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홍범도 '공산당 전력'이 문제라면 박정희 동상도 없애야

道雨 2023. 8. 28. 17:17

홍범도 '공산당 전력'이 문제라면 박정희 동상도 없애야

 

 

 

일본군 만주군 편중 한국군사 바로잡기 되돌리려

독립운동가 대신 그들 때려잡던 이를 기린다고?

육사 생도들에게 무엇을 보고 배우라는 것인가

 

*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카자흐스탄으로부터 귀환한 2021년 8월 15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국가보훈처 외벽에 '봉오동 전투' 홍범도 장군 추모 현수막이 걸려 있다. 2021.8.15 연합뉴스

 

 

1920년은 '특정한' 시기 아닌 한국군의 원년

 

육군사관학교 교정에서 홍범도 이회영 등 독립운동가 5인의 흉상을 철거한다는 뉴스가 국민들을 경악케 하고 있다. 그 자리에는 대신 독립운동을 토벌하던 백선엽 장군의 흉상을 세운다고 해서 경악은 분노로 이어지고 있다.

독립군 영웅들의 흉상을 독립기념관 수장고의 ‘보관’ 유물로 처박히게 하고, 그렇게 들어낸 자리에 백선엽을 한국군의 기원으로 모시려는 것이다.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관련 광복단체가 반대하자 주춤거리고 있지만, 국방부와 보훈부가 확고한 방침으로 밀어붙이는 상황이어서, 이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

 

5인의 흉상을 철거하려는 이들은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국난극복의 역사가 특정 시기에 국한되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며, "공산당 참여 전력이 있는 인물을 육사 교정에 둘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난극복의 역사가 '특정 시기에 국한되는' 문제가 있다는 바로 그 이유야말로, 이들 5인의 흉상이 육사 교정에 들어선 것의 배경이다.

해방 후 이승만 정권에서 대거 들어온 일본군과 괴뢰 만주군 출신들 중심으로 전개돼 왔던 것이 한국군의 역사였다. 그 왜곡된 역사가 조금씩 조금씩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가운데, 그 바로잡기의 하나로서 이들의 흉상도 세워진 것이다. 오랫동안 누락됐거나 소홀히 취급돼 온 한국군의 독립투쟁사의 기원이 복원되면서, 이들의 흉상이 한국군의 장교를 양성하는 학교에 들어선 것이었다.

 

국난 극복의 역사, 한국군의 기원은 여러 갈래다. 한국군의 역사 바로 쓰기는 한국군의 역사의 일부가 그 전체인 듯, 특히 일본군과 만주군 출신에 의해 왜곡돼 있었던 것을 바로잡는 과정이었다. 그 바로잡기의 한 결과가 한국군의 전사(前史)에서 신흥무관학교, 독립군, 광복군의 역사를 복원하는 것이었다.

 

홍범도 장군이 특히 그 상징적 인물이 된 것이나, 국난극복과 한국군의 기원의 하나가 된 해가 1920년인 것은, 항일무장투쟁의 역사에서 최고의 대목인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에서의 승리가 있었던 해이기도 하지만, 그 전년도에 출범한 상해임시정부의 군사적 법통이 봉오동-청산리 대첩을 이끌었던 북로군정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두 개의 전투의 주력이 됐던 것이 당시 확대 개편됐던 신흥무관학교였다.

 

군의 장교를 양성하는 사관학교의 기원이자, 대한민국 국군의 효시로서,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의 주역들인 홍범도 김좌진 이범석 지청천 장군과 신흥무관학교 설립의 주역 이회영 선생이 이렇게 육사 교정의 한자리에서 나란히 기려지는 것은, 사관학교 및 이들 사관생도들이 이끌 군의 뿌리와 자긍심을 일깨워주는 것이었다.

 

1920년은 결코 '특정한' 시기가 아니라 한국군의 원년이며, 그 당시로 끝나지 않고 지금에까지 이어지는 해이며, 항상적으로 기리고 되새겨야 하는 뿌리인 것이다.

그러므로 5인의 흉상 철거야말로 특정한 시기 편중의 해소가 아니라 거꾸로 특정하게 편중돼 온 한국군의 역사의 '정상화'와 복원을 막는 것에 다름아니다.

 

대신 그 흉상을 세우려는 백선엽은 정부에 의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공식 규정된 인물이다. 다른 정부도 아닌 이명박 정부 친일반민족행위자 진상조사위원회에 의해서였다. MB 정부를 되살리고 계승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에서 MB 정부 때 정부 기관에서 결정된 사실조차 스스로 부정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같은 자기부인을 하면서까지 육사 생도들에게 기어코 일본군과 만주군의 정신을 심어주려는 것인가.

 

특정 시기에 국한돼 있어 문제라는 해명이 얼마나 궁색한지는, 육사 교정에 세워져 있는 조형물들을 보면 금세 드러난다. 육사 교정 곳곳에는 '특정한 시기에 편중되지 않게' 이미 여러 시기의 동상과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한국전쟁 때의 영웅인 심일 소령 전공기념비, 6.25전쟁에 참전해 전사한 86명의 생도 2기생들을 추모하는 참전생도상, 1965년 월남 파병을 앞두고 수류탄 훈련 중 부하들을 구하려 산화한 강재구 소령상, 65년 건군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건군탑, 미 8군 사령관 벤플리트 장군을 기리는 상, 또 신라 화랑의 정신을 담은 화랑상까지 세워져 있다.

