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군 의혹(정치, 선거 개입)

"밤 11시 기습 발표... 속았죠. 진실 밝혀지길 바라는 마음, 딱 그것뿐"

道雨 2013. 4. 23. 17:01

 

 

 

"밤 11시 기습 발표... 속았죠. 진실 밝혀지길 바라는 마음, 딱 그것뿐"

[인터뷰] '국정원 댓글사건' 경찰 윗선 개입 폭로한 권은희 전 서울 수서서 수사과장

 

 

▲ '국정원 댓글사건' 경찰 윗선 개입 폭로한 권은희 수사과장 '국정원 댓글사건'을 축소하라는 상부의 압력을 받았다고 폭로한 권은희 전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과장(현 송파서 수사과장)이 24일 오전 서울 송파경찰서로 출근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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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만남은 달랐다. 한결 부드러워졌다. 환하게 웃음짓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29)씨의 오피스텔 앞에서, 그리고 김씨를 소환 조사했던 경찰서에서 만난 권은희(39)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현 송파서 수사과장)은 입을 굳게 다문 굳은 얼굴이었다.

"그때 심기가 그랬어요. 그 표정을 봤다면 많이 놀라셨겠어요.(웃음)"

권은희 과장은 23일 오후 송파경찰서로 찾아간 기자와 만나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권 과장이 '심기가 그랬던' 이유는 경찰 윗선의 수사 개입 때문이었다. 김씨를 2차 소환했던 1월 4일, 그는 경찰 윗선으로부터 "'(언론에) 한마디라도 더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말을 들었다. 여론의 눈과 귀가 국정원 직원 수사에 쏠려 있을 때였다.

곧이어 한 언론사에서 '국정원 직원을 불기소 한다'는 오보가 나왔다. 자신도 모르는 수사 결과가 자신을 출처로 달고 나온 것이다. 두 가지 일이 동시에 터진 그날, 그는 "참담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월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으로 전보 조치됐다. 수사를 마무리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다. 그리고 2개월 후 화제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권 과장은 지난 19일 "지난해 12월 민주통합당이 수서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한 이후 수사 내내 서울경찰청에서 지속적으로 부당한 개입이 이뤄졌다"고 폭로했다. 권 과장은 "(지난해 12월 16일) 서울경찰청이 중간 수사를 발표한 뒤 국정원 직원 김씨의 컴퓨터 하드디스크 최종 분석자료를 우리에게 안 주려고 했다"며 "우리(수서경찰서 수사팀)가 '당신들, 법 위반이다'라는 말까지 하며 격렬히 항의했다"고 주장했다.

사시 합격 후 여성 최초로 경정 특채... 그리고 '국정원 수사'

이광석 수서경찰서장이 국정원 사건 수사를 마무리하고 검찰에 송치하면서 수사결과를 발표한 18일 바로 다음 날이었다. 이 서장은 국정원 직원이 정치활동을 한 건 맞지만, 선거 개입은 아니어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 서장은 "판례, 법리 등을 나름대로 면밀하게 검토한 결과, 피의자들의 행위가 선거운동에 이르지는 않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권 과장 발언의 후폭풍은 거셌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전면 재수사한다는 방침을 밝혔고, 경찰도 권 과장의 발언을 바탕으로 수사 라인 관계자들에 대한 진상 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권 과장은 곧 '내부고발자', '양심선언자'가 됐고, 한 인터넷 누리집에서는 '권 과장을 지켜야 한다'는 서명운동도 벌어졌다.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 권 과장은 웃으며 말했다.

"사랑받는 것은 좋죠. 인간인 이상 사랑받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죠."

