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관련

[천안함 제21차 공판 ①] 합조단 합류 과정에 대하여

道雨 2014. 2. 14. 17:17

 

 

 

[천안함 제21차 공판 ①] 합조단 합류 과정에 대하여
<조사위원 교체를 요구>하며 맹공을 퍼부었던 그들
신상철 | 2014-02-13 17:55:2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지난 월요일(2월 10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서관 524호에서 천안함 제21차 공판이 열렸습니다. 참석 증인으로는 이재혁 대령(당시 합조단 선체구조분과)이 증언석에 섰습니다.

이번 재판에서는 이재혁 대령 외에 문병옥 소장(현 3함대 사령관, 합조단에서 대변이 역, 당시 준장)과 조종설 대령(합참 전비태세검열실 검열과장, 합조단 당시 총괄팀장) 역시 출석키로 되어 있었으나 재판을 앞두고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여 이재혁 대령만 출석하였습니다.  

 

이재혁 대령은 천안함 사고 당시 국방부 방위사업청에서 함정 설계를 담당했다고 합니다. 그는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였지만 전투병과(항해등) 보다는 기술병과(공학) 쪽으로 공부를 하고, 그 분야계통에서 근무를 해오고 있는 분입니다. 

오늘은 이번 재판에서 다루어 진 부분 가운데 제가 합조단에 합류하게 된 과정에 대하여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1. 신상철 위원의 조사활동 참여와 관련하여 

 

제가 2010년 4월 30일 평택2함대에서 천안함을 처음 조사하고, 그들의 진실 왜곡과 조작에 대해 칼럼형식으로 혹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 사실을 국민들께 알리자 국방부와 합조단은 언론을 통해 적극적으로 저에 대해 비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국회에 공문서를 보내 '민주당 추천위원 교체 요구서'를 발송하였습니다.

 

당시 국방부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저를 비난했던 주요 포인트는 <조사에 성실히 임하지 않았다> 였습니다. 그 근거로 <합조단이 구성되고 난 후, 신상철 위원이 단 한 번 밖에 조사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그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켰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국방부의 주장은 조.중.동을 통해 큰 활자와 함께 확산되면서 저를 비난하는 핵심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그에 대한 진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가 다시 서술하기 보다는 2012년 출간한 저의 졸저 “천안함은 좌초입니다”의 내용을 인용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합동조사단에 민간 조사위원으로 참여하다
합조단은 왜 조사위원들 전원에게 합숙을 요구했을까?

천안함 사고가 터진 지 며칠 후 민주당 천안함 특위 간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신상철 대표시죠?”
“네, 그렇습니다”
“저는 민주당 천안함 특위 간사인데요, 신 대표님 해군 장교 출신이시죠?”
“네, 그런데요?”
“이번 천안함 사고에 대해 저희들에게 한번 설명 좀 해주시겠습니까?”

민주당 천안함 특위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내가 대표를 맡고 있는 인터넷 정치웹진 서프라이즈가 민주당과 우호적인 관계이기도 했지만 내가 한국해양대학 출신에 해군에서 장교로 복무하고 해운회사에서 항해사로 근무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 여의도 바닥에서는 꽤나 특이한 경력으로 여겨졌던 터라 연락이 쉽게 닿은 듯했다.

국회 민주당 회의실로 오라하여 자료를 준비해서 갔더니 전문위원들과 특위위원들이 모여 있었다. 나는 천안함 사고를 유발시킬 수 있는 모든 가능성에 대하여 브리핑했다. 그리고 인양과 관련된 부분과 부표 등 중점적으로 챙겨야 할 내용을 설명하고 질문에 답하는 등 해운, 해양, 조선, 해군과 관련된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이후 국방부에서 천안함 사고 원인을 밝히기 위한 민군합동조사단을 구성하면서 국회를 통해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전문조사위원 추천을 의뢰하자 민주당은 내게 조사위원으로 활동해 줄 것을 요청했고 나 역시 마다할 이유가 없어 합조단 조사위원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왜 조사위원 전원을 합숙시키려 했을까

