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 보고 만세삼창, 김무성의 '이상한' 독해력
영화 <암살>을 생각한다. 개봉 26일째이자 광복절 연휴 마지막 날이던 지난 16일 오전 11시, <암살>은 1050만 고지를 점령했다. 지난 17일까지 누적 관객은 1079만 명이다. 1050만 관객을 동원한 직전 '올해의 1위' <어벤저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를 제쳤다. 최동훈 감독은 <도둑들>에 이어 연이어 '천만 영화'를 배출해냈다.
그리고 <베테랑>은 개봉 14일째인 지난 18일 오전, 7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누적 관객은 700만691명으로 <암살>과 동일한 속도. 이른바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쌍 천만' 돌파 가능성이 유력해지고 있는 시점이다.
작년 여름 <명량>과 <해적 : 바다로 간 산적>이 각각 1761만과 866만 관객을 동원하며 '쌍끌이' 흥행을 과시했던 양상을 재연하고 있다.
무릇 흥행영화엔 당대 관객들의 욕망이 투영되기 마련이다. 예년처럼, 스크린 독과점과 수직계열화, 3대 배급 체인의 보이지 않는 담합 논란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암살>과 <베테랑>에 보내는 관객들의 심리적 지지선이 여느 거대 배급사 작품과는 궤를 달리하고 있다. 영화의 완성도와 더불어 '광복 70주년' 전후 나타난 여러 양상이 이들의 현실감을 드높이는 중이다.
<암살> 최동훈 감독의 역사적인 야심, 통했다
▲ 1000만 돌파 기념으로 배급사에서 공개한 <암살> 배우들 현장 사진. | |
ⓒ 쇼박스 |
최동훈 감독은 김원봉 역에 조승우를 특별출연으로 캐스팅했다. 짧은 분량임에도 눈길을 확 잡아끄는 캐스팅이 아닐 수 없다.
최동훈 감독은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인 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의도는 적중했다. <암살>의 인기를 도화선 삼아 의열단 단원이었던 '약산' 김원봉은 역사적으로 재평가받고 있다.
최동훈 감독의 '친일파 단죄'와 '독립군 재조명'이란 주제의식은, 감독 특유의 색깔을 잃지 않으면서도 광복의 의미를 되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암살>은 역사극과 액션드라마, 전지현·하정우·이정재 등 스타 캐스팅의 쾌감을 고스란히 간직하면서, 후반부 오롯이 주제를 강화하는 결말을 뚝심 있게 전개한다.
개봉 전 흥행엔 약점이 아니냐는 의문이 일었던 지점이 반대로 관객들에게 역사를 환기했다. 현실과의 조응을 불러일으키는 강점으로 작용한 것이다.
독립군에서 일본군의 밀정으로 변모한 염석진(이정재 분)의 법정 장면이 대표적이다. 최동훈 감독은 웃옷을 벗어젖히며 결백을 주장하던 염석진이 퇴장하는 법정 뒤편에 '반민특위' 반대를 외치는 민중들을 배치했다.
감독은 영화의 시작과 끝에 김원봉의 '아우라'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역사적 사실과 인물을 최대한 지시적이고 명시적으로 끌어 들이려는 그의 주제적 야심은 결말 부분에 응집돼 있다.
염석진과 같은 친일파를 단죄하고, 법정에 제대로 세우지 못한 역사의 울분을 영화로나마 풀게 해주겠다는 야심은 의미 있는 족적을 남겼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야심은 무늬만 '광복 70주년'과 같은 사회적 분위기에 정확히 꽂혔다.
신호는 대통령의 동생이 터트렸다. 한 일본 포털과 방송 인터뷰를 한 대통령의 동생 박근령은, 적극적으로 일본 정부의 행태를 두둔하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KBS 이인호 이사장은 "올해가 광복 70주년이 아니다"라거나, "김구가 과대평가 됐다"면서, 뉴라이트 계열의 주장 그대로인 "해방 70년, 대한민국 건국 67년 기념" 주장을 펼쳤다.
한쪽에선 홍영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처럼 친일파였던 선친과 조상들의 과오를 고백하고 사죄했다.
한편 반대쪽에선 친일파를 두둔하거나 재평가하자고 한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대표적이다. <암살>을 국회에서 관람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그는, 영화와 최동훈 감독이 가리키는 뜻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한 걸까.
어쩌면, <암살>이야말로 지극히 영화적인 동시에 현실적인 영화인지도 모르겠다. 친일파와 친일파의 후손들이 어떻게, 어떤 논리로 제 이득만을 취하는가를 생생한 캐릭터로 증명한다. 천만 관객이 관람한 영화의 틈새에서 마치 시청각 자료로 기능하는 듯하다.
그 사실을 '광복 70주년'을 전후해 터져 나오는 특정 인사들의 실없는 망언과 반역사적인 논리들이 확인시켜 주고 있다.
재벌이면 사면되는 나라의 범죄액션오락 영화 <베테랑>
▲ 영화 <베테랑>의 배우들. | |
ⓒ cj엔터테인먼트 |
<베테랑>은 <암살>을 능가할 정도로 직접적이고 화끈하다. 그래서 관객들의 열광의 온도도 훨씬 높아 보인다.
'어이'를 상실한 약쟁이 재벌 3세와 돈은 없어도 '가오'만은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열혈 형사. 끝 간 데까지 치닫는 두 남자의 대결을 그린 <베테랑>은 범죄오락 액션 영화가 현실을 반영하는 어떤 경지를 체험하게 해 준다.