게다가 교정에 있는 육군박물관에 고대 및 근·현대 군사 유물 1290점의 유물들은, 한국군의 수천 년의 역사를 고루 보여주고 있다. 특정 시기 편중 주장의 허구성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 1일 서울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독립전쟁 영웅 5인 흉상 제막식에서 사관생도와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육사는 독립전쟁에 일생을 바친 홍범도, 김좌진, 지청천, 이범석 장군, 그리고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이회영 선생의 흉상을 탄피 300kg을 녹여 제작했다. 2018.3.1. 연합뉴스

 

 

 

고국귀환한 홍 장군의 유해, 다시 돌아가고 싶을 것

 

흉상을 철거하려는 이들은 홍범도 장군에 대해 소련공산당에 정식으로 입당한 전력이 있다는 것도 문제 삼고 있다. 고려공산당 내 이르쿠츠크파와 상하이파의 내분으로 발생한 ‘자유시 참변’(1921년) 직후, 홍 장군이 이끌던 부대가 소련군에 정식 편입되고, 1927년에는 공산당에 입당했다는 것에 시비를 걸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홍범도 장군의 일생을 담은 평전 <민족의 장군 홍범도>(이동순 영남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자유시참변 당시 홍 장군이 소련 공산당 편을 들었다며 빨갱이·배신자 등으로 매도하는 주장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 홍 장군은 참변의 재판관이 되어, 붙잡힌 동포들을 구출하는 등 수습하는 일을 도맡았다는 반증들이 나오고 있다. 설령 공산당 입당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걸 문제 삼는다면 일제하 항일독립투쟁사의 대부분을 삭제해야 한다.

 

역대 정부에서, 특히 보수정부에서조차 홍범도 장군의 공훈에 대해 시비를 걸지 않았던 것은 물론, 유해 봉환을 위해 갖은 애를 쓴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1962년 홍범도 장군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수여한 것은 박정희 정부 때였고,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에는 해군의 1800t급 최신 잠수함을 ‘홍범도함’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카자흐스탄에서 국내로 모셔 온 것은 문재인 대통령 때였지만, 일제 장교 출신이 대통령이었던 시절조차도 그를 민족의 영웅으로 기렸던 것이다.

카자흐스탄에서 세상을 떠나 그곳에 묻혔던 홍범도의 유해는, 지난 2021년 78년 만에 고국으로 봉환된 바 있다.

자신의 흉상이 철거되는 것을 지켜본다면, 그는 다시 카자흐스탄으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이 들지 모른다.

 

 

독립과 국방의 역사, 한 가지 색으로 쓰일 수 없어

 

한국의 독립과 국방의 역사는 결코 하나의 색, 단색으로 쓰일 수 없다. 여러 갈래, 여러 요인들이 어우러져 왔다. 그러나 이른바 사상 문제가 그 역사를 반쪽으로 만들어 왔다.

많은 경우 분명치도 않은 사상의 이름으로 억압당해 오고 누락돼 있었던 이름들을 찾아내 명예를 되찾아주는 것이야말로, 육사의 교훈(校訓)과도 같은 '위국헌신(爲國獻身)'의 정신에 부합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공산당 운운의 이유를 내세운 지금의 사태야말로 육사의 정신에 반하는 것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육사에서 흉상이 설치돼 있는 곳은 '충무관'의 앞으로, 이 건물은 이순신 장군 시호를 딴 것이다. '특정한 시기 편중'의 문제라면 이순신 장군도 임진왜란이라는 특정한 시기에 속하는 인물이어서 그 이름을 붙일 수 없다고 해야 할 것인가. 수도 서울은 물론 대한민국의 중심공간인 광화문 광장에 이순신 장군상과 함께 서 있는 세종대왕 동상 역시 조선시대라는 특정한 시기에 국한된 것이 아닌가.

 

세종대왕상은 편중된 시기도 그렇지만 그의 재위기의 사회정책들은, 윤석열 정부나 국힘당의 기준으로는 친공산당 정책으로 분류될 수도 있는 것들이라는 점에서 또한 문제로 삼을 만하다.

이 정권의 '공산당' 분류 기준으로는 세종대왕의 사회정책은 사회주의적인 성격이 짙은 것들이 많다. 그렇다면 그를 공산주의가 출현하기 이전의 공산주의자라고 할 것인가.

예수야말로 그의 말과 행적을 볼 때 공산주의자로 분류해야 마땅한 인물인데, 그렇다면 육사와 군에서 반공 교육을 위해 절대 용납돼서는 안 되는 인물이며, 예수를 받드는 교회는 군에 들어와서는 안 되는 것이다.

 

홍범도 장군에 대해 시비를 거는 이들의 논리대로라면, 누구보다 '안전'할 수 없게 된 것이 박정희 대통령이다. 홍범도가 그랬던 것처럼, 남로당에 가입했던 전력이 있는 박정희였다. 숙군과정에서 체포돼 무기징역형 판결까지 받았던 핵심적인 공산당원이었다.

그렇다면 박정희 동상도 철거해야 마땅할 텐데, 이 난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홍범도 흉상을 철거하려는 이들이 일관성을 보여줄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이명재 에디터promes65@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