윷놀이, 그리고 나이롱뽕 : 시즌 2
- 나는야 문화전도사, 나이롱뽕을 전파한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 일년에 몇 번 부부동반(또는 가족 전체 동반)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 한 가족이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갔지만 그 만남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어제(2월 17일) 저녁에도 부부동반으로 만남이 있었다.
작년 연말에 만났지만, 음력 1월이 가기 전에 윷놀이나 한 번하자고 말이 오고간 끝에 센텀씨티 쪽에 사는 동진이네 집에서 초청을 했다. 작년에는 아이들까지 모두 모여서, 우리집에서 신나게 윷놀이를 했었는데, 이번에는 집에 없는 아이들이 많아서, 부부끼리만 모였다.
마침 동진이 아버지가 발뒤꿈치를 다쳐서 병가를 내고 쉬고 있던 참이라, 병문안 까지 겸하는 자리가 되었다.
동진이 엄마와 동희, 동진이 아버지의 정성과 우정이 가득한 저녁상에, 나의 장모님이 담그신 복분자주를 반주삼아, 사는 얘기, 건강 얘기, 워낭소리 영화 얘기 등, 환담을 나누며 맛있게 식사를 끝내고는, 동진이 아버지가 준비한 환상적인 와인을 곁들여 마시면서 예정된 놀이에 돌입했다.
오늘의 예정된 놀이는 내가 미리 얘기한 대로 전통의 윷놀이와 추억의 화투놀이 나이롱뽕.
윷놀이는 부부끼리 한 팀이 되게 세 팀으로 나누어 세 판을 했다. 잡고 잡히는 혼전과, 누구는 연속해서 모가 세 번 나오기도 하고, 어느 팀은 연속해서 뒷 도가 세 번 나오기도 하였으며, 세 개가 업혀가던 말이 마지막 홈에서 나오지를 못해서 안타깝게 잡히고 마는 등, 탄식과 흥분, 그리고 웃음과 아쉬움의 연속이었다.
윷놀이 다음으로는 나이롱뽕.
우리 식구를 제외하고는(우리 식구도 금년 설날 연휴에 몇 십 년 만에 처음 해봤다) 모두들 처음으로 하거나 몇 십년 만에 해보는 것이라, 내가 규칙과 요령을 설명하고 세 번 연습게임을 하니, 처음 해보는 사람조차 방식을 금방 이해하였다. 사람마다 옛날 기억을 되살리고, 부분적으로 나름대로의 다른 규칙에 대해 얘기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내가 설명한 대로 진행되었다.
나이롱뽕은 개인전이라 개인별로 점수를 합산하여 순위를 매기는 게임이다. 다섯 판을 한 게임으로 해서 점수 합계로 순위를 정하고, 세 게임을 했다.
여기저기서 뽕뽕, 바가지를 쓸까 노심초사하며 눈치보기, 한 장을기다리는데 기다리는 화투가 오지 않는 아쉬움, 용감하게 스톱 등, 역시나 웃음이 만발하는 속에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규칙도 간단하고, 요령도 쉽게 습득하니 처음 해보는 사람도 금방 적응한다.
개인별로 윷놀이 순위와 나이롱뽕 순위를 모두 합한 숫자에 곱하기 천 원을 한 것이 각자 자기가 내야 할 금액이다.
그리하여 합계를 내보니, 우리 식구 둘이 합쳐서 3만 3천원, 영주네 식구 둘이 합쳐서 똑같이 3만 3천원, 주인장인 동진이네가 둘이 합쳐 3만 2천원(천원 벌었다고 아주 좋아했다), 합해서 모두 9만 8천원이 모아졌다. 이 돈으로는 다음에 모두 함께 모여서 쓰기로 하고, 총무(즉석 총무 영주엄마)에게 건네졌다.
나이롱뽕까지 마치고 보니 밤 열 두시가 조금 넘었다. 그리하여 우리도 요즘 유행하는 버라이어티쇼처럼 1박 2일로 놀았다.
나이롱뽕을 마치고 잠시 환담하다가 집을 나오면서, "오늘도 문화전도사업을 나이롱뽕으로 확실하게 했습니다." 농담삼아 이야기한 것이,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제목으로 삼게되었다.
금년 한 해가 나로서는 나이롱뽕 예찬론자가 될 듯 하다.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자꾸만 적어지는데, 내가 나이롱뽕을 가르쳐 주었더니 재미있는지 자꾸만 하자고 한다. 집에 찾아온 제 친구들에게도 가르쳐 주고, 우리와 함께 같이 하자고도 한다.
나이롱뽕은 세 명 부터 여섯 명 까지가 적당하다. 그 이상으로 많으면 편을 나누어 윷놀이를 하는 것이 좋다.
금년 들어서 여러 사람들과 나이롱뽕을 몇 번 쳤는데, 모두들 재미있어 하고, 옛 추억에 잠겨보는 계기도 되었다. 동진이 엄마도 어렸을 때 아버지와 함께 나이롱뽕을 했던 것이 생각난다고 하였다. 나에게는 어렸을 때 큰 매형(지금은 돌아가셨음)이 오면, 형제자매들과 함께 나이롱뽕을 했던 것이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화투 하면 의례 노름으로 생각하고 패가망신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나에게 있어 나이롱뽕은 아련한 옛 추억의 매개체이자, 가족, 친척, 친구들과의 화합과 즐거움을 주는 놀이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문화전도사라는 자부심과 함께 나이롱뽕 예찬론자가 되었다.
'일상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또라이 선언과 낭만주의자 (0) | 2009.04.01 |
---|---|
고통을 주는 전화 (0) | 2009.03.24 |
윷놀이 그리고 나이롱뽕 (0) | 2009.02.11 |
‘불가불가(不可不可)’와 유엔 인권위 결의안 (0) | 2009.02.03 |
추억의 화투놀이, 나이롱뽕 (0) | 2009.0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