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법 위반하면 민주유공자 못 된다? 전두환이 한 짓을 보라
민주화운동 탄압 도구였던 국가보안법... 보훈부의 주장은 역사 외면하는 것
▲ 지난 1월 31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민주유공자법 제정 추진단·민주유공자법 제정 찬성 국회의원단 주최로 민주유공자법 제정 촉구 전국 집중 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23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본회의로 회부된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민주유공자법)'에 대해, 국가보훈부는 입장문을 내고 반대 의사를 밝혔다.
보훈부는 국가보안법 위반자가 민주유공자법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국가보안법 위반자가 법의 적용 범위에서 확실히 배제되지 않아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정무위 민주당 간사인 홍성국 의원은 국가보안법 전과자는 적용 대상에서 배제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보훈부의 주장은 '국가보훈부 장관은 이 법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 사람을 이 법의 적용 대상자로 결정할 때 보훈심사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야 한다'라는 민주유공자법 제정안 25조의 단서 조항을 통해 구제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다른 국가범죄 피해자와 달리 민주화운동 피해자 상당수는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권에 참여했다. 그래서 피해자라는 이미지가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다. 이들이 민주당에서 영향력을 갖고 있으니, 민주당의 입법 추진이 '운동권 셀프 특혜'로 비칠 여지가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민주화운동 피해자 대다수가 정치권에 진출한 것도 아니고 이 분야에서 자리를 잡은 것도 아니다. 민주화운동으로 고문과 체포·구속 등을 당한 피해자 상당수는 그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셀프'라는 표현도 어울리지 않지만, '특혜'라는 표현은 더 적절하지 않다.
국가보안법 위반자가 민주유공자 혜택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보훈부의 주장은 언뜻 들으면 그럴싸하지만, 실상은 전혀 아니다. 국가보안법이 북한의 대남 활동보다는 민주화세력 견제에 주로 활용됐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다. 그래서 민주화운동 참여는 국가보안법에 저촉될 위험성을 감수하는 것이었다. 민주화운동 유공자가 보안법에 걸리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게 없는 일이었다.
국가보안법의 최대 호황기
▲ 지난 2023년 3월 3일 국가정보원, 경찰, 검찰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사건에 대해 압수수색과 구속, 수사를 벌이고 있을 당시, 민주노총 경남본부가 건물 외벽에 내건 펼침막. ⓒ 윤성효
국가보안법은 독재정권이 민주화세력을 겨냥하는 '창'으로 많이 활용됐다. 이 창을 막지 못해 피를 흘리며 투옥됐다 하여 민주유공자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반독재운동이나 민주화운동을 하면 국가보안법 위반에 노출될 위험성이 크다는 점은, 이승만·박정희 집권기와 더불어 전두환·노태우 집권기에도 잘 나타났다. 전두환 집권기(1980~1988)는 특히 그랬다.
이 시기를 지칭하는 표현 중 하나는 국가보안법과 관련이 있다. 2009년에 <기억과 전망> 제20호에 실린 이영재 동국대 강사의 논문 '정치권력의 헌정질서 유보 및 파괴에 관한 연구'는, 이 시기를 "국가보안법의 최대 호황기"로 부른다.
그 호황의 결과로 주된 피해를 입은 쪽은 북한 정권이나 간첩들이 아니었다. 2003년에 발행된 국가인권위원회 연구용역 보고서인 <국가보안법 적용상에서 나타난 인권 실태>는 호황의 직접적 영향을 이렇게 설명한다.
"이 시기 국가보안법 적용의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 1980년 광주항쟁 이후 반독재 저항운동은 점차 이론화·조직화되기 시작했는데, 그만큼 국가보안법 적용도 확대·강화되었다. 즉 운동의 이론화는 운동론을 둘러싼 사상과 노선의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며, 이 같은 운동론이 국가보안법의 좋은 표적이 된 것이다."
국가보안법의 최대 호황기에 이 법의 "좋은 표적"이 된 것은 민주화운동을 위한 이론들이었다. 북한의 대남 전략이 아닌 운동권의 이론이 주된 표적이 된 것은 이 법의 본질을 잘 증명한다.
위 보고서는 "1980년부터 1987년까지 5공화국 전체 국가보안법 입건자, 구속자 1565명 가운데 제7조(찬양·고무)가 적용된 인원은 1495명으로 전체의 95.5%"라고 설명한다. 전두환 집권기에는 이른바 이적표현물 사건이 많았다. 이런 서적에 담긴 문구를 근거로 찬양·고무죄 적용이 남발됐다. 95.5%라는 수치는 그래서 나왔다.
그런데 이로 인해 대대적인 타격을 받은 사람들은 북한의 대남정책 담당자들이 아니라 휴전선 이남의 서점 주인들이다. 보고서는 95.5%의 의미와 관련해 이렇게 설명한다.
