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복지국가와 기본소득
일본에 사는 필자는 작년 6월 일본 정부로부터 40만엔을 받았다. 정부가 팬데믹 경제위기에 대응하여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모든 주민 1인당 10만엔씩을 지급한 것이다. 보통 때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작년에는 많은 국가들이 이와 비슷한 정책을 실시했다.
선진국 정부들은 작년 코로나 경제위기에 대응하여 국민총생산의 약 13%나 되는 재정을 쏟아부었다. 그중 현금지급을 포함한 가계와 고용 유지를 위한 지원 비중이 약 절반에 이르렀다. 물론 사람들이 그 돈을 모두 소비하지는 않았겠지만 경제위기로 생계가 힘들어진 이들에게는 단비와 같은 소식이었을 것이다.
하버드대학 라지 체티 교수의 연구는 미국의 저소득 노동자들의 고용은 아직도 위기 이전에 비해 약 20%나 낮지만, 소비는 정부의 지원 덕분에 이미 작년 8월 이후 코로나 이전 시기만큼 회복되었다고 보고한다. 반면 고소득 노동자들은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다.
한국 정부도 재난지원금과 고용안정지원금을 지급하며 국민들의 소득 보장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여러 경제학 연구들은 작년 5월 지급된 전국민 재난지원금이 추가적인 소비로 이어져 경제에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다고 보고한다. 재난지원금의 한계소비성향은 약 0.3~0.7로 보고되는데, 저소득층에서 소비진작 효과가 더 높았고, 분석 기간이 길수록 효과가 컸다.
비상한 위기는 비상한 정책을 필요로 하는 법이겠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특집기사에서 코로나 팬데믹이 복지국가의 전환과 확대를 촉진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미 여러 선진국에서 비정규직과 플랫폼 노동의 확대 등 노동시장의 구조 변화에 직면하여, 고용보험과 같은 기존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 문제에 관한 인식이 높았다. 그런데 팬데믹을 배경으로 경제적 충격과 위험에 맞서 이들의 삶을 보장하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해졌고, 이를 지지하는 여론이 높아졌다. 역사적으로 복지국가가 뿌리를 내리는 데 2차 대전이 큰 역할을 했듯이, 팬데믹이 그와 같은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
특히 정부의 현금지급을 배경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정책은 보편적 기본소득이다. 사각지대 없이 모든 국민에게 보편적으로 무조건 정기적으로 정부가 현금을 지급하는 계획이다. 미국에서는 앤드루 양이 민주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 주장했다.
한국에서는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국민 1인당 단기적으로 연간 50만원, 중기적으로 100만원, 장기적으로는 월 50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 제안은 정치인들 사이에 논란이 되었고, 대선에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의 기본소득안은 빈곤층에 대한 현재의 복지지출에 추가하여 소액의 부분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이다.
문제는 역시 돈이다.
이재명 지사는 연간 100만원을 주려면 52조원이 드는데, 절반은 예산 절감, 절반은 조세 감면을 축소하는 안을 제시하고, 더 많은 금액의 지급을 위해서는 다양한 증세를 이야기한다.
다른 이들의 기본소득 제안은 엄청난 규모의 소득세 공제를 축소하고 축소하여 재원을 마련하자고 주장하는데, 이는 곧 대규모 소득세 증세를 의미한다.
하지만 동일한 재원 마련이 가능하다면, 재난지원금의 경우처럼 가난한 노인과 같은 취약계층을 집중 지원하는 것이 재분배와 경제적 효과가 당연히 더 클 것이다.
이에 대해 기본소득 지지자들은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경우 세금 저항이 약해지고, 증세와 복지 확대에 대한 정치적 지지가 높아질 것이라 강조한다. 소위 재분배의 역설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부담이 커질 고소득층의 저항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기본소득이 아니면 증세가 과연 불가능할 것인지 의문이 남는다. 기존 복지제도의 선별과 사각지대 문제도, 실시간 소득파악에 기초한 소득 기반 전국민 고용보험을 확립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극복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기본소득론자들은 로봇의 확산으로 대량실업에 직면하는 미래를 우려하지만, 기술혁신이 대량실업을 낳는다는 주장도 근거가 희박하다.
따라서 현재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경제학자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 논쟁이 증세의 정치로 이어질 수 있다면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한국에서 증세는 기존 사회안전망의 확대와 강화를 포함하여, 팬데믹 이후의 어떤 새로운 복지국가의 구상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기본소득발 복지국가 논쟁이 더욱 뜨겁고 생산적으로 전개되기를 기대해본다.
이강국 ㅣ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85904.html#csidxee7a9fb70ed1c4e957b61debbacfa3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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