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여성가족부 '폐지론'이 감추고 있는 더 무서운 이야기

道雨 2022. 3. 22. 17:26

여성가족부 '폐지론'이 감추고 있는 더 무서운 이야기

[주장] 글로벌 젠더격차지수에서 156개국 중 102위에 오른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여성가족부와 성평등 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이번 선거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 공약은, 20대 유권자의 성별 투표 분리 현상에 불을 당긴 기폭제로 상징화되었으며, 당선 이후에는 최우선 공약인양 추진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하지만, 여가부 폐지에 대한 단순한 찬반 논란은 성평등 정책의 현주소, 그 안에 내포된 더 큰 사회적 과제와 쟁점들을 가리고 있다.


일부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여성가족부에 대한 공격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른바 역차별론의 핵심에는 페미니즘과 국가권력을 연결하는 세 가지 축이 있는 것 같다.

첫째, 여성가족부의 존재 자체가 국가권력이 여성(과 페미니즘)을 편향되게 지원하는 것이며, 둘째 특정 세력의 여성들이 고위직을 차지하는 것은 불공정하고, 셋째 이로 인해 피해를 입은 남성들이 있다는 주장으로 대중의 공감을 얻으려 한다.

 
모든 공공 정책이 그렇듯 누군가는 여성가족부의 정책을 비판할 수 있으며, 성별에 상관없이 그 목소리를 진지하게 경청해야 한다. 하지만 누군가의 박탈감을 공론장으로 끌어오고, 더 나아가 그 문제 해결을 위해 특정 부처의 '폐지'를 주장하려면, 막연한 불만이 아닌 분명한 근거가 제시되어야 한다.


여성가족부가 필요하다고 외치는 이유

양극화 사회의 그늘과 반감들을 선거의 불쏘시개로 활용하려는 정치적 흑심과는 거리를 두고, 여성가족부와 성평등 정책에서 과연 무엇이 문제인지 함께 '숙고'해 보기를 진심으로 권하고 싶다.

먼저, 여성가족부와 같은 정부조직 형태가 일반적이고 효율적인 것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UN 자료에 따르면, 성평등 정책 추진기구가 설립되어 있는 국가는 2008년 170개국에서 2020년 194개국으로 늘었다(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21년 보고서). 이처럼 성평등 전담기구 강화는 국제적 대세이며, 각국의 역사와 정치 환경에 따라 조직형태도 다양하다.

가령 독일은 가족⸳노인⸳여성⸳청소년부라는 부처 안에 평등국과 평등기회 담당관을 설치하는 형태라면, 스웨덴은 고용부에 고용부 장관과 함께 성평등⸳주택부 장관을 두어 성평등 정책을 집행하고 있다. 프랑스는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조직 변화가 잦은 편이지만, 1984년 이후 행정부 내 여성권리본부(SDFE)가 지속되면서 중심역할을 해왔으며, 장관의 성비 균형을 맞추고 있다. 요컨대 나라마다 다른 정치 제도와 관료제 환경에서 집행력을 확보할 수 있는 조직 형태를 정비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여성(가족)부는 잘 알려진 것처럼, 김대중 정부 시기인 2001년 1실 3국 직원 102명의 초미니 부서로 신설되었다. 과거 이름뿐인 자문기구(위원회)에서 벗어나, 조직과 집행력을 갖춘 성평등 전담 기구의 신설은 새로운 전환점이었다. 부처간 경쟁이 치열하고 칸막이가 높은 관료제 환경에서, 여러 차례 조직개편과 빈번한 예산 삭감, '존재감이 없는 부서'라는 낙인을 받기도 하였지만, 21년간 일관된 기구를 지속하며 나름의 경험을 축적해 왔다.

무엇보다 설립 이후 조직적 불안정성에 노출되어온 여성가족부를, 많은 여성 시민과 여성단체들이 거듭 필요하다고 외치는 이유를 주목해야 한다. 성평등 문제 해결을 위한 국가의 책임, 그 약속을 실질적으로 이행하는 전담 기구의 존재 의미는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의 어떤 국가도 하지 못한 일

  
둘째, 여성가족부와 성평등 정책이 특정 정당 또는 특정 여성단체의 입장에 치우친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지금은 거의 잊혀 졌지만, 최초의 문민정부인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추진위원회 여성정책소위원회는 이미 27년 전,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를 위한 10대 과제로 보육시설 확대, 학교급식 전면 실시, 공기업 여성고용 인센티브 도입, 여성관련 정부네트워크 구축 등을 제시하였고, 이러한 바탕 위에 1995년 여성발전기본법이 제정되었다. 이런 노력들은 민주화 이후 여성정책의 새로운 출발을 선언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더 나아가, 성평등 정책을 뒷받침하는 법과 제도들은, UN을 중심으로 국제사회가 추진해온 성주류화 프로그램에 기초하고 있다. 권력형 성폭력 사건 재판과정에서 널리 알려진 '성인지 감수성', 대선후보 토론에서 언급된 '성인지 예산'은 모두 UN이 회원국에 권고하는 성주류화 정책의 대표적 수단이다.

한국의 여성 정책은 많은 시민들의 헌신과 노력이 일구어낸 민주화의 바탕 위에, 때마침 1995년 UN북경여성대회를 통해 널리 확산된 성주류화 의제를 적극 수용하면서 결실을 맺은 중요한 사례이다.