권 과장은 광주 출신으로 지난 1997년 전남대 법대를 졸업한 뒤 2001년 사법시험 43회에 합격, 2005년 여성 최초로 경찰에 경정으로 특채돼 화제를 모았다. 지난 21일에는 문희상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권 과장을 '광주의 딸'이라고까지 칭했다. 이같은 반응에 권 과장은 조심스러웠다. 더 자세한 자신의 이력이 드러나길 원치 않았다. 더 중요한 것, 윗선 개입의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제가 경찰 수사의 문제점을 제기한 거예요. 말 그대로 해야 할 일을 한 거잖아요. 제 개인적인 부분들, 예를 들면 무엇을 공부했고 어떤 이력을 가졌다는 게 더 부각되는 것은 원치 않아요. 진실이 밝혀져 경찰이 발전하고 신뢰받기를 바라는 그 마음, 거기서 비롯된 거예요. 딱 그것뿐이에요."

 '국정원 댓글사건'을 축소하라는 상부의 압력을 받았다고 폭로한 권은희 전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과장(현 송파서 수사과장)은 "중요한 점은 제가 경찰 수사의 문제점을 제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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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기습 발표...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 속았다"

경찰의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 수사에서 가장 큰 비난을 받는 지점은, 중간수사결과를 지난해 12월 16일 밤 11시에 기습적으로 발표한 것이다. 권 과장은 이 기습 발표에 대해 "정말 예상치 못했다"며 "속았다"고 표현했다.

"서울청은 수사의 신속성이 중요하다고 했죠. 저희도 물론 신속성이 중요하지만 충분한 수사도 놓칠 수 없었어요. 저희 팀에서 회의를 했고, 서울청의 신속한 수사 요청을 거절했어요. 그 상태에서 (서울청 사이버수사대 디지털증거분석팀에 의뢰한) 컴퓨터 하드디스크의 분석결과를 받으면 충분한 수사가 가능하다고 판단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그날 밤에 발표를 한 거잖아요. 정말 예상치 못했죠. 속았죠. 그리고 이틀 후에 분석결과를 받았어요."

그 시점에서 그는 외부에 폭로하는 방안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외부에 알리기보다 서울청을 향해 계속 항의하면 충분한 수사가 가능할 것이라 믿었다. 그러다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으로 전보조치됐다. 경찰의 수사결과 발표를 기다렸다. 정치개입은 했지만 선거개입 혐의는 없다'는 결과가 나오자 권 과장은 진실을 밝히고 나섰다.

이성한 경찰청장은 권 과장의 주장을 진상조사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잘못되거나 과장된 부분이 있다면 권 과장을 감찰하는 것도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권 과장은 '쿨하게' 대답했다.

"문제의식을 진지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당연히 그럴 거라고 기대해요."

권 과장은 민감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경찰의 수사 결과에 대한 평가, 윗선이 누구인지에 관한 질문에는 함구했다. 이제 앞으로 남은 것은 검찰의 재수사다. 또는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가 이어질 수도 있다.

여전히 국정원의 불법 정치개입이 누구 선에서 시작됐는지 그리고 어디까지 이뤄졌는지, 그 진실은 감춰져 있다. 권 과장은 그 진실로 가는 문을 열었다.

 '국정원 댓글사건'을 축소하라는 상부의 압력을 받았다고 폭로한 권은희 전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과장(현 송파서 수사과장)은 "문제의식을 진지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면서 "당연히 그럴 거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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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호, 강민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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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 더하면 가만 안 둘것"

지난 1월  경찰 고위층 말 전해 들어 

 

 

 

‘경찰 수사’ 맡았던 권은희 과장 인터뷰
국정원 직원 재소환때 ‘함구령’, 기다린 기자들에 아무말 못해
윗선 방해·은폐 양심고백? 사건 담당자로 할 말 있을뿐
열쇳말 4개만 검색, 신뢰 상실
더 말하면 제 직분을 넘는 일

“(언론에) 한마디라도 더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

 

 

권은희 전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과장(현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은 대선 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국가정보원 직원 김아무개(29)씨를 재소환했던 지난 1월4일, 경찰청 고위 관계자의 이런 말을 전해들었다.

