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계엄군도 ‘피해자’?…학살 책임자 생존땐 뭘 했나
1945년 8월6일 미국은 원자폭탄 ‘리틀보이’를 일본 히로시마에, 사흘 뒤 ‘팻맨’을 나가사키에 떨어뜨렸다. 두 도시에서 사망자가 20만명이 넘었다.
이로써 전쟁을 끝냈지만, 무고한 시민을 대거 희생시킨 원폭 투하는 관련자들에게 심각한 윤리 문제를 제기했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기 에놀라 게이의 주조종사였던 폴 티베츠는 2007년 92살에 숨질 때까지 ‘군인으로서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말했다.
나가사키 원폭 투하기 복스카의 부조종사 찰스 올버리도 같은 태도였다. 그가 2009년 사망했을 때, 그의 아내는 “100만명의 목숨을 구했다”는 생전 그의 생각을 전했다.
에놀라 게이에는 12명이 탔었는데, 부조종사 로버트 루이스는 심한 죄책감에 시달리며 심리 치료를 받았다. 피폭 때 외모가 손상된 소녀들을 위한 치료기금 모금을 돕기도 했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 편대기의 조종사 클로드 이덜리의 상태는 훨씬 심각했다. 방사능 피폭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된 그는, 1949년부터 아이들이 화염 속에서 비명을 지르는 악몽에 시달렸다. 수표 위조, 절도, 두차례에 걸친 자살 미수, 정신병원 수감 생활을 거쳐 1978년 60살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원폭 프로젝트’의 피해자일까?
일부 5·18단체가 특전사동지회와 함께 ‘1980년 광주에 투입됐던 계엄군도 피해자’라는 내용의 공동선언식을 19일 열었다. 전투복을 입은 채 5·18 국립묘지도 기습 참배했다.
선언문은 특전사 대원들의 행위가 “군인의 신분으로 명령에 따른 것이었다”며 “오랜 정신적·육체적 아픔을 겪어왔다는 점에서, 가해자로만 볼 것이 아니라 피해자로 바라보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행동은 몇가지 질문을 던지게 한다.
먼저 광주 희생·피해자들의 고통을 충분히 어루만져줬던가?
가해자가 누구기에 ‘피해자’ 주장을 광주에서 하는가?
전두환 같은 학살 책임자가 살아 있을 때는 뭘 했는가?
이덜리는 1960년 일본 국회의원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그동안 거의 8년을 병원에서, 그리고 짧은 기간을 감옥에서 보냈습니다. 감옥에서 나는 더 행복했습니다. 왜냐하면, 벌을 받음으로써 나는 죄의식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덜리의 말은,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사죄 없는 가해자의 고통 호소는 ‘2차 가해’일 뿐임을 웅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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