일단 소재와 캐릭터 선정에서 류승완 감독은 작정한 듯 보인다. 한국 드라마에 넘쳐나는 백마 탄 재벌 왕자 캐릭터는 없다. 여자에게 비열하고, 사촌 형에게는 무뢰하며, 아랫사람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조태오(유아인 분)는 우리가 뉴스에서 접하는 '한반도의 흔한 재벌' 2·3세의 총합 판이다.
한국 국민이라면, 맷값 폭행으로 유명한 SK 그룹 최태원 회장의 사촌 최철원씨와, 폭행을 당했다는 차남을 위해 조폭을 동원했던 한화 김승연 회장, 그리고 롯데 일가의 막장드라마와 '땅콩 회항' 조현아의 교도소 내 특별대우 등, 재벌가 일원들의 활약(?)을 <베테랑>의 조태오에게서 발견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아니, 적극적으로 소환해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대척점에 노동자이자 한 아버지가 있다. 억울한 상황을 원청회사에 호소하기 위해 회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인 화물연대 소속 '운수노동자' 배기사(정웅인 분).
그는 SK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다 최철원씨에게 한 대에 100만 원 하는 맷값을 받고 야구방망이로 맞아야 했던 실제 화물연대 지부장을 모티브로 삼았다 볼 수 있다.
<베테랑>은 그 노동자가 사경을 헤매게 되는 자살 조작을 조태오가 벌이는 과정까지 그리며 극적 요소를 더했다.
영화 속에선 그 노동자를 위해 대신 싸우고, 죽도록 맞으면서까지 재벌 3세에게 수갑을 채우는 형사 서도철(황정민 분)이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네 현실에선 그 맷값 폭행 당사자의 사촌인 SK 최태원 회장이 8.15 특사로 풀려난다. 당사자인 대통령은 광복 70주년 기념행사 무대에 올라 환하게 웃을 뿐이다.
최태원 회장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횡령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던 중죄인이었다. 그렇게 우리 관객들은 극장으로 달려가 <베테랑>을 관람하며, '유전무죄 무전유죄'와도 같은 현실의 울분을 풀어내는 중이다.
그리고 여성노동과 재개발을 소재로 한 작은 영화 두 편
▲ 영화 <위로공단>과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의 포스터. | |
ⓒ 엣나인필름, CGV아트하우스 |
그리고 흥행 영화 두 편의 틈바구니에서 작은 규모로 개봉한 한국영화 두 편이 또 다른 현실을 반영하는 중이다.
(여성)노동과 재개발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와, 저예산 작가주의 영화라는, 전혀 다른 장르의 <위로공단>과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블록버스터의 계절에 당도한 필견의 문제작이다.
먼저 임흥순 감독의 <위로공단>은 박근혜 대통령이 천명한 '노동개혁'을 자성하고 반추할 수 있는 대안과도 같은 작품이다.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하기도 한 이 '예술' 작품은, 1970년대 여공부터 현재 감정노동자들과 캄보디아의 여공들에게 카메라를 가져간다. 그러면서 노동과 여성 문제에 대한 깊은 성찰을 이끌어 낸다.
일생동안 노동이나 월급 직업을 가져 본 적이 없는 대통령이 '노동개혁'을 말할 때, 우리(와 아시아) 여성 노동자들은 노동이 지니는 의미와 노동 환경의 부당함에 대해 토로한다.
안국진 감독의 데뷔작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이명박 대통령 시대의 절대 테제였던 '재개발 공화국'의 후일담과도 같은 영화다.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적은 수남(이정현 분)은 끊임없이 행복을 위해 "집을 가져야 한다"고 외친다. 그때마다 관객들이 확인하는 것은, 지난 수년 간 뉴타운에 매달렸던 우리의 자화상이다.
무산계급의 여성 노동자가 펼치는 복수극이 통쾌하기보다 씁쓸한 이유다.
배우 이정현의 열연이 돋보이는 저예산 영화는, 한국사회와 계급과 젠더 문제에 대해 통렬한 문제 제기를 가한다.
두 편과 비교해 <암살>과 <베테랑>이 흥미로운 점은, 사회적인 공분을 유도하거나 실화 사건을 모티브로 삼는 영화적인 시도가, 이제는 한 해 대형 배급사의 흥행을 책임지는 '텐트폴' 영화로까지 번졌다는 점이리라.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사회파 드라마들이나 사회적인 소재를 다룬 다큐멘터리들이 전자에 해당한다.
이러한 한국적 특성이 최동훈과 류승완, 두 젊은 거장들의 작품에 반영되면서, '쌍 천만'을 바라보는 흥행으로까지 이어진 셈이다.
그러나 이들의 흥행을 깎아내리려는 시도도 존재한다. 파급력이 큰 역사문제를 소재로 한 <암살>이 대표적이다.
<연평해전>과 달리 개봉 초반 <암살> 관련 기사를 전혀 내보내지 않았던 <조선일보>와, 팩트마저 틀린 형편 없는 칼럼으로 <암살>을 깎아내리려던 <동아일보>가 그 장본인이다.
그 외에도 <암살>이나 <베테랑>의 흥행이 탐탁지 않은 이들이 적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장강의 물결은 거스를 수 없는 법이다. 두 영화에 적극적으로 응원을 보내는 관객이 적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적어도 올여름 영화계 쌍두마차의 흥행은 영화계나 관객들에게 모두 특별한 의미로 남을 전망이다.
○ 편집ㅣ김준수 기자 |
[ 하성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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