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나는 시민이다

道雨 2022. 11. 25. 09:03

나는 시민이다

 

 

*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대한불교조계종사회노동위,민변,참여연대 등 재난 산재 참사 피해자 단체,종교,시민사회노동단체 회원들이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유가족과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연대할 것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ahni.co.kr

 

 

 

 

나는 대한민국 시민이다. 대한민국 헌법과 법률에 따른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는 시민이다.

내가 헌법에 기반해 5천만 동료 시민들과 합의하고 있는 이 체제의 근본원리는 민주주의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부기관과 공직자는 마땅히 시민들 의견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이 체제가 여전히 민주주의일 수 있기 위해서는, 언제든 어디서든 그가 누구이든, 모든 시민이 우리 공동체의 모든 문제에 관해 자유롭게 의견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려면, 지금 이 순간 정부기관과 공직자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어야 하고, 동료 시민들이 서로의 생각을 자유롭게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내가 국가로부터 보장받아야 할 다양한 권리 가운데 으뜸은 공공의 정보를 알고 나누고 표현할 권리다. 그런데 지금 정부가 나의 이러한 헌법적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

 

나는 2022년 10월29일의 참사로 158명 시민이 왜 생명을 잃어야 했는지 알고 싶다. 참사 뒤에 정부가 왜 유족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영정과 위패가 없는 분향소를 차렸는지, 왜 공무원들에게 ‘근조’라는 글자가 없는 리본을 달게 했는지, ‘참사’ 대신 ‘사고’라는 표현을 사용하라고 했는지, 왜 유족들이 민간의 도움을 얻어 기자회견을 하기까지 아무런 공적 지원을 하지 않았는지 알고 싶다.

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국회에서 이미 가지고 있던 유족 연락처가 없다고 강변했는지, 왜 집권당 원내대표는 유족의 동의 없이 피해자 명단을 공개한 것이 ‘패륜적 행위’라고 비난하면서도, 이 정부 공직자들에게 유족에게 의견을 물으라고 단 한번도 요구하지 않았는지 알고 싶다.

무엇보다 이 정부의 공직자들은 왜 시민들의 이 당연한 질문에 제대로 된 답변 하나를 내놓지 못하는지 정말 알고 싶다.

 

지금 내가 ‘10·29 참사’에 관해 알고 싶은 것은 사적 욕구가 아니다. 내가 5천만 동료 시민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2022년 대한민국에서 정부로부터 어디까지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지, 이 정부의 공직자들이 나와 내 가족과 동료 시민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책무를 어디까지 인식하고 있는지, 인식하고 있었다면 왜 이 책무를 이행하지 못했는지를 판단하는 데 필요한 공공정보다. 그러므로 이 정부 공직자들은 내가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나의 질문에 성실히 답해야 할 책무가 있다. 이 책무를 당장 이행하기를 요구한다.

 

또한 <엠비시>(MBC) 등 언론기관과 언론인의 취재와 보도를 탄압하는 행위를 중단하라고 요구한다. 지금 이 정부 공직자들이 원하지 않는 취재와 보도에 대해 행하고 있는 행위들은, 시민인 내가 보장받아야 할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기에 그렇다.

나는 어떤 정보가 공익에 부합하는지 혹은 위배되는지 판단할 권한을 당신들에게 위임한 적이 없다. 대통령이 한 특정 발언이 공익에 부합하는지 부합하지 않는지, 언론사나 언론인이 그 정보를 공개한 것이 공익인지 아닌지 판단은 내가 한다. 우리 헌법 체제에서 공직자인 당신들이 할 일은, 내가 공적 정보에 자유롭게 접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일이다.

 

나는 전 한나라당 당원 김해호, 언론인 주진우·김어준의 일을 기억한다. 2007년 한나라당 당내 대선 경선에서 그 당 당원이었던 김해호는, 박근혜 후보와 최태민, 최순실 등의 관계에 관해 말했고,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으며, 징역형의 유죄판결을 받았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일가에 관한 의혹을 제기해, 공직선거법의 허위사실공표죄로 기소됐던 김어준, 주진우는 2013년 1심, 2015년 2심, 2017년 대법원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중요한 사실은 검찰의 기소와 재판 진행 여부 혹은 법원의 유무죄 판결에 관계없이,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의 관계가 이후 국정농단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특정 정보가 우리 공동체에 필요한 정보인지 아닌지 판단은 대통령이나 검찰, 법원이 아닌 내가 한다. 시민인 내게 필요한 것은 당신들이 나서서 선별해주는 정보가 아니라, 내가 정보의 진실성을 판단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정보가 자유롭게 제공될 수 있는 환경이다.

 

기자를 전용기에서 내쫓고, 기자실에서 내쫓아 달라고 요구하고, 전가의 보도처럼 압수수색을 휘두르는 행태는, 나의 알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로, 당장 중단하기를 요구한다.

 

 

 

서복경 | 더가능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