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장관·특전사단체, 학살 인정않는 '2차가해' 닮은꼴
이종섭 국방 "베트남 학살 국가배상 판결 수용 불가"
특전사 전우회, 전투복차림 5·18민주묘지 기습 방문
국민 신뢰 어떻게 얻나···머나먼 '군'의 과거사 정리
한편의 부조리극이라 해야 하나. 아니면, 초현실적인 상황이라 해야 하나. 지난 금요일부터 사흘 동안 한반도에서 동시에 벌어진 몇 가지 퍼포먼스가 쉬이 정리되지 않는다. 복잡다단하다는 말 외에 맞춤한 표현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국방부 장관은 국회에서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전혀 없었다"고 태연하게 말하는가 하면, 특전사 동지회 소속 2.5개 분대 정도가 전투복 차림으로 5·18 민주묘지를 밟았다. 일부는 군화를 신었다.
국회 국방위, 장관의 왜곡발언
국방부 장관 이종섭은 17일 국회 국방위에 출석해 열흘 전 "(베트남전 당시)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은 없었다"며, 전면 부인했다. 서울지법이 지난 7일 해병 2연대가 1968년 1월 베트남 꽝남성 퐁니 마을에서 벌인 민간인 학살사건에 대해 국가배상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질의에 "국방부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우리 장병들에 의해서 학살된 건 전혀 없다. 주월 미군 사령관 보고한 것 봐도 한국인 민간인 학살 없었다고 한다"는 발언도 내놓았다.
마지막으로 "파월 장병 명예 생각해도 그렇고, 사실 관계 따져도 그렇고, 엄중히 보고 있다"고 말했다.
장관 발언에 따르면, 국방부는 베트남인 학살 피해자 응우옌 티탄(63)이 2020년 4월 소송을 제기한 이후, 기껏 1968년 당시 작성된 몇 개의 문건을 토대로 "학살이 없었다"는 주장을 해온 게 분명하다.
명예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중요한 게 인권이다. 질의응답 과정에서는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의 수준을 가늠케 하는 내용도 있었다.
퐁니 학살과 함께 '미라이 학살'을 아느냐는 질문에 "잘 모른다.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해보겠다"는 답을 내놨다.
퐁니 학살 두 달 뒤 미군이 500여 명의 노약자와 여성을 학살한 미라이 학살은, 이미 미국에서 사법처리가 완료된 사건이다.
퐁니 학살과 미라이 학살은 모두 북베트남·베트콩의 구정 대공세 뒤 반격 과정에서 벌어진 참극이다.
'베트남전쟁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 네트워크'가 이 장관의 발언을 규탄하며 20일 내놓은 입장문은, 발언 하나하나가 얼마나 교묘하게 사실을 왜곡했는지 자명하게 보여준다.
우선 장관이(또는 국방부가) 보았다는 미군의 기록은 '학살이 없었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결론이 없음(conclusion:None)'이었다.
미군 기록은 한국군 학살 피해의 증거를 다수 첨부했지만, 동맹국 군대를 직접 조사할 수 없어 결론을 유보했을 뿐이다.
일국의 장관이 국회 공개 발언에서 명백한 왜곡 사실을 말해도 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국방부가 정녕 파월 장병들의 명예를 생각한다면, 명예를 입증할 증거를 수집했어야 마땅하다. 미국은 최소한 기록은 했다. 미라이 학살 뒤 반전 여론이 높아지자, 베트남전쟁범죄(VWC) 워킹그룹을 구성해, 320건의 전쟁범죄를 기록한 9000쪽의 기록을 남겼다. 국방부는 과연 무슨 조사를 했고, 무슨 기록을 남겼나.
이 장관은 또 "당시 상황이 굉장히 복잡했고, 한국군 복장이었다고 해도 (실제 한국군이)아닌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면서, '베트콩의 소행'이었을 가능성을 흘렸다. 이 또한 해묵은 궤변이다.
시민네트워크에 따르면, 파월한국군 전사를 보면 한국군이 피해 당시 피해 마을에서 소탕 작전을 수행했다는 사실이 대부분 확인된다. 정녕 그리 추측한다면, 한국군 전투사료에 베트콩의 민간인 학살 사례를 단 한건도 기록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시민 네트워크가 던진 질문이다.
한베평화재단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한국군의 학살을 기록한 위령비와 증오비, 집단 묘지 등 100여곳에 추도시설이 설치돼 있다. 이 장관 주장에 의하면 이 모든 '증오의 기록'들이 왜곡된 것이어야 한다.
국방장관은 발언 내용을 정정 또는 사과하기는커녕 19일 아랍에미리트로 날아가 국산 무기 판촉에 나섰다. "우리 무기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아부다비에서 열린 국제방산전시회에 참석하고 있다. 국방부는 20일 현재 서울지법 민사68단독(박진수 부장판사)의 1심 판결에 대한 항소여부를 결정하지 않고 있다. 1심 판결까지 3년 가까이 걸렸다. 국방부가 끝내 항소한다면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이종섭 장관은 임기를 마칠 확률이 높다. 시민사회가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문제를 쟁점화하며 진상조사를 요구해온 세월이 20년이 넘는다. 그동안 폭탄 돌리듯 이 문제를 회피해온 역대 장관의 전철을 밟게 된다.
5·18민주묘지, 군홧발의 특전사 전역병들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은 기실, 쿠데타 세력의 명령에 맹종해 국내에서 저질러온 학살과 연결된 문제다. 특전사 동지회 회원 25명이 지난 19일 광주 5·18 민주묘지를 군사작전하듯이 기습방문한 것은 역사에 길이 남을 '2차 가해'다. 공식 행사였음에도 특전사 홈페이지에는 20일 오후까지 이와 관련한 어떠한 공지도 없다. 공개 게시판에 '지금 광주는 여러분들의 동지들(의) 군홧발에 짓밟히고 있습니다'라는 글과 '5·18 민주화운동 부상자회 이충영'이라고 자신을 밝힌 분이 올려놓은 치떨리는 분노의 글 2편만 올라 있다. 두 글은 모두 전투복에 군화 차림으로 학살 피해자들의 영령이 잠들어 있는 묘지를 유린당한 치떨림을 기록하고 있다.
차제에 기회 있을 때마다 '군인의 명예'를 입에 올리면서 '망자(亡者)에 대한 예의'조차 차리지 않아온 대한민국 국방부의 흑역사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베트남전 한국군 실종자 문제다. 한국군은 베트남전 기간 동안 연병력 32만 4864명이 참전해 5099명이 전사·사망·순직했다. 그런데 실종자가 단 2명(국방부)이다. 기네스북에 올릴 만한 기록이다. 그나마 시신의 유해는 단 1구도 찾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찾으려는 노력조차 기울인 적이 없다.
북한이 지난해 12월 31일 당 전원회의 결정문으로 예고한대로 미사일 시험발사를 시작했다. 한·미는 예정대로 연례합훈을 앞두고 있다. 국내에서건 해외에서건 민간인 학살을 부인하는 군대, 실종자를 찾지도 않는 국방부. 이런 군대가 과연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겠나. 국방부 장관이 답할 질문이다.
김진호 에디터gino777@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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