 기운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한편, 천안함 최종보고서상에 사고직전 천안함 후타실에 최후장면인 것으로 오인할 수 있는 CCTV 사진 속 등장인물과 관련해 박연수 전 작전관은 “이 중 한 명은 김용현 병장”이라며 “마지막장면은 아니다. 이 사진이 녹화된 것의 마지막인지, 사고 1분전인지 모르겠으나 사고순간이라면 맞지 않다”고 밝혔다.

   
천안함 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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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보도 사실 뒤집은 증언 왜 그랬을까

  

유가족 이성잃게 만든 박연수 작전관의 증언

(서프라이즈 / 내가 꿈꾸는 그곳 / 2012-07-10)


천안함 사고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심정은 어떨까.

어제(9일)오후 2시 부터 서울중앙지법 서관 524호 법정에서 천안함 사건 제11차 공판이 속개됐다. 11차 공판은 방청객들이 입추의 여지 없이 방청석을 가득 메우고 취재진이 복도에 쪼구려 앉아 취재를 할 정도로 일반의 관심이 폭발한 공판이었다. 이 공판의 중요성을 보여준 공판의 모습이다. 이날 공판은 천안함 사건의 향방을 결정해 줄 중요한 공판이었는 데, 증인으로 출석한 당시 천안함 작전관 박연수 대위가 그 중심에 있었다.검게 그을린 얼굴에 상기된 표정 때문에 귓볼이 빨갛게 달아오른 박연수는, 증언 내내 변호인단과 방청객의 기대를 비켜가고 있었다. 이날 박연수의 증언을 통해서 본 천안함은 한마디로 '밥통해군'의 면모를 200% 드러냈다고나 할까.

박연수는 아시아경제가 보도한 최초좌초 위치를 전적으로 부인하는 한편, 천안함 사고 직후 <아시아 경제>를 통해 밝혀진 '최초좌초' 위치는 유가족이 이성이 잃은 상태에서 자의적으로 판단한 것이라 말해, 향후 유가족과 마찰을 피할 수 없게 된 한편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박연수의 증언으로 말미암아 언론이 오보를 한 셈이자, 22전대장 이원보 대령(최원일 함장 직속 상관)을 궁지에 빠뜨리고 말았다.

유가족 이용기 씨의 증언에 따르면 이원보 대령이 천안함 사고 브리핑에서 해군작전상황도를 펼쳐놓고 유가족을 향해 최초좌초 위치를 설명한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박연수의 증언에 따라 유가족 이용기 씨는 (이성을 잃은)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최초좌초 위치를 가공한 인물인가. 천안함 사건 재판이 시작된 이래 생존자들이 (재판과정에서)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 모습이다. 

*천안함 사고 당시 천안함의 작전관이었던 박연수 대위는 '최초좌초'라는 위치가 적시된 '아시아경제'의 보도 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나서는 한편, 박연수 자신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최초좌초 위치는 유가족이 이성을 잃은 상태에서 자의적으로 판단한 것이라 증언했다. 상식 밖의 일이 법정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아울러 이날 공판을 통해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고 있었다. 천안함이 사고 직후 즉각 90도 각도로 우현으로  쓰러진 게 아니란 점도, 박연수와 함께 증언에 나선 공창표 하사(사고 당시 당직)의 증언으로 밝혀지며 천안함 사건 재판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됐다. 뿐만 아니라 변호인단의 끈질긴 질문 끝에 베일 속에 가려져 있던 천안함의 항적이 어렴풋이 드러나기도 했다. 사고 당시 천안함은 백령도 서북쪽으로 이동하며 작전을 펼치고 있었고 작전반경은 대략 6km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박연수와 당직 하사 공창표의 증언 등에 따르면, 사고 당시 천안함은 눈을 감고 작전을 감행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천안한 함교 좌우현에 위치한 견시 업무 당직자들이 백령도의 위치 조차 식별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연수와 공창표의 증언 다수는 증인들이 (이미 드러난 사실 등에 대해)거짓말을 하거나 '모른다. 기억이 안 난다' 등으로  발뺌을 하기도 했다. 또 증인 두 사람 모두 (1번 어뢰(?)가 폭발할 당시)물기둥이나 섬광을 본 적도 없다고 말해 당시 합조단 관계자들이 가공한 <1번 어뢰>의 존재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었다.

아울러 피고인(신상철 전 민군합동조사단 민간위원)이 박연수에게 심문한 내용을 통해 드러난 사실에 따르면, 합조단의 <천안함 사건 보고서>는 급조되었을 뿐만 아니라 새빨간 거짓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합조단이 발간한 천안함 사건 보고서에서 이미 고인이 된 후타실의 승조원 중 '김 모 병장은 생존자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관련기사[천안함 제12차 공판] 함미 후타실 마지막 영상 속에서 생존자 확인 박연수는 신 씨의 이같은 취지의 질의 내용에 대해 "사고 순간이라면 맞지 않다. (신 씨의 말)에 동의한다"라고 말해 합조단이 발간한 천안함 사건 보고서가 명백한 거짓임이 드러나고 있었다.

이날 공판은 대략 2시간 4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으며, 변호인단과 증인의 열띤 질문과 답변으로 인해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는데, 눈에 띄는 대목이 박연수의 증언으로부터 나왔다. 박연수는 작심한 듯 유가족의 증언을 제 정신이 아닌 상태로 깔아뭉게며 최초좌초 사실을 부인하고 있었는데, 박연수나 공창표의 증언을 참조하면 천안함은 사고 직전 까지 근무자에게 이상징후가 발견되지 않았고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는 것이다. 천안함은 한 순간 사고를 당했다는 것이다. 사고 직후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유독 박연수가 확인해 본 천안함 절단면은 스스로 어뢰의 공격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박연수는 변호인단이 작전구역 변경에 대해 묻는 질문에 귀찮은 듯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상급부대의 위협 때문에 바꿀 수 있지. 임의로 못 바꾼다"

46명의 승조원을 앗아간 천안함 사건은 사고 직전 상급 부대의 지시에 따라 작전구역을 벗어나게 된 것일까. 박연수는 재판이 끝난 후 법정 앞에서 신상철 전 민군합동조사단이 건넨 명함을 뿌리치고 먼저 자리를 떳다. 앞 뒤 맞지 않는 증언 등 방대한 자료의 방청기는 따로 정리해 소개해 드린다.<계속>

 

내가 꿈꾸는 그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