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을 약으로 쓸 수 있다면
독을 품은 나무 주목
늘 푸른 상록의 주목이 있다.
주목은 겨울의 습기를 좋아한다. 우리나라보다는 우기가 겨울에 찾아오는 영국에서 아주 잘 자란다.
영국에서는 오래전부터 담장을 대신하는 생울타리로 주목을 많이 심은 탓에, 주목의 별명이 ‘킹 오브 헤지’(King of hedge·울타 리의 왕)일 정도다.
일반적으로 생울타리로 쓰이는 나무는 잎과 가지를 정기적으로 잘라주어도 다시 왕성하게 돋아날 수 있어야 한다. 주목은 이 능력이 탁월하다. 봄과 여름에 규칙적으로 잘라주어도 또 어떤 모양으로 잘라도 다시 촘촘하게 잎을 틔워 형태 잡기가 수월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서양 정원에서 흔히 보는, 식물을 깎고 다듬어 동물의 형상이나 문양을 만드는 토피어리(Topiary)에도 주목이 가장 선호된다.
반복적으로 잘라도 끄떡없이 잘 자라다니, 그 능력이 신비하다. 여기에 재미난 진실이 숨어있다.
주목은 잎과 열매에 독성이 가득하다. 이 독은 사람이나 동식물이 먹으면 목숨을 잃게 된다. 특히 사람에 의해 잘 잘리는 아랫부분의 잎이 독성이 가장 강하고, 동물의 손길이 잘 닿지 않는 윗부분의 잎은 상대 적으로 약하다.
이유가 뭘까?
여기에는 두 가지 해석 이 가능하다.
나무도 생각이 있어, 손이 많이 타는 낮은 부위에 독을 더 많이 품어 접근을 막으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잎이 잘려나간 뒤 상처 회복을 위해 수액을 뿜어내는데, 이 수액의 성분에 독이 있다고 하니, 자신에게는 상처 회복을 위한 치유제일 수도 있다.
주목의 음독 사고는 종종 있다.
영국에서도 기생충에 특효라는 속설을 믿고, 아이 엄마가 세 자녀와 함께 주목의 잎을 먹어, 전 가족이 죽음에 이른 경우가 있었다.
물론 사람들은 이미 잘 알려진 식용식물이 아닌 것을 먹을 확률은 거의 없기 때문에, 주목으로 인한 피해가 생각보다 많지는 않다. 그러나 양·말·소와 같이 풀을 먹는 초식동물이 주목 잎을 잘못 먹어 죽는 사례는 의외로 많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진실이 하나 더 있다. 독성이 가득한 주목 잎에서 추출한 성분이 유방암을 치료하는 항암제가 된다는 점이다.
한때 영국에서는 주목 잎의 독이 위험하기 때문에 이 나무를 어린이 놀이터에는 심지 말자는 법안을 만들려다 해프닝으로 끝난 적이 있다.
특정 나무가 위험하니 심지 말자는 법안을 통과시키게 된다면, 지구에는 땅에 심을 수 있는 식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식물이든 자신을 지키기 위해 혹은 많은 이유에 의해 독을 품곤 한다. 문제는 독성분 자체가 아니라 이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나이가 들면 세상살이가 녹록해질 줄 알았는데 그게 참 아니다!
매일 싸우고 부딪치고 맘 상하고, 그리고 본의 아니게 독기를 품는 나날이다. 몸 안에 나가지 않고 쌓이는 이 독들이 언젠가 가득 차서 내 몸을 먼저 치지 않을까 오히려 걱정이다.
그래서 가끔 생각해본다. 독을 독으로 쓰지 않고 약으로 쓸 방법은 없을까?
진정한 치유는 내 안의 독을 약으로 바꾸는 일로부터 시작되는지 모른다.
오경아 작가·가든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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