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의 실패에서 배워야 할 것
*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러시아가 국제법을 전면적으로 위반하면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이미 2년 반 이상이 지나면서, 최근에 우리는 세계 무대에서 매우 역설적인 광경을 지켜보게 되었다. 즉, 러시아는 침공뿐만 아니라 아예 19세기 서구 제국주의자들의 행위를 방불케 하는, 우크라이나 일부 영토의 ‘합병’, 즉 불법 강탈까지 선포했다.
침공의 원흉인 러시아 대통령 푸틴은, 국제형사재판소에 의해 체포 영장이 발부된 상태다. 2024년 현재의 러시아는 전범이 다스리고 있는 제국주의적 침략 국가다.
한데 이와 동시에 친러의 태도를 견지하는 나라들은, 바로 과거 서구 제국주의 침략의 피해를 맛본 구미권 바깥의, 소위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다.
10월22~24일에 러시아에서 개최된 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 참석한 36개국 중에 상당수는, 인도나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처럼 글로벌 사우스의 리더 격인 과거의 식민지들이었다. 그중에 22개국은 국가 원수들이 직접 러시아에 와서 제국주의 침략의 원흉인 푸틴과 포옹하는 모습을 보였다.
인도나 브라질, 남아공 정도면 유권자들의 표심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민주 국가들이다. 아마도 거기에서는 국가의 수반이 푸틴과의 좋은 관계를 과시해도 표를 크게 잃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모양이다.
이런 역설적 상황이 가능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물론 글로벌 사우스 지도자들의 푸틴과의 포옹은, 꼭 ‘친러’를 뜻하는 것만은 아니다. ‘친러’ 이상으로 ‘반미’의 의미가 훨씬 크다는 것이다.
대러 제재를 포함한 미국의 각종 제재들은 기축 통화로서의 미국 달러의 특별한 위치를 이용하는 것인데, 글로벌 사우스의 입장에서는 꼭 달러로 외환보유고를 채우고 국제 결제를 위해 주로 달러를 써야 한다는 것은 수탈로 비치며, 달러 패권을 이용하는 제재는 패권 국가의 횡포로 인식된다.
그 밖에도 과거 이라크 침략부터 현재 이스라엘의 가자 제노사이드 지원까지, 미국의 패권적 행태들은 글로벌 사우스의 유권자 다수에게도 지도층의 다수에게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리가 없다.
이 반미 정서들은 미국과의 대립을 자신의 대외정책적 ‘브랜드’로 만든 푸틴에 대한 친근함의 과시로 충분히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거기에다 할인 판매되는 러시아산 에너지 거래를 통해 발생하는 이익이라는 프리미엄도 물론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글로벌 사우스의 ‘친푸틴적 태도’에는 또 다른 배경도 있다. 침략당한 국가를 예로 드는 것이 죄송스럽게 느껴지지만, 지금 한국도 똑같은 우(愚)를 범하기에 그래도 짚고 넘어가는 게 맞는 것 같다. 즉 우크라이나는 침략당한 국가임에도 친미 일변도의 외교, 우크라이나 지식인·미디어 등의 서구중심주의적 성향이 우크라이나와 글로벌 사우스 사이의 괴리를 넓힌 것도 사실이다.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은 현재로서는 그렇지 않아도 승산이 있는 대미 대립을 벌이면서 그들에게 일정한 경제적 이익을 안겨줄 그 어떤 반(反)서구 세력에 대해서도 꽤나 긍정적이었을 테지만, 우크라이나의 친미 일변도의 포지셔닝은 더더욱 비서구 세계와의 관계를 악화시킴으로써, 결국 침략자 푸틴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현재는 전쟁 상황으로 인해 달라졌지만, 러시아 침략 이전에 우크라이나의 가장 중요한 무역 상대국은 중국이었으며, 우크라이나의 주요 수출품인 곡물은 주로 아프리카로 수출되었다. 즉, 경제적으로 우크라이나는 비서구에 기대고 있었다.
하지만 2014년의 유로마이단 사태(친유럽·민주주의를 요구한 우크라이나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 이전에도, 이미 1990년대부터 우크라이나가 내세운 대외 정책의 주된 목표는, 궁극적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유럽연합 편입이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는 1999년에 나토의 세르비아 공습을 지지했고, 2003년에는 미국의 이라크 침략까지 지지해, 심지어 소규모 파병까지 감행했다.
이런 대외 정책을 뒷받침하는 것은, 지식인 사회나 미디어 등의 서구중심주의적 담론이었다. ‘유럽적 가치’를 극구 칭송하는 우크라이나 주류 지식인과 언론들은, 예컨대 일종의 ‘백인 프리미엄’ 차원에서 우크라이나 피난민들이 시리아 피난민들에 비해 유럽에서 훨씬 더 후한 대접을 받는 점 등에 대한 고민 같은 것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글로벌 사우스의 입장에서는 ‘백인 피난민’과 ‘비백인 피난민’에 대한 상이한 태도는 분명히 인종 차별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우크라이나 안에서는 “우리도 유럽인인 이상”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침략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는데도, 글로벌 사우스의 민심이 좀처럼 우크라이나의 편에 서려 하지 않는 것은 과연 놀라운 일일까?
인도나 브라질에서 우크라이나의 고통이 큰 반응을 일으키지 못한 것은 통탄할 일이지만, 우크라이나의 여론 주도층 역시 미국 침략 피해자들의 고통에 일찌감치 연대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구미권 일변도의 포지셔닝은, 결국 글로벌 사우스와의 관계 설정에 있어서의 실패를 초래했다.
한데 과연 지금 대한민국의 포지셔닝은 어떠한가?
우크라이나인들은 주변부적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유럽인인 반면에, 한국인들은 스스로를 명예 백인으로 인식하며, 서구중심주의 이데올로기 내면화의 차원에서는 한국은 우크라이나보다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 않다. 한·미·일 군사 협력 강화 같은 윤석열 정부의 친미·친일 외교 정책은, 일찍이 일제 침략을 받은 바 있으며 지금 미국의 포위 정책 대상이 된 중국인들에게 실질적인 위협으로 충분히 보일 수 있다.
한국 수출의 대부분은 구미권이 아닌 글로벌 사우스로 가지만, 한국 사회 안에서 예컨대 베트남이나 필리핀의 역사나 문화, 문학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 이해는 극히 낮은 수준이다.
한국에서 생각하는 ‘글로벌 스탠더드’는 사실 오로지 미국 스탠더드다. 이와 같은 친미 일변도의 포지셔닝과 철저한 서구중심주의는, 유사시에 한국도 우크라이나처럼 글로벌 사우스로부터 공감과 연대를 얻을 확률이 거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연 이는 한국의 미래 차원에서 바람직한 일일까?
우크라이나의 글로벌 사우스와의 관계 설정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선진국이 된 한국은, 이제라도 19세기 말 일본과 같은 탈아입구(脫亞入歐), 유치한 서구 베끼기와 극도로 위험한 친일·친미 일변도의 외교를 벗어날 때가 됐다.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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