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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정부 추락, 보수 정부의 무능

道雨 2023. 11. 23. 09:29

전자정부 추락, 보수 정부의 무능

 

 

 

지금의 전자정부 기틀을 놓은 건 김대중 정부 때다. 김 대통령 지시를 받은 김성재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이 마스터플랜을 짜서 2001년 전자정부특별위원회를 설치했다.

김성재 당시 수석은 “전자정부를 추진하려니 부처의 저항이나 소극적 태도가 많았다. 그걸 김 대통령이 ‘한번 뒤처지면 다시 따라잡을 수 없다’며, 의지를 갖고 힘을 실어줬다”고 말했다.

 

1999년 37만 가구에 불과했던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가 2002년 10월엔 1천만 가구를 넘어섰다. 그 결과 2002년 11월 전자정부 단일창구(G4C)를 통한 민원 서비스가 문을 열었다.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와 건설교통부, 대법원 등 주요 기관이 보유한 행정정보의 공동 이용 체계를 이때 구축했고, 일반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온라인 민원서류 발급을 시작했다.

 

전자정부 사업이 김대중 정부에서 처음 이뤄진 건 아니다. 김영삼 정부 때도 계획을 했지만 제대로 추진되진 않았다. 이 사업에 관여했던 전직 행정안전부 고위 관료는 “그때는 부처 차원에서 추진했는데 한계가 분명했다. 전자정부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적었을 뿐 아니라, 예산을 투입해도 효과는 몇 년 뒤에 나타나니까 각 부처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질 않았다. 김대중 대통령의 공은 이 사업을 ‘대통령 어젠다’로 격상하고 직접 챙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뚜렷한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도 전자정부에 의지를 보였다. 대표적인 게 이지원 시스템이다. 이전 정부까지 대면 보고가 일상이던 청와대 업무보고와 지시, 회의 시스템을 이지원을 통해서 디지털화했다.

참여정부 청와대에 근무했던 부처 공무원은 “이지원이 의미 있는 게, 그 전까지는 대면 보고니까 어느 수석비서관이 대통령 보고를 하면 다른 수석실에선 이견이나 반론이 있어도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지원 시스템은 현안에 관해 관련 수석실 의견을 반드시 붙이도록 만들었기에 다양한 관점의 견해를 공유하게 됐다”고 말했다.

 

역대 정부의 전자정부 예산(행안부 자료)을 보면, 김대중 정부 연 1110억원, 노무현 정부 연 1757억원, 이명박 정부 연 1347억원, 박근혜 정부 연 1006억원으로 노무현 정부 때가 가장 많다.

2010년 유엔의 세계 전자정부 평가에서 대한민국은 1위에 올랐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노력이 이명박 정부 때 꽃 피웠다는 걸 부인할 수 없다.

 

지난 주말 전자정부 서비스 핵심인 ‘정부24’를 비롯한 행정 전산망이 마비됐다. 네트워크 장애라는데, 아직 원인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기술적 사고의 원인을 대통령이나 장관에게 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상황 대처와 수습 과정의 책임은 피할 수 없다.

카카오 사태 때는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전쟁 같은 비상상황에 먹통이 되면 어떻게 하겠냐”고 질타하더니, 이번엔 해외에서 “정부 합동 태스크포스를 즉각 가동하라”는 당연한 지시뿐이다. 분명히 책임지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국민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정부의 작은 잘못에도 책임을 느끼던 과거 대통령들의 자세가 무너진 느낌을 받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윤 대통령은 진보 정부를 ‘과거 이념에 사로잡혔다’거나 ‘무능했다’고 비판하지만, 정말 이념에 포획돼 이전 정부가 쌓아 올린 기반마저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는 게 지금 보수 정부의 모습이다.

 

물론 이번 사태만 갖고서 ‘진보 정부가 보수 정부보다 유능하다’고 말할 순 없다. 그러나 현 정부에서 나타나는 행정 실패들이, 거의 모두 과거 정부에선 잘 대응했던 분야인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행정전산망 마비뿐 아니라 새만금 잼버리 대회 실패, 서울 도심의 대형 참사 등은, 행정 운용과 대응 능력이 현 정부 들어 현저히 떨어졌다는 징표로밖엔 달리 해석할 수 없다.

 

공교롭게도 이 세 가지 대표적 실패의 중심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있다. 이상민 장관은 미국방문 중에 행정전산망 사태로 서둘러 귀국했다가, 21일 윤 대통령의 영국 국빈방문을 수행하러 또다시 출국했다. 과거 정부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 부처 장관을 지낸 인사는 “국민 안전과 재난 대응의 일선 책임자인 행안부 장관은 국내에 남아 비상사태에 대비하는 게 당연하다. 대통령이 편하고 친하게 여기니까 같이 나가는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국정에 임하는 윤 대통령 모습의 일단을 여기서 엿볼 수 있다. 가장 적격인 사람에게 일을 맡기고 일단 맡겼으면 업무에 전념하게 해야지, 대통령 기분에 따라 사람을 운용하면 일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예상치 못한 대형 사고가 유독 현 정부에서 반복되는 건 우연이 아니다.

 

 

 

박찬수 |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