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사를 둘러싼 사실과 거짓, 그리고 3가지 쟁점
윤 대통령, 종전선언-유엔사 해체 연계는 '가짜뉴스'
한국에서는 1950년에 시작해 1975년까지 매년 10월 24일 ‘유엔의 날’을 공휴일로 삼았다가, 1976년부터 기념일로 바꾸어 유엔군의 한국전쟁 참전을 기념하고 있다. 또한 부산에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유엔평화로(도로명)에 유엔기념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이토록 지극한 한국인의 유엔 사랑은 한국전쟁 때 유엔안보리가 군사원조와 유엔군을 파견해 한국을 도와줬기 때문이다.
유엔안보리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전쟁행위 중지’(UNSCR 82), ‘한국에 대한 군사원조’(UNSCR 83), ‘유엔군사령부 설치’(UNSCR 84)를 신속히 결의해 한국을 지원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의 ‘6.25전쟁 통계’에 따르면, 한국전쟁 때 유엔군 희생자는 사망 4만 670명, 부상 10만 4280명, 실종 4116명, 포로 5815명 등 총 15만 4881명이며, 이 가운데 미군이 13만 7250명으로 전체 희생자의 대다수인 88.9%를 차지한다.
유엔총회 유엔사 해체 결의, 조건은 다르나 결론은 동일
하지만 한국전쟁이 끝난 뒤, 유엔 참전국들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주둔한 미군과 군사정전위원회 필수인원만이 남고 모두 철수하였다. 그리하여 유엔군사령부(이하 유엔사) 사령관을 비롯해 간부 전원이 미군이 겸직하는 등, 한미연합사 창설 이전의 유엔사는 사실상 주한미군과 한 몸이었다. 그러다 보니 주한미군이 유엔기를 계속 사용하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1975년 11월 제30차 유엔총회에서 상반된 2개의 결의안이 채택되면서, 유엔사를 둘러싼 논란은 절정에 달했다.
공산측 입장이 반영된 유엔총회 결의 3390-B는 유엔사의 즉각 해체를 촉구한 반면, 서방측이 주장한 3390-A는 유엔사 해체의 조건으로 평화협정 체결 등을 제시했다. 두 결의안이 ‘조건’은 달랐지만, 유엔사 해체라는 결론은 동일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키신저 미 국무장관은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1976년 1월 1일 자로 유엔사를 해체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최종적으로 미국은 유엔사의 역할을 정전체제 관리와 전시증원 제공의 두 가지로 축소하는 대신, 기존에 유엔사가 맡았던 대북 억제력을, 한미연합사를 창설해 넘기는 대안을 선택했다. 유엔총회의 해체 결의에 따르지 않고 유엔사가 역할만 축소한 채 유지되자,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북한은 유엔총회에서 유엔사 해체를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고, 국내외 NGO들도 유엔 명칭과 유엔기 사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근년에 들어와 미국이 유엔사 재활성화를 추진하면서 새로운 논란이 만들어졌다.
최근 유엔사 문제를 다시 소환한 것은 다름 아닌 윤석열 대통령이다. 윤 대통령은 8월 10일 유엔사 직위자 초청 간담회를 갖고 “북한과 그들을 추종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종전선언과 연계해 유엔군사령부 해체를 끊임없이 주장한다”고 말하며, 유엔사의 역할과 관련해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할 경우 즉각 우리 우방군의 전력을 통합해 한미 연합사령부에 제공하는 등 대한민국을 방위하는 강력한 힘”이며 “한반도 유사시 유엔사는 별도의 안보리 결의 없이도 유엔사 회원국의 전력을 즉각적이며 자동적으로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 발언은 사실, 거짓, 쟁점이 뒤섞여
그렇다면 윤 대통령의 세 가지 발언 내용들은 모두 사실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나는 사실이지만, 다른 하나는 거짓이며, 또 하나는 여전히 논쟁거리인 사안이다.
첫째, 유엔사의 역할은 평시에는 정전협정의 관리자이고, 유사시에는 전투사령부인 한미연합사에 전시증원군을 편성하고 전장까지 보내는 전력 제공자(force provider)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한반도 유사시 증원 전력의 수용(R), 대기(S), 전방 이동(O)과 기존 전력-증원 전력의 통합(I)까지는 전력 제공자인 유엔사령관의 임무이며, 통합된 전력을 전방에서 작전통제(OPCON)하는 것은 한미연합사령관의 임무이다. 그런 점에서 유엔사가 한반도 유사시 우방국 군대를 통합해 전시증원군을 제공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둘째, 현행 유엔사는 유엔이 조직한 상비군이 아니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유엔이 미국에게 통합사령부의 조직을 요청해 창설한 군대이다. 국제법적 시각으로 볼 때 유엔사 해체는 유엔안보리의 새로운 결의 또는 미 정부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한반도 평화협정이 체결되더라도, 공고한 평화가 정착될 때까지 유엔사가 존속할 수 있다. 국제법상으로 효력이 있는 평화협정이 체결되어도 유엔사가 해체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정치선언에 불과한 종전선언과 유엔사 해체를 연계시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 발언은 명백한 가짜뉴스다.