 

22일 <한겨레>와 만난 권 과장은 “지난 1월4일 김씨의 소환 조사가 끝난 뒤, 언론에 김씨의 인터넷 활동 시간, 게시물의 성격 등을 확인해주려고 했지만, (고위 관계자의 말을 전해듣고) 아무 얘기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다음날 새벽 2시까지 김씨에 대한 조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던 40여명의 기자들은 평소와 달리 수사 결과에 대해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

권 과장은 “(경찰청 고위 간부가) 직접 전화를 걸진 않았지만 주변 동료를 통해서 거듭 이런 메시지가 전달됐다”고 말했다.

 

 

권 과장은 최근 경찰 수사 과정에서 윗선의 방해와 은폐 시도를 밝히며 여론의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런 행동이 ‘폭로’나 ‘양심고백’과는 거리가 멀다고 했다.

“단지 수사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느꼈고 이런 문제가 해결돼야 앞으로 다른 사건 수사도 공정하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 필요한 문제제기를 한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권 과장이 수사를 맡은 건, 지난해 12월11일이었다. ‘국정원 직원이 오피스텔에서 대선과 관련한 댓글을 쓰고 있다’고, 민주통합당이 경찰과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하면서다.

그의 수사 의지는 확고했다.

수사가 한창이던 1월23일 <한겨레> 기자에게 “경찰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수사 도중 과로로 병원에도 몇 차례 드나들었다.

 

 

하지만 권 과장이 국정원의 대선 개입이 맞다는 심증을 처음부터 강하게 갖고 있던 것은 아니다.

이 사건이 처음 불거진 지난해 12월11일 국정원 직원 김씨의 서울 강남구 역삼동 오피스텔 앞 장면을 떠올려봐도 그렇다.

당시 권 과장은 김씨에게 계속 ‘수사 협조’를 요청했다.

김씨는 문을 걸어 잠근 채 수사를 거부했고, 민주당 등은 “김씨의 집 문을 강제로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권 과장은 끝까지 강제수사를 하지 않았다.

 

 

사법고시 출신으로 2005년 경정 특채를 통해 경찰에 발을 들인 권 과장은 당시 대치 상황을 떠올리며 “법적으로 조금만 근거가 있었다면 강제수사를 했을 거다. 그런데 그런 근거가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대선 직전 달아올랐던 여론의 비판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권 과장은 국정원 사건 수사 내내 ‘철저’와 ‘공정’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다 2월4일 송파경찰서로 전보됐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국정원 사건 수사에서 손을 떼게 된 것이다.

최근 그가 수사 과정의 문제점을 공개적으로 제기한 것도, 철저하고 공정한 수사가 이뤄지지 못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권 과장이 이끈 수서경찰서 수사팀은 지난해 12월14~16일 서울경찰청이 국정원 직원 김씨의 하드디스크를 분석할 때 100여개의 열쇳말을 검색해 달라고 의뢰했지만, 서울경찰청은 문재인·박근혜 등 4개로만 검색을 진행했다.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는 이유였다.

권 과장은 “빠른 수사도 중요하지만 철저한 수사가 있어야 신뢰할 만한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결국 서울경찰청은 ‘빠른 수사’만 고집했고, 대선 직전 왜곡된 중간 수사 결과 발표로 거센 비판을 받았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수사가 아니라 발표만 빨랐던 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 누리꾼들이 권 과장의 용기있는 발언을 응원하는 등 여론의 관심이 커진 데 대해, 권 과장은 “나 개인이 부각되면 오히려 내 문제제기 내용이 묻히고, 이상한 논란만 커진다”며 사태의 본질이 흐려질 것을 우려했다.

 

 

권 과장은 앞으로 검찰에서 진행될 ‘수사’를 이유로 말을 아끼고 있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면 수사 내용을 말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면 수사에 영향을 주게 되고, 제 직분도 넘어서게 됩니다. 그럴 순 없죠.”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