남성중심 권위주의 정권이 위로부터 주도하는 경제개발 정책에 길들여진 관료제 안에, 보호의 대상으로만 여겨졌던 여성들의 사회참여와 인권 증진을 목표로 하는 중앙 부처를 설립한 것은 큰 의미가 있으며, 동아시아의 어떤 국가도 하지 못한 일이다. 여성차별철폐협약(CEDAW) 비준국으로써 한국 정부는 정기적으로 협약 이행상황을 국제사회에 보고하고 있으며, 유엔여성기구(UN WOMEN)와 같은 국제기구들은 아시아의 성평등 정책 확산에서 한국의 역할 확대를 기대하고 있다.
 


"구조적 차별 해소" 단순 논리로는 문제 해결 못 해

  
셋째, 여성가족부는 '역사적 소명'을 다했으며, 구조적 성차별을 따지기보다 개인 간의 문제해결을 개별적으로 잘 처리하면 족하다는 주장이 있다. 이미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성차별이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임을 진단하고 분석하는 많은 젠더 지표들이 생산되고 있다.

2021년 세계경제포럼(WEF)의 글로벌 젠더격차지수(GGI)에서, 한국은 전체 156개국 중 102위이다. 전체 순위보다 더 중요한 것은 4개 하위영역 지수인데, 한국은 건강(54위), 정치 세력화(68위), 교육적 성취(104위)에 비해 경제 참여 기회(123위)에서 매우 뒤처진 점수를 받았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성별임금격차는 2000년 41.7에서 2019년 32.5로 다소 줄었지만, 아직도 여성의 평균임금은 남성에 비해 32.5%나 낮은 수준이다. OECD 국가 평균은 2000년 17.7, 2019년 12.5인데,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는 OECD 평균보다 2.6배나 더 크다.

국제지표는 우리의 성평등 상황을 확인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지만 한계도 있다. 근본적으로 지표는 다양한 영역에서 나타나는 성별 격차를 하나의 수치로 요약한 것이므로, 나라마다 다른 환경이나 맥락을 생략하는 문제도 있을 것이다. 지표는 절대적 성적표가 아니며,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한 예로 한국의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 통계를 보면, 2020년 4973명의 피해자 중 81.4%는 여성, 18.6%는 남성이다(2020년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 보고서). 피해자의 8할 이상이 여성이니, 온라인 공간에서 여성이 쉽게 폭력에 노출되는 구조적 문제가 확인된다. 하지만 남성 피해자도 2할을 차지하며,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라고 한다. 남성의 디지털 성폭력 피해가 여성과 어떤 점에서 유사하거나 다른지, 어떤 차별화된 지원이 필요한지도 검토해야 한다. "구조적 차별은 해소되었으니 개인 간 문제만 해결하면 된다"는 식의 단순 논리로는 정책 현장의 다양한 문제들에 전혀 대처할 수 없다.

더욱이 개별 사안에 대한 대처란 결국 사후적 구제 절차를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방을 위한 정책, 그리고 피해 구제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평가하고 개선하는 피드백은 어떻게 할 것인가? 피해자의 관점, 전문가의 진단, 정책실무자의 의견 등을 종합한 논의와 검토가 필수적이며, 이 모든 과정에서 우리는 성별 차이의 구조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의 강고한 기득권 구조에는 오래 묵은 성차별 관행과 문화가 함께 얽혀있으며, 양극화가 심화되면 될수록 성차별은 또 다른 취약집단과 사각지대에서 표출될 우려가 크다.

 
마지막으로, 성평등 정책과 성주류화는 국가와 지자체의 역할과 미래 과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다른 정부 부처는 기능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는데, 여성가족부만 대상 중심이라 얼개가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 있다. 언뜻 논리적으로 보이지만, 국민의 입장에서 본다면 매우 안일한 이야기다. 디지털 시대, 생태‧기후 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에서, 일과 생활, 돈 버는 일과 돌보는 일, 삶의 질과 건강, 공적 차별과 사적 폭력들은 서로 얽히면서 상호작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코로나 위기 대응은 감염병 관리와 자영업 지원 문제에 집중돼 왔지만, 과연 코로나 시대의 젠더 문제는 없는 걸까. 어린이집과 학교가 문을 닫았을 때 재택근무를 하면서 자녀를 돌보아야 하는 여성들의 과부하와 고충, 2020년 한 해 사이 18세 미만 자녀가 있는 워킹맘 15만 6천명이 노동시장을 떠난 현실, 필수 돌봄을 담당하는 요양보호사⸳ 간호사⸳ 보육교사들이 살인적 업무 부담과 감염 위험이 극한에 이르렀을 때, 이들 중 대다수가 여성이라는 현실에 대해 어느 부처가 제대로 대처하였는가?

지구적 생태위기가 개인의 삶의 위기로 직결되는 시대, 노동시장과 가족형태의 급격한 변화로 여성과 남성이 함께 일과 돌봄을 감당하는 시대에, 부처간 칸막이를 넘어서는 적극적 조정과 협력 없이 어떤 정책 성과도 기대하기 어렵다.
 
새로운 문제와 다양한 입장들을 성평등 관점에서 조율하는 컨트롤타워, 집행력을 갖춘 성평등 전담기구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번 선거를 통해 정치적 효능감을 키운 젊은 시민들이, 어느 때보다도 크게 눈을 뜨고 성평등 정책의 미래를 지켜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