셋째, 유엔안보리 결의 84호(UNSCR 84)에 따른 유엔사 전력 파견이 여전히 유효한지는 논란거리다.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의 파견은, 유엔의 무력사용 원칙을 규정한 유엔헌장 제7장에 의거해, 유엔안보리에서 UNSCR 84를 채택해 미국 주도로 통합사령부 구성이 이루어지고, 통합사령부가 유엔기를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아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유엔안보리 결의 당시 유일한 공산권 상임이사국인 소련이 불참한 데다, 찬성표를 던졌던 중화민국마저 1971년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대체되었다. 또한 1975년 유엔총회에서 서방측과 공산측 모두 유엔사 해체 결의를 통과시켰다.
이 때문에 UNSCR 84는 일부 유엔 회원국의 신뢰를 잃게 되면서, 국제법적 정당성이 크게 훼손된 상태이다. 윤 대통령의 말처럼 한반도 유사시 별도의 안보리 결의 없이 유엔사 회원국의 전력이 투입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국제적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미 정당성이 크게 훼손된 UNSCR 84를 근거로 유엔사 회원국의 전력이 투입된다면, 그것은 유엔안보리 결의 없이 미국 주도로 다국적군을 편성해 이라크를 침공한 것과 유사하다는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세 가지 사항 외에도 유엔사를 둘러싼 몇 가지 쟁점이 존재한다. 여기서는 대표적인 세 가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쟁점1: 유엔사 후방기지와 한일 군사협력은 상관없어
2014년 7월 15일 아베 총리(당시)는 일본 의회 답변 중에 “오키나와 미 해병대가 일본에서 나가는 것은 미·일 간의 사전협의 대상…일본이 양해하지 않으면 (미 제3 해병원정군이) 한국을 구원하러 달려갈 수 없다”고 발언해, 국내에서 논란이 벌어졌다. 이 발언의 의도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한국 보수파들은 유엔사 후방기지를 활용하기 위해선 한·일, 한·미·일 군사협력이 필요하다는 논리로 변질시켰다.
하지만 아베의 이러한 발언조차 사실과 다르다. 미국은 한국전쟁이 끝나자 ‘유엔‧일본 주둔군지위협정(UN-GOJ SOFA, 1954.2.19.)을 체결해, 요코다 공군기지, 요코스카 해군기지, 자마 육군기지, 사세보 해군기지, 가데나 공군기지, 화이트비치 해군기지, 후텐마 해병대기지 등 일본열도 7곳에 주일미군 유엔사 후방기지를 지정했다. 한반도 유사시 일본 정부의 동의 없이 자유롭게 전시증원군의 집결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위한 것이었다.
미국은 1960년 ‘미일 신안보조약’을 체결하면서, 사전협의 조항을 신설하여 주권국가로서 일본정부의 체면을 세워주면서도 “일본 내 7개 기지에 대한 사용권은 사전협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미‧일 안보조약에 관한 한국 관련 비공개 합의’(일명 Korean Minute, 조선합의서)를 만들어 예외장치를 마련해 두었다. 이는 주일미군은 물론 ‘유엔·일본 주둔군지위협정’을 맺은 유엔군 참전 11개국들이 일본정부와 사전협의 없이 통보만으로 일본 내 7개 유엔사 후방기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예외규정을 둔 것이다.
일본 내 유엔사 후방기지가 한반도 유사시 전시증원을 위한 집결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북한이 일본열도는 물론 오키나와 내 미군기지들을 타격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을 개발·배치를 마친 상태여서 유엔사 후방기지의 효용성은 예전 같지 못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유엔사 후방기지의 자유로운 사용을 위해 한일, 한미일 군사협력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은 명백한 가짜뉴스인 것이다.
쟁점2: 전작권 환수 없는 유엔사 재활성화는 기만행위
두 번째 쟁점은 전작권 전환과 유엔사 재활성화의 관계다. 재활성화 목적은 당초 전작권 전환과 연합사 해체에 따른 유엔사령관의 권한과 임무의 불일치를 해소하기 위한 데서 비롯됐다. 그 뒤 연합사를 존치하기로 했지만, 전작권 전환에 따라 유엔사령관을 겸직하고 있던 연합사령관이 미군 4성 장군에서 한국군 4성 장군으로 바뀔 경우, 전시증원(RSOI)을 담당하는 유엔사령관과 기존 전력-증원 전력의 통합된 작전통제를 담당하는 연합사령관이 불일치하는 문제가 남는다.