2010년 4월 중순 토요일 아침, 합조단 문병옥 준장(당시 합조단 대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문_ 신상철 위원님이시죠?
신_ 네, 그렇습니다만.
문_ 합조단 대변인 문병옥 준장입니다. 합동조사단에 합류하셔야 하는데 내일 오전에 짐을 챙겨서 평택 2함대로 오시지요.
신_ 네? 짐을 챙겨요? 천안함이 지금 육지에 올라와 있지 않습니까?
문_네, 평택 2함대에 올려져 있습니다.
신_ 그러면 서울에서 출퇴근하면 되지 않습니까? 왜 짐을 챙겨가야하죠?
문_아, 숙소에서 합숙해야 합니다.
신_ 합숙요? 어디에서 합숙한다는 거죠?
문_아, 독도함에서 합숙을 합니다.
신_ 독도함요? 조사위원 전원이 합숙을 해야 하는 겁니까?
문_ 네, 그렇습니다.
신_ 독도함이 접안해 있습니까, 바다에 떠 있습니까?
문_ 바다에 떠 있습니다.
신_ 아니, 배는 육지에 있는데 왜 숙소가 바다에 떠 있는 독도함입니까?
문_ … 그렇게 정했습니다.
신_ 출퇴근이나 외출은 허용되지 않습니까?
문_ 네, 허용되지 않습니다.
신_ 그러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조사가 끝날 때까지 독도함에 갇혀 지내야 하는 겁니까?
문_ 네, 그렇게 결정했습니다.
신_ 그러면 저는 조사위원으로 참여하지 않겠습니다. 민주당에 조사위원 자격을 반납하겠습니다.
문_ 네, 알겠습니다.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 귀에는 ‘당신을 국방부 손아귀 안에 머물게 하겠다’는 뜻으로 밖에는 달리 이해할 도리가 없었다. 서울에서 평택까지 얼마든지 출퇴근하면서 조사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데도 왜 굳이 안 된다는 건지, 일과시간에만 조사 활동을 하고 이후에는 휴식을 취한다면서 왜 전원이 합숙을 해야 하는 건지, 천안함 사고 원인 조사위원이 무슨 대학수능시험 출제위원도 아닌데 무엇 때문에 외출조차 금지된 채 전원 합숙을 해야 한다는 건지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 무렵(4월 중순) 이미 천안함 사고 관련 12편의 분석글(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한 소고│해군의 총체적인 난맥상―해상교범 새로 써야│천안함 침몰 사고, 정부는 진실을 밝혀라│이명박스러운 후진적 인명구조작업│천안함이 ‘피로파괴’로 침몰했다고?│MB정권은 선체 조기인양과 생존자 구출을 원하지 않았다│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두 번의 사고’ 가능성│함대사령부 최초 보고―“선체가 좌초된 것 같다”│국방부 발표에 놀아나는 진보 언론들│27일 오전 용트림 앞 떠오른 함수 천안함 맞나?│아시아경제, 진실을 보도하다―‘1차 원인은 좌초’│소위 전문가들의 견해에 답한다)을 올려놓은 상황이었고 무수한 댓글토론을 통해 네티즌들과 검증작업을 진행하고 있던 중이었다.

천안함 사고 이후 불과 2주 이내에 분석한 내용이지만 그 모두가 천안함 사고 원인 규명의 핵심이랄 수 있는 중요한 단서들이었다. 두 번의 사고 가능성, 최초 좌초 보고, 용트림바위 앞 함수, 아시아경제 해군작전상황도 등 천안함 사고 관련 가장 핵심 내용들이 거의 언급된 셈이다(당시의 분석에 대해 나는 지금도 같은 입장일 뿐 아니라 그것을 입증할 증거들을 대부분 확보한 상태다).

