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대 대선에서 여야 후보 모두 ‘경제민주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재벌 규제와 서민경제 활성화를 통한 ‘민생 살리기’가 그 골자라고 할 수 있다.
우리 헌법은 제119조 제2항에서 경제민주화를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기회와 성과가 고루 분배되기보다는 소수가 이를 독점해 왔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80년대 이후 불어 닥친 신자유주의 풍조는 우리사회 모든 분야에 무한경쟁 원리를 만연시켰다. 이로써 외적 성장은 촉진되었다고 하겠으나, 계층간 불평등과 사회 양극화는 한층 가중되었다. 혹자는 이를 두고 과거 ‘배고픈 시대’가 지나가자, 이제는 ‘배 아픈 시대’가 도래했다는 뼈아픈 지적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인수위의 인선 결과를 두고 차기정부의 경제민주화 실천 의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박근혜 캠프에서 경제민주화를 담당했던 김종인 위원장이 배제된 데 이어, 이 분야를 담당할 전문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두고 민주당은 “경제민주화를 선거용으로만 써먹고 용도폐기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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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범 김구 선생이 쓴 ‘不患寡而患不均’ 휘호 |
한편, 지난 대선 때 문재인 민주당 후보 캠프에서 경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이정우 경북대 교수는 지난해 10월 ‘경제민주화’를 두고서 “억울한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이 교수는 <논어>의 ‘불환과이환불균, 불환빈이환불안(不患寡而患不均 不患貧而患不安)’ 구절을 언급하며 경제민주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또 “경제성장, 일자리, 복지국가, 경제민주화 중 경제성장과 일자리는 모자라는 것을 채운다는 성장 개념에 가깝고,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는 고르지 못한 것을 고르게 하는 ‘균(均)’에 해당한다”면서 “고르지 못한 양극화 상황, 즉 ‘균’을 해결하는 것이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가 인용한 문구는 <논어(論語)> ‘계씨편(季氏篇)’에 나오는 말로, 원문은 “聞有國有家者 不患寡而患不均하며 不患貧而患不安이라 하니, 蓋均이면 無貧이오 和면 無寡오 安이면無傾이니라.”이다. 이를 번역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듣자 하니, 나라와 집을 다스리는 사람은 부족한 것을 근심하지 않고 고르지 않을까를 근심하며, 가난을 근심하지 않고 편안하지 않을까를 근심한다고 했다. 물자 분배가 고르면 가난이 없고, 화목하면 백성이 적지 않으며, 편안하면 한 쪽으로 기울지 않을 것이니라.”
요지는 물자 부족을 걱정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고르게 분배할 것인지를 고민하라, 또 물자를 고르게 분배하면 빈곤이 없다는 얘기인 셈인데 춘추전국시대 공자의 가르침은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덕목이라고 하겠다.
여기에 ‘옹야편’의 ‘君子周急不繼富’ 즉, “군자는 급박한 자를 두루 구제하지, 부유한 자를 계속 돌봐주지는 않는다”는 말까지 보탠다면 경제 민주화의 필요성은 더욱더 절실해진다고 하겠다.
그간 정부는 ‘재벌/부자 편들기’ 정책을 펴왔다는 지적을 줄기차게 받아왔는데, 이제야말로 서민과 중소기업을 살리는 고른[均] 정책이 절실하다고 하겠다.
한국은 지난해 2년 연속 무역규모 1조 달러를 달성하면서 이탈리아를 제치고 세계 8위로 올라섰으며,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따라서 우리의 상황이 물자와 재원이 부족하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러나 빈부격차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으며, 부(혹은 가난)의 대물림은 고착화되고 있다. 결국 요체는 ‘분배의 정의’를 세우는 일이다.
백범이 주석으로 있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중심사상인 ‘삼균(三均)주의’는 정치적 균등(보통선거제), 경제적 평등(토지국유와 대(大)생산기관 국유제), 교육적 평등(국비 의무교육제)을 골간으로 하여, 이를 통해 개인과 개인간의 고르고 행복한 삶을 추구했다.
근 100년 전 우리 선조들의 선견지명이 오늘에 와서 더욱 돋보인다고 하겠다.
(* 참고로, 백범 김구 선생의 ‘不患寡而患不均’ 휘호는 1948년 김준보가 ≪토지개혁론요강≫을 펴낼 때 이를 기념해서 써 준 것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