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방위의 가는 길은 역사가 되고 있다
22대 총선 선거방송심의위원회(선방위)는 지난 18일 제15차 회의에서 시비에스(CBS)와 문화방송(MBC)에 무더기 법정제재를 의결했다. 그중에는 필자 발언 때문에 징계를 받은 프로그램도 있다. 이는 개인 문제가 아니라 공적 관심사이기에 당사자인 필자가 직접 칼럼에서 언급하는 것에 대해 독자들의 양해를 구한다.
필자 발언이 징계 대상이 된 이유는, 대통령과 국민의힘 위성정당 국민의미래를 조롱·희화화했다는 민원 때문이다. 민원인은 “막말과 좌편향적 발언으로 비판받고 있는 언론인을 고정 출연시키는 것 자체가 불공정하다”고 주장했고, 선방위는 이 발언이 선거에 영향을 줬다며 심의 대상에 올렸다.
필자는 지난 1월31일 시비에스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해 아홉번째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것에 대해 “윤 대통령 가는 길이 역사가 되는구나”라고 말했다.
선방위는 이를 대통령에 대한 조롱이라고 결론 내렸다. 조롱의 사전적 의미는 ‘비웃거나 깔보면서 놀림’이다. 그러나 거부권 행사에 대한 필자의 발언은 소위 ‘팩폭’(팩트폭격)이다.
윤 대통령은 집권 1년8개월 만에 9건의 법안을 거부해, 민주화 이후 최다 거부권을 행사했다.
당시 뉴스핌은 ‘최다 거부권 기록 깬 尹…“권력간 견제 위해 제한적으로 행사돼야”’ 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약 1년8개월 만에 새 역사를 썼다”고 보도했다.
이태원 참사 유족은 “특별법 거부한 윤석열 대통령은 역사에 남을 죄를 지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때마다 전인미답의 길을 걷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선방위원에겐 이게 팩폭이 아니라 조롱으로 들렸나 보다.
티브이(TV)조선 추천 손형기 위원은 “일반 청취자, 제가 들어도 조롱 느낌이 온다”고 주장했다.
또 필자는 2월1일 방송에서 국민의미래에 대해 “참 미래가 여기저기 고생이 많다. 여기서 욕먹고 저기서 욕먹고”라고 평했다.
필자는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 창당을 지속해서 비판해왔고, 특히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에 대해서도 ‘내로남불’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민주당 초선의원모임 ‘더민초’ 주최 토론회에서도, 거대 정당인 민주당이 일명 ‘골목상권’으로 비유되는 비례의원 의석을 더 가져가기 위해 위성정당을 만들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또 새로운미래, 개혁미래당 등 ‘미래’란 단어를 여러 정당에서 사용하는 것을 두고 ‘좋은 건 (정당 이름에) 다 갖다 붙인다’고 논평한 바 있다.
국민의미래에 대한 논평도 사실에 근거한 비판이었다. 28억원의 정당보조금을 받은 국민의미래는 최근 국민의힘과 합당 의결을 했고,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민주연합도 다음달 초 합당을 완료할 계획이다.
동아일보 등 보수 언론도 소수정당의 정당보조금을 줄어들게 한 위성정당에 비판적인 기사를 쏟아냈다.
하지만 국민의힘 추천 최철호 위원은 “김준일 평론가는 친민주당 패널이다. 몇번 방송 봤는데 그런 시각이라는 걸 실제 확인할 수 있다”며 “민주당 위성정당은 왜 공격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당시 민주당은 위성정당을 만들기로 결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번 심의는 선방위의 구조적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다. 선방위원들은 ‘느낌’과 ‘본인의 경험’을 편파의 근거로 제시했다. 또 총선과 무관한 정부 비판 보도마저 심의 대상으로 올렸다.
선방위에 제기된 민원 중 개인이 아닌 정당이나 단체가 제기했던 178건의 민원은 모두 국민의힘과 친정부적 언론단체인 공정언론국민연대가 제기한 것이었다. 심지어 공정언론국민연대 전현직 임원은 선방위 위원을 맡고 있다.
느낌대로 징계를 내리고, 결과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선방위 제도는 이제라도 고쳐야 한다.
이번 총선에서 집권 여당이 역사적 패배를 당한 첫째 이유는 윤 대통령의 일방적 국정운영이었다. 필자는 그 두번째 이유로 ‘입틀막’ 정권을 꼽겠다. 언론과 평론가에 대해 고발을 남발한 여당, 그리고 편파적 법정제재를 남발한 선방위가 범야권 192석의 2등 공신이다.
최근 자리가 비는 공공기관장 164곳에 낙하산 인사 가능성이 높다는 보도가 나왔다. 다음달 임기가 끝나는 선방위 일부 위원들이 언론 공공기관이나 공기업 임원으로 영전할 것이란 소문도 무성하다.
정권이 이들에게 보은인사를 한다면, ‘언론 징계 사주’를 했다는 의심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여러모로 이번 선방위가 가는 길은 역사가 되고 있다.
김준일 |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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