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명예, 그리고 충용
지금으로 부터 약 30여년 전, 나는 경북 영천에 있는 육군제3사관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때까지 집과 떨어져 살아본 적이 없는 나에게 있어서, 3사관학교에서의 사관생도 생활은, 큰 변화와 함께 새로운 경험과 충격으로 점철된 세계였고, 내 인생에 있어서의 두 개의 큰 전환점 중에 하나가 되었던 것이다.
3사관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내 머리속 사고가 작은 지역사회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는데, 사관생도로서의 생활은 늘 조국, 겨레, 명예, 충성, 통일 등 거대한(?) 것들에 점철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나도 모르는 새에 내 사고의 틀은 지역사회에서 전국구(?)로 넓어지는 것과 함께, 거룩한(?) 가치관의 속으로 발돋움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푸른 수의(군복을 지칭함)를 입은 13년 동안(생도 기간 포함), 그리고 군복을 벗고 지나온 생활이 약 20년이 되는 지금까지도, 3사관학교에서의 그 배움에 대해 너무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고, 내 인생의 소중한 경험이 되어왔으며, 지금까지도 또한 자긍심으로 살아 있다.
오늘은 3사관학교 생도 생활 중 잊혀지지 않는 것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학교의 시설물 중에는 졸업생들이 졸업기념으로 만들어 학교에 기증하는 것들이 있다. 우리의 선배 기수가 졸업하면서 기념물을 만들어 둔 것 중에 '활 쏘는 헤라클레스'와 '원반 던지는 사람'의 조각상이 있었다.
이 두 개의 조각상들은 너무도 유명한 서양의 청동상들을 모작한 것이기 때문에 예술적인 가치를 논할 수는 없지만, 그 조각상 밑에 새겨둔 시가 사관학교에 있을 만한 시로서 너무나 적절하고, 또한 나의 심금을 울리는 것이기에 오다가다 저절로 외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3사관학교를 생각할 때면 이 시와 조각상들이 떠오르기에 이렇게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 조국과 겨레위해 던져라
대한 남아의 일생
명예와 전통위해 쏘아라
너와 나의 슬기
화랑의 핏줄 이어 받은
충용의 기상
조국 통일의 염원 이루리."
*** 육군제3사관학교의 교훈은 '조국, 명예, 충용'이며, 학교(부대)의 통상명칭은 '충성대'이다.
*** 위의 사진은 3사관학교에 있는 조각상이 아니고 인터넷으로 끌어온 사진입니다.
*** 어젯밤, '화려한 휴가' 비디오를 봤습니다. 보는 내내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영화를 제작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심의를 통과하기 위하여 잔혹한 장면을 많이 뺐다고 하고, 군을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대부분이 허위라고 합니다.
그 영화에 진실이 어느 정도인지는 저도 모릅니다. 진실이 10%만 포함되었다 하더라도 크나큰 잘못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세월이 많이 지난 탓인지, 제가 광주 비극의 당사자가 아닌 탓인지, 제가 직업군인이었던 탓인지, 미움의 감정보다는 그저 가슴이 먹먹한 느낌이더군요.
그 당시 제가 전방지역에 근무하고 있어서 광주에 투입되지 않았던 것이 행운(?)이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잘못일까요?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할 역사적 비극이기에, 더욱 더 교훈의 자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위의 조각상에 새겨져 있던 시가 더욱 더 생각나는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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