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전설, 설화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道雨 2009. 2. 20. 11:31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재산이 매우 많지만 인색하기 짝이 없는 종실(宗室) 노인이 서울에 살았다. 그는 재물을 터럭 끝만큼도 남에게 주는 법이 없고, 심지어는 아들 넷에게도 분배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 그가 하루는 외무릅('오물음'이라고도 하는데, 직업적인 전문 재담꾼이다)을 불러다 고담을 시켰다. 외무릅은 그 기회에 멋진 재담 하나를 떠올렸다.

 

그는 서울 장안에 사는 천하 구두쇠 이동지(李同知) 사연을 구연했다.

 

팔자가 좋아 부자로 사는 이동지는 임종할 때까지 재물 재(財) 한 글자를 가슴에서 벗어던지지 못했다. 그가 임종을 앞두고 아들들을 모아놓고 유언을 남겼다.

 

“죽음을 앞두고 보니 그 많은 돈을 가져가지 못해 한이다. 평생 재물에 인색한 것이 후회스럽다. 그러니 내가 죽은 뒤엘랑 양손을 좍 펴고 쥐게 하지 마라. 관 좌우에 구멍을 뚫어 편 손을 내놓아, 행인들로 하여금 내가 산처럼 재물을 쌓아놓고도 빈손으로 간다는 것을 보여줘라!”

 

자식들이 유언을 거역하지 못해 시키는 대로 하여 운구했다.

 

외무릅이 종실 노인집에 오는 길에 이동지의 장례 행렬을 보았는데, 관 밖에 손이 나와 있는 것을 목도하고 이상하게 여겨 물었더니, 그런 사연을 말해주더라고 했다.

 

종실 노인이 바보가 아닌 이상 자신을 조롱하는 이야기인 줄 알았지만, 이치가 그럴듯해서 후한 상을 내리고 모든 재산을 자식들과 친지, 이웃들에게 물려주거나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  출처 : 우리 고전인 <청구야담>

 

 

 

*** 윗 글은 '한겨레 21'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