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염치, 촌스러움, 그리고 착각

道雨 2010. 11. 9. 15:20

 

 

 

염치, 촌스러움, 그리고 착각 
 
» 김종구 논설위원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재임중 서울올림픽을 유치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막상 1988년 9월에 열린 올림픽 개막식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노태우 당시 대통령은 ‘전세계가 주목하는 행사인데 관중석에서 전두환에 대한 야유라도 터져나오면 국제망신 아니냐’는 여론을 유도해 그의 참석을 막았다.

 

5공과의 본격적인 차별화에 나선 노 전 대통령으로서는 두 사람이 나란히 개막식에 앉아 ‘5공과 6공이 한통속’으로 비치는 게 싫었던 것이다.

 

이것은 매우 극단적인 경우지만 국제행사는 언제나 ‘유치자 따로 주관자 따로’인 법이다. 말하자면 이런 행사는 현직 대통령이 뒤에 올 대통령에게 주는 선물이자 빚과 같다.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 2000년 서울 아셈 정상회의, 2005년 부산 아펙 정상회의 등이 모두 마찬가지다.

 

눈앞에 다가온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도 2001년 오타와 재무장관 회의 때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당시에는 G20 정상회의가 없었지만, 이 회의에서 정한 순서에 따라 한국이 올해 의장국이 됐으니 정상회의 개최는 그때 90%쯤 확보됐던 셈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개최국 대통령으로서 스포트라이트를 즐기는 것을 탓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 정권이 ‘잃어버린 10년’으로 비난한 시기에 받은 선물을 갖고 너무 자화자찬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염치란 두 글자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종류의 국제대회를 취재하다 보면 나라의 수준 차이도 금세 느껴진다.

선진국일수록 있는 그대로의 ‘생얼’을 보여주는 반면, 뒤떨어진 나라일수록 ‘화장’에 의존하려 한다. 국가 이미지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행사 기간에 특정 유흥업소들을 몽땅 폐쇄시켜버린 나라도 봤다.

그렇다고 해서 외국 기자의 눈에 그런 나라의 ‘국격’이 높아 보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약간의 경멸감 같은 것을 느낀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우리도 이제는 그런 종류의 촌스러움을 어지간히 졸업했다고 여겼는데 이번에 보니 착각이었다. 외국 손님을 웃는 얼굴로 맞이하자며 자기 국민들을 성난 얼굴로 다그치는 게 영락없이 20여년 전 올림픽 때를 연상시킨다.

 

촌스러움은 비단 정부만이 아니다. 이번 행사에 언론사들은 많게는 30여명씩 기자를 투입해 취재 경쟁을 벌인다고 한다.

세계경제에 큰 영향을 끼칠 국제회의, 그것도 우리 안방에서 열리는 행사이니 그럴 법도 하겠지만, 왠지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지금까지의 G20 정상회의 보도 태도나, 다음번 열릴 정상회의를 미리 예상해보면 ‘비정상’도 이만저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이런 국제회담이 열리면 취재를 거의 전적으로 우리 정부 관계자의 입에만 의존하는 게 우리 언론의 습성이기도 하다. 가장 글로벌한 행사의 가장 우물 안 개구리식 보도라고나 할까.

 

회의의 본질과 무관한 곁가지도 넘쳐난다. 비무장지대 인근 청정지역에서 자란 한우로 만든 스테이크, 제주도산 애플망고로 만든 디저트가 메뉴로 나와 외국 정상들이 감탄했네 하는 따위의 기사가 이번에도 신문 지면을 장식할 것이다. 지난해 영국 런던에서 열린 제2차 G20 정상회의에 어떤 메뉴가 나왔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말이다.

 

촌스러움보다 더 경계해야 할 것은 착각이다.

이번 정상회의만 잘 치르면 한국이 세계 외교의 중심에 우뚝 설 것이라는 따위의 장밋빛 속삭임이야 이제는 별로 믿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번 회의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착각은 적지 않게 퍼져 있는 듯하다. 우리의 능력과 역할을 실제 이상으로 부풀리는 정부의 과대포장술 덕분이다.

회의가 열리면 이 대통령이 발휘한 뛰어난 리더십과 수완을 찬양하는 보도도 넘쳐날 것이다.

 

하지만 국제현실은 냉엄하다. 최근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올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에 불행히도 이 대통령은 전체 68명에도 끼지 못한 게 현실이다. 방 안에서 부는 퉁소 소리가 너무 요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종구 논설위원kjg@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