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용공(조작) 사건

남재준 해임은 검찰 수사의 선결 요건. 남재준을 누가 감싸는가

道雨 2014. 3. 15. 15:31

 

 

 

       남재준 해임은 검찰 수사의 선결 요건

 

 

국가정보원 증거조작 사건을 수사중인 검찰이 국정원을 압수수색한 데 이어, 국정원 협력자 김아무개씨에 대해 14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모양새만 보면 수사가 본궤도에 들어선 듯하다. 그러나 검찰이 공식 수사로 전환한 지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아직 국정원 대공수사국 수사팀의 인적사항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10일 국정원 압수수색 때도 수사에 필요한 압수물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다. 국정원이 철저하게 비협조적으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남재준 원장 체제의 국정원에서는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다. 남 원장은 국정원의 명예를 지키겠다며 국가 2급 기밀문서인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한 인물이다. 국정원의 정치개입 논란을 자초했지만 눈썹도 까딱하지 않았다.

 

국정원이 지난 1년 동안 대선개입 수사 과정에서 보여준 행태도 남 원장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검찰 수사팀의 출석 요구에 조직적으로 불응하는가 하면, 소환된 직원들도 묵비권을 행사하며 버티기 일쑤였다. 심리전단 직원들 명단과 아이디, 게시글 활동 내역 등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지난해 4월30일 국정원 압수수색 과정에서도 국가기밀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일부 자료 제출을 거부하기도 했다.

 

국정원 직원들의 수사 비협조는 개인적 판단에 따른 행동이 아니라 남재준 원장의 지시로 보인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을 이끌었던 윤석열 여주지청장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검찰 조사 과정에서 변호사들이 입회해 계속 국정원장의 진술 불허 지시를 반복해서 주입했다”고 밝힌 바 있다.

 

원세훈 원장 시절의 댓글 사건에 대해서도 이토록 철저히 방어막을 치는데, 자기 때 사건인 증거조작에 대해서는 오죽하겠는가.

중국대사관이 법정에 제출된 문서가 위조라고 밝힌 지난 한 달 동안, 국정원이 내놓은 사과와 해명이 모두 발뺌과 꼬리자르기뿐이었다는 걸 떠올려보면 알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뒤늦게나마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 하지만 사태 해결에 대한 실질적 조처는 하나도 취하지 않고 있다.

국정원은 대통령의 지시와 감독을 받는 직속 기관이며, 간첩 증거조작 사건은 박근혜 정권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남재준 원장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한 국정원 직원들은 계속해서 수사를 방해할 것이며, 검찰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진심으로 진실규명을 원한다면 남 원장을 해임해야 한다. 그게 검찰 수사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는 첫 번째 선결요건이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남 원장 경질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태도는 또다른 수사 방해일 뿐이다.


[ 2014. 3. 15  한겨레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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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재준을 누가 감싸는가

 

 

 

“5·16 혁명은 쿠데타이다”라고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답할 때부터 국가정보원의 앞날이 걱정됐다.

박정희와 김종필 등 일부 정치군인들이 민주정부를 뒤엎고 권력을 찬탈한 5·16을 ‘쿠데타’라고 정의하면서도 ‘혁명’으로 격상시킨 그의 이중적 사고방식을 보고는 정보기관의 정상화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원이 처한 시대적 과제는 분명했다. 대선 개입 등 이명박 정권에서 저지른 음습한 공작정치의 책임자를 가려내고, 조직을 해외 및 대북정보 수집 중심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박 정권의 초대 국정원장이 된 남재준이 ‘5·16=쿠데타’라고 한 바른 인식과 군 시절 별명이었던 ‘선비’의 정신으로 매진한다면 못할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5·16=혁명’의 사고를 따르는 행보를 했다.

 

심리전단의 인터넷 댓글 공작을 “개인적 일탈 행위”로 치부하고는 검찰 수사를 받는 관련자들에게 진술 거부를 지시했다. 기소된 직원들의 변호사비는 예산으로 냈다.

 

이뿐 아니다. 그는 국가기밀을 보호해야 함에도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국정원 직원의 명예”를 내세워 무단 공개했다. 오죽하면 외국 언론이 ‘기밀 누설자’ ‘정치적 선동꾼’이라고 국정원장을 조롱했겠는가.

그는 또 대화록에 엔엘엘(NLL·북방한계선) 포기나 양보라는 말이 전혀 없는데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엔엘엘을 포기하는 발언을 했다”고 해석했다. 여당 의원조차 국정원장이 이적행위를 한다고 비판했다.

 

당시 박 대통령이 국정원장 남재준을 경질하는 등 단호하게 문책했다면 어땠을까. 눈치 빠른 국정원 직원들은 이명박 정부 때와는 다른 방식의 길을 스스로 찾으면서 준법의식을 가다듬었을 것이다. 소중한 집권 첫해를 이전 정권의 대선 개입 문제로 허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문책은커녕 도리어 남 원장에게 상을 내렸다. 국정원 ‘셀프 개혁’을 주문하면서 칼자루를 그에게 쥐여줬다. 과도한 신념의 ‘전사’에게 힘이 실리자, 국가안보의 최전선에 있어야 할 직원들은 국내 정보 전선에서 계속 기웃거렸다. 마침내 상부의 입맛에 맞춰 재판 증거를 조작하는 불법을 저지르는 데까지 이르렀다.

 

국정원이 국민의 피땀으로 이룩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집단으로 전락하는 동안, 정보기관이 갖춰야 할 정보 능력은 바닥에 떨어졌다.

지난달 14일 중국 정부가 “국정원과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유우성씨의 중국 출입경기록 3건은 모두 위조된 것”이라고 밝힌 뒤에도, 국정원은 협력자 김아무개씨가 유서에서 “위조됐다”고 고백하기까지 무려 20일 가까이 문서가 진짜라고 공언했다.

 

정말로 진짜로 믿었다면 무능이 하늘을 찌른다. 알고도 그랬다면 최고의 대국민 사기 공작이다.

 

남재준 국정원이 이 지경인데도 박 대통령은 “(검찰 수사에서) 문제가 드러나면 반드시 바로잡을 것”이라며 또다시 문책 여부를 수사 뒤로 미뤘다.

수사에 비협조적인 국정원 태도로 볼 때, 남 원장에게까지 증거조작의 불똥이 튈 가능성은 없다. 댓글 사건 때 “철저한 조사와 사법부 판단이 나오는 대로 불편부당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국정원에 면죄부를 줬던 것과 똑같다.

 

조직 우두머리에게 지휘 책임을 묻는 것은, 개인에 대한 문책이기보다 그 조직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일이다. 따라서 국정원장을 그대로 두는 것은 국정원 직원들에게 지금 방식대로 일을 계속하라는 메시지다.

조직의 일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잘못이 드러나더라도 “개인적 일탈” “사소한 잘못”으로 취급될 것이며, 변호사비 등의 뒷감당은 걱정 말라는 신호로 읽힌다.

국가안보의 척후병들은 또다시 불법과 탈법의 관행이나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

 

김종철 정치부 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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