"국가보안법 7조에 의하여 이적단체 사건이 수없이 발생하였으며, 이적표현물 사건이 급증한 데 따른 것이다. 이적표현물 사건 가운데서는 특히 출판물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 및 출판인들에 대한 대량 검거사태가 발생하였으며, 서적상들에 대한 무작위적 구속 사태도 발생하였다. 1981년 민중문화사 사건, 광민사 사건을 필두로 1987년 한국민중사(풀빛) 사건, 1988년 자본론(이성과현실) 사건 등으로 출판인들이 이적표현물 제작·판매 혐의로 구속되는 사례가 나타났다."
민주화운동 탄압하기 위한 도구, 국가보안법
▲ 2022년 9월 1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국가보안법(2조 1항과 7조 1항, 3항, 5항 등) 위헌심판 공개변론이 예정된 가운데,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 소속 단체 회원들이 위헌 결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 권우성
국가보안법 연루자들이 실상은 별 혐의점이 없었다는 점은 위반 혐의자들이 입수했다는 '국가기밀'의 실체에서도 드러난다. 위 보고서는 1970년대와 1980년대의 간첩 조작 사건을 다루는 대목에서 "이들 사건에서는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며 이렇게 설명한다.
"다섯째, 이들이 수집·탐지·누설했다는 국가기밀의 내용은 관광여행 중 여행 안내원으로부터 들은 '경부고속도로는 전쟁 시 군용도로로도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성우 씨), 친구 아들을 면회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육군행정학교 출입 절차(김윤수 씨), 종로서적과 교보문고에서 구입한 합법 출판물(황대권 씨), 길을 걸어가다 보게 된 학생시위 광경(김성만 씨) 등으로 대한민국 국민이면 알 수 있는 '공지의 사실'인 것이다."
종로서적과 교보문고에서 구입한 출판물을 통해 알게 된 지식이 수사당국에 의해 '국가기밀'로 둔갑되는 기막힌 상황을 목도한 황대권씨는 1985년 6월 4일 새벽 5시에 체포됐다. 이날 그는 피곤할 수밖에 없었다. 생후 1개월 된 아들을 데리고 아내와 함께 귀국한 다음날이었다. 새벽에 대문을 두드리는 남자들에게 잠옷 차림으로 체포된 그는, 손을 뒤로 한 채 수갑에 묶이고 머리를 차 바닥에 박힌 채 연행됐다.
이 사건은 유명한 간첩조작 사건인 '구미 유학생 간첩 사건' 또는 '구미 유학생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이다. 미국 유학 중에 북한 공작원에게 포섭된 학생들이 귀국 뒤 반정부 시위를 주도했다는 사건이다. 피해자들이 최장 65일간 서울 남산의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국정원) 지하실에서 고문을 당하고, 15명이 사형·무기징역 등의 형을 받았다.
전두환 정권이 이 사건을 다루는 방식을 보면, 독재정권이 국가보안법을 운용한 것이 북한 때문인지 민주화세력 때문인지가 여실히 밝혀진다. 위 보고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1985년 6월을 전후해서 연행되어 8월 5일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던 구미 유학생 사건에 대한 발표는 각 대학의 2학기 개학 직후인 9월 9일에 이루어졌으며, 이 사건의 경우 1심·2심·3심 재판 결과가 모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상고심은 1986년 9월 20일경쯤 끝났음에도 아시안게임이 끝나 다시 정부 비판의 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한 11월에 그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북한의 대남 활동 사이클에 맞춰 국가보안법 사건을 발표하지 않고, 민주화세력의 동향에 맞춰 그렇게 했다. 국가보안법이 주로 무엇을 겨냥한 악법인지가 이런 데서도 증명된다.
구미 유학생 사건 피해자 3명의 재심 공판이 열린 2022년 11월 22일, 검찰은 이들에게 무죄를 구형했다. 검찰이 변호인처럼 요청했던 것이다. 12월 22일 서울고등법원 형사3부는 무죄를 선고하면서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라고 예를 갖췄다.
재심 재판의 검사와 재판부가 보여준 이런 광경은 이 유명한 국가보안법 사건의 실체를 여실히 드러낸다. (관련기사: 37년의 기다림...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 재심 무죄 https://omn.kr/223ft)
국가보안법은 북한이 아닌 민주화세력을 주로 겨냥했다. 국가가 아닌 정권을 보안하는 법으로 악용됐다. 그래서 사안에 따라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사실은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사실의 방증이 될 수 있다.
국가보안법 위반자가 심사를 거쳐 혜택을 볼 수 있으므로 민주유공자법을 반대한다는 국가보훈부의 주장은, 민주화운동과 국가보안법 간에 존재하는 고도의 친밀성을 외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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