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우크라이나 전쟁과 고개 드는 냉소주의

道雨 2022. 6. 27. 11:06

우크라이나 전쟁과 고개 드는 냉소주의

 

“우크라이나의 자유를 위한 유럽의 형제애를 믿어도 됩니다.”

최근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말이다. 이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폭적 지원을 앞다투어 약속하는 서방 지도자들의 발언과 맥을 같이한다. 러시아의 침공에 대한 국제사회의 적대감이 얼마나 높은지, 우크라이나의 비극에 대한 공감대가 얼마나 널리 퍼져나가고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서방의 적극적 지지에 대한 냉소주의 또한 함께 커지고 있다. 필자는 6월13일부터 이틀간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유럽연합-인도·태평양 국가 고위급 대화에 참석했다. 중국의 부상이나 국제 경제체제의 불안정 같은 이슈에 대응해, 유럽연합과 인도·태평양 국가들 사이의 협력을 모색하는 자리였지만, 화제의 중심은 단연 우크라이나 전쟁이었다. 특히 올해 마흔인 리투아니아 외교장관 가브리엘리우스 란즈베르기스의 다음 질문은 의미심장했다.

첫째, 서방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하고 유럽의 평화를 위해 러시아의 완전한 고립을 추진할 의지와 수단이 있는가. 둘째, 서방은 우크라이나가 원하는 승리를 위해 지원을 지속할 수 있는가. 셋째, 지금의 재래전이 핵전쟁으로 확전하는 것을 차단할 효과적인 방법이 있는가. 넷째, 전쟁의 장기화에 따른 서방 민주주의 사회의 전쟁 피로 증후군을 막을 수 있는가.

이들 질문은 우크라이나 사태의 내재적 딜레마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동시에 서방의 대응 태도에 대한 냉소주의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전쟁 시작 이후 서방 주요국은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라는 이분법을 기반 삼아 강도 높은 집단제재를 가하는 등 러시아의 완전한 고립을 모색해왔지만, 현실의 제약 또한 만만찮다. 우선 독일과 프랑스 같은 유럽의 주요 국가들이 러시아의 완전한 고립에 회의적이다.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이어온 헝가리, 세르비아, 터키, 이스라엘 등도 이러한 접근방식에 동의하지 않는다. 인도, 멕시코, 브라질, 남아공 등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민주주의 국가들도 중립에 가까운 태도를 보인다. 포괄적 반러 전선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은 배경이다.

 

‘상호의존의 무기화’라는 역설도 장애물이다. 제재는 에너지와 곡물 가격 폭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압박, 희귀 비활성 가스의 수출 제한 조치에 따른 공급망 차질 등 뜻하지 않은 결과도 함께 불러오고 있다. 더욱이 전쟁 초기 예상과 달리 러시아 통화가치나 주식지수는 오히려 회복세를 보인다. 강력한 대러 제재에 따른 이런 부메랑 효과는 러시아의 완전한 고립이 쉽지 않다는 방증이다.

 

전쟁의 최종 결과에 관한 접점 찾기는 더욱 어렵다. “평화협정이 아닌 승리가 목표여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면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돈바스 지역은 물론 2014년 러시아가 강제병합한 크림반도까지 되찾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다. 미국 등 서방 주요국은 사태 장기화를 막기 위해 적당한 선에서 전쟁의 조기 종식을 수용할 의지마저 내비친다. 우크라이나가 대러 평화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도록 하는 선까지는 지원하겠지만, 그 이상의 공세적 행보에는 부정적 메시지를 보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최근 발언이 대표적이다. 전쟁의 향방이 키이우가 원하는 대로 전개되기는 어려울 것임을 시사한다.

특히 핵 확전 우려는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직접적 군사개입을 가로막는 핵심 요소다. 서방의 전략적 목표는 우크라이나의 생존과 영토를 보존하고 러시아의 침략적 행위에 응징을 가하면서도, 동시에 핵 확전을 막고 전쟁을 조기에 종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최우선 전제는 핵 확전 방지다. 이를테면 키이우를 위해 뉴욕, 파리, 런던, 베를린을 희생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는 서방의 군사적 행보에 결정적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

그렇다고 전쟁의 장기화를 감수할 수도 없다. 4개월 남짓밖에 안 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소모적 지구전 양상으로 변화하면서 서방의 전쟁 피로감도 누적되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비롯한 경제적 피해로 인해 각국 대중의 관심은 빠른 속도로 잦아들고 있고, 유럽의 여론조사는 전쟁의 평화적 종식을 지지하는 의견이, 러시아를 응징하기 위해 전쟁을 지속해야 한다는 의견을 크게 앞서고 있다.

 

냉소와 회의의 확산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국제사회가 공언했던 단결의 한계를 예고한다. 이는 또한 각국이 자신의 냉정한 손익 계산에 따라 움직일 확률이 커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결국은 모든 플레이어가 현실주의로 돌아와 평화적 해결을 우선순위로 도모해야 한다. 전쟁의 끝은 외교적 타협일 수밖에 없다는 게 역사의 교훈 아닌가.

 

문정인 | 세종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