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임기말 대통령이 왜 사면권 행사하나

道雨 2022. 3. 24. 09:37

임기말 대통령이 왜 사면권 행사하나

 

 

미국은 대통령 사면권을 최초로 헌법에 명시한 나라이지만, 사면권 행사는 꽤 제한적으로 이루어진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4년 임기 동안 총 237명을 사면했고, 재선에 성공하여 8년 임기를 수행했던 아들 부시의 경우도 200명에 불과했다. 노무현 시기 3만7천여명, 이명박 시기 1만3천여명이 사면되었는데, 인구 규모까지 고려하면 비교조차 민망한 차이다. 또한 미국은 원칙적으로 형기를 모두 마친 범죄자에 한해 사면하는 정치 문화까지 정착되어 있다.

그런 미국이지만, 사면권을 ‘통제해야 한다’ ‘제한해야 한다’라는 논의를 불붙였던 사건이 있었다. 민주당 클린턴 대통령이 2001년 1월20일 재임 마지막날, 임기 종료 11시간을 남기고 140명을 전격 사면한 사건이다. 그는 재임 기간 8년 동안 총 459명을 사면했는데, 그중 3분의 1이 임기 마지막날 사면되었다.

직전 대선에서 공화당이 승리해 정권 이양이 확정된 시기, 별다른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바로 그 시점에, 클린턴은 권력분립을 무력화시키는 고도의 권력행위인 사면권을 행사했다. 이 비겁한 권력을 본 시민들과, 언론, 학자들은 분노했다.

분노는 임기 말 사면권 행사는 제한되어야 한다는 논의로 이어졌다.

2002년 발표된 논문 ‘대통령 사면권 행사의 현존하거나 가능한 제한들’에서, 대통령이 사면을 행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연방 상원의원 중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해당 사면을 철회시킬 수 있도록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담겼는데, 그 배경은 클린턴과 같은 ‘먹튀’ 사면을 막기 위해서였다.

2006년에 발표된 ‘대통령 사면의 망령’이라는 논문은 더욱 구체적으로, 대통령 임기 종료 전후에는 사면을 금지하는 헌법 조항을 신설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대통령의 사면권은 ‘고도의 정치적 결단’ ‘통치행위’ 등과 같이 치장되지만, 그 역시 헌법상 권한 행사이기에 당연히 헌법 내재적 원칙(법 앞의 평등, 권력분립 본질 존중 등)을 벗어날 수 없다.

문제는 대통령이 자의적으로 사면권을 행사했을 때, 어떻게 통제(제어)할 수 있는가이다.

대부분의 정치공동체는 두가지 방안을 공유한다. 탄핵과 선거(정치적 책임)다. 끔찍한 사면권 행사라면 바로 끌어내려야 할 것이고, 그 정도는 아니라도 권력남용이라 평가된다면 선거로 응징할 수 있다.

그런데 두 방안 모두가 불가능한 시점이 있다. 대통령 선거가 끝나 권력 이양을 앞두고 있는 임기 말. 임기가 곧 끝나는 대통령이기에 탄핵할 수도, 이미 선거 결과가 나온 마당에 정치적 책임을 물을 방법도 없다.

그래서 임기 말 대통령, 특히 대선 결과가 나온 이후의 사면권 행사는 안 된다. 책임질 수 없기에 권한 행사 역시 제한되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 대통령들은 이 책임의 공백을 알뜰하게 사용해왔다. 법 앞의 평등 원칙을 노골적으로 깔아뭉개는 정치인과 기업인들에 대한 사면은 통상 임기 말에 집중되었다. 정당을 가리지도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권교체로 대선이 끝난 2007년의 말일에 김우중을 비롯한 기업인 21명, 박지원, 한화갑 등 민주당 인사, 대통령 자신의 측근이었던 최도술 청와대 비서관 등 정치인 30여명을 사면했다.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직후 더 질 책임도 없던 시점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명박 사면 문제를 제안하겠다 했다. 여론은 비판적이지만,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차기 정부에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된다’ 등의 논평이 이어진다.

권력형 비리 중범죄자 이명박 사면이 불가한 이유야 넘치지만, 그중 논의가 많이 안 되는 부분이 ‘임기 말 사면권 행사’의 정당성이다. 책임질 방법이 없는 시점에서 예외적인 권력 행사는 자제되어야 한다. 선례가 있다고 정당성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정 하겠다면 차기 정부, 윤석열 당선자의 몫이다.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말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부담에서 책임이 생기고, 책임에서 권한이 생긴다. 당선자의 부담으로 권한을 행사하시고 그것에 대한 책임과 평가를 받으시라.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인정된 뇌물죄에서, ‘부정한 청탁’ 중 하나가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에 대한 사면이었다. 대통령이 재벌로부터 뇌물을 받고, 그 대가로 그 기업 총수에게 헌정사상 초유의 1인 사면을 했다는 것이 사법부의 판단이었다.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이 똥통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임재성 |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