지금까지 한미연합사의 미군 장교들이 RSOI 임무를 담당해 왔지만, 한국군 4성 장군이 한미연합사령관이 되면 유엔사에는 별도로 RSOI를 담당할 장교들이 필요하게 된다. 특히 전시증원전력이 다국적군대라면, RSOI 담당 장교들은 다국적 출신일 필요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엔사 재활성화의 취지와 핵심 내용은 작전통제권의 한국군 환수로 연합사령관이 한국군 4성 장군이 되는 것을 전제로, 이에 대비해 증원전력의 RSOI를 담당할 유엔사 간부인원을 증원하고 다국적화하는 데 있는 것이다.
이처럼 유엔사 재활성화는 작전통제권의 한국군 환수를 전제로 한 것이다. 2014년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에서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에 합의하면서, 2019년 제1단계 기초운용능력(IOC) 검증평가를 마쳤지만, 2020년과 2021년에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한미연합지휘소 연습을 실시하지 못했다. 2022년 8월에 제2단계인 완전운용능력(FOC) 검증평가를 실시해 한미 SCM에서 승인을 받았다. 제2단계 전작권 전환 훈련은 문재인 정부 때 결정되고 준비된 것으로, 시기적으로 윤석열 정부 때 실시된 것뿐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한국군의 전작권 환수에 별다른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서, 2023년 8월에 실시했어야 할 제3단계 전작권 전환 훈련을 건너뛰었다.
신임 신원식 국방장관 내정자는 2019년 극우 매체에 나와 “북핵 폐기 후에 전작권 전환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며, 한국군의 전작권 조기 환수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전작권 전환과 유엔사 재활성화가 북핵 위기를 감안해 추진된 것이라는 점에서 작전통제권의 한국군 환수가 이뤄져야 한다. 윤 정부가 전작권 전환을 추진하지 않을 거라면, 유엔사 재활성화 작업도 원래대로 복원해야 마땅하다.
쟁점3: 유엔사는 동북아판 나토의 모태가 될 것인가
2003년 1월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이 주한미군 사령관에게, 유엔사를 유엔사 회원국뿐 아니라 더 많은 국가가 참여하는 전력제공자 기능을 보강하라고 지시하면서, 유엔사 강화론에 불을 지폈다.
그에 따라 2005년부터 한미 연합군사연습에 유엔사 회원국들이 비공식적으로 참가하기 시작했고, 2010년 한미 SCM에서 “필요시 유엔사와 전력제공국들을 연합연습에 참여시킨다”는 내용의 ‘한미 국방협력지침’에 서명함으로써 공식화됐다.
유엔사 재활성화에 따른 유엔사 강화론에 대한 최대 의혹은, 미국이 한국군에 작전통제권을 이양하지 않고 쥐고 있으면서, 지원사령부인 유엔사를 동북아 작전사령부로 탈바꿈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전쟁, 이라크전쟁,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에서 다국적군을 편성해서 전투를 치러왔기 때문에 이러한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은, 한반도 유사시 미군만으로 이뤄진 전시 증원전력 구조에서 탈피해 실질적인 다국적군대로 만들려는 데 있는 것이지 전투사령부를 만들려는 게 아니라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핵무력정책법을 제정하고, 헌법을 수정해 핵무력 발전을 명시하면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 북한이나, 핵보유국인 중‧러가 개입된 전쟁일 경우엔, 한국군이 단독으로 전쟁을 수행하기에 역부족이다. 핵전쟁의 위험성이 내포된 현 동북아정세에서, 미국은 한국군에게 전작권 이양하는 데 소극적일 수밖에 없고, 한미연합사의 작전범위 등을 고려할 때, 전력제공자인 유엔군 사령관에게 작전통제가 위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일각에서 제기한 유엔사령부의 작전사령부화라는 우려가 현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유엔사의 움직임은 이러한 의혹들을 증폭시키고 있다. 한국군은 유엔사 접수국(host state)으로 유엔사 연락단을 운용할 뿐, 회원국(전력제공국, sending state)이 아니다. 그런데도 유엔사 홈페이지에는 한국군을 유엔사령관 지휘하에 있는 유엔사 회원국 명단에 넣어놓았다.
또한 2018년 6월 미 합참이 ‘유엔사 관련 약정 및 전략지침’을 개정해, 전력제공국의 정의를 ‘유엔안보리 결의에 근거해 유엔사에 군사적·비군사적 기여를 하였거나 할 국가’로 확대했다. 이제 일본이 유엔사 전력제공국에 들어올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윤석열 정부에 들어와 한미일 정상은 프놈펜(2022.11.13)과 캠프 데이비드(2023.8.18)에서 만나 두 개의 공동선언과 3개의 문서를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한미일 3국의 연합훈련 정례화와 미사일 경보정보의 공유, 증강된 미사일방위(MD)에 합의했다.
이러한 한미일 3국 군사협력의 진전은, 유엔사의 다국적 통합사령부 추진과 맞물려, 동아시아 안보지형에 커다란 지각변동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는 다가오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는 눈감은 채 공허한 이념 타령만 늘어놓고 있다.
조성렬의 전략노트mindle@mindlenews.com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s://www.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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