그런데 그 정도 분석을 해놓은 상태에서 ‘합조단 합숙실’에 갇혀버린다면 더 이상의 분석과 토론이 진행되지 못하고 중단될 것이고 천안함의 진실을 밝히는 일 자체가 좌절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엄습했다. 과연 합조단에서 내가 자유롭게 조사하는 것을 허용할 것인가? 내가 개인적으로 컴퓨터를 통해 조사한 내용을 게재하고 토론하는 것을 허용할 것인가? 하지만 그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2주간의 분석을 통해 국방부가 천안함 사고와 관련 많은 부분을 국민에게 감추고 있거나 왜곡·조작하여 발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문병옥 준장에게 합숙 요청을 거부하겠으며 조사위원을 민주당에 반납하겠다고 했고, 그날이 토요일인지라 월요일이 되면 민주당에 그 내용을 통보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날인 일요일 오전 문 준장으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다.

문_ 신 위원님?
신_ 네.
문_ 이미 조사위원으로 위촉되셨기 때문에 사퇴는 곤란하다고 하니 옵서버로 참석하시면 어떻겠습니까?
신_ 옵서버로 참석하라니, 무슨 뜻입니까?
문_ 조사위원 자격은 유지하되 필요할 때만 조사에 참석하는 것입니다.
신_ 그래요? 그러면 그렇게 하죠.

그날 오후에 다시 문 준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문_ 두 번만 참석하시죠. 중간 조사발표 때 한 번, 최종 조사발표 때 한 번.
신_ 네, 좋습니다. 중간 조사발표가 언제죠?
문_ 4월 30일입니다. 그날 평택 2함대로 오시면 됩니다.
신_ 네, 알겠습니다. 그날 천안함을 조사할 수 있는 거죠?
문_ 네, 볼 수 있습니다.
신_ 네, 그날 뵙겠습니다.


단 한 번의 선체 조사로 충분한 까닭

나는 문 준장의 제안에 흔쾌히 응했다. 그동안 나는 ‘천안함 선체를 함수 앞에서 함미 끝까지 딱 한 번만 전체적으로 조사할 기회만 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사고 원인을 밝힐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여러 번 가야 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았다. 두 번 이상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단 한 번이라도 조사할 기회만 주어진다면 내게 남은 의문을 대부분 풀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내가 조사하고자 했던 것은 간단했다. 폭발의 증거가 있는지, 좌초나 충돌 증거가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선체 외판, 프로펠러, 선저하부, 빌지 킬bilge keel(배의 요동을 줄이기 위해 선저 만곡부를 따라 돌출시킨 종통재), 라더rudder(키), 절단면, 절단면 내부, 절단면 케이블, 샤프트shaft(축계軸系, 추진기관에서부터 프로펠러로 축의 출력을 전달하여 선박에 추진력을 부여하는 기구), 선내 각종 설비outfitting들의 고박(묶어 고정하는것), 유리제품의 파손 상태 등을 조사하면 되는 일이었고, 이 모든 것들을 확인하는 데는 단 한 번의 선체 조사만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런 의문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2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도 논란에 휩싸여 있을 만큼 복잡한 천안함의 사고 원인을 단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고? 당신 너무 건방진 얘기 하는 것 아니야?”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다. 나는 천안함 사고가 발생하고 천안함이 물 위로 모습을 드러내기도 전에 원인의 핵심 대부분을 밝혔고,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데 지금까지의 시간이 필요했던 셈이다. 따라서 내가 눈으로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은 천안함 사고의 원인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만 내가 분석해놓은 것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나는 그것을 내 눈으로 확인했기에 지금까지 변함없이 내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나의 분석은 ‘이건 이럴 거야, 저건 저랬을 거야’ 라는 추론이나 추정에 따른 분석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필연들을 연결하고, 절대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을 배제한 결과의 총체적 결론이기 때문에 ‘선체 검사’라는 절차는 그것을 확고하게 확인하는 과정에 불과했을 뿐이며 그래서 단 한 번의 조사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것은 마치 온갖 검사를 통해 분석한 결과로 위암이라는 판정을 내리는 과정과 같고, 그러한 결론을 내린 후 개복수술을 하여 위 안에 있는 암세포를 제거하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마 위암일지도 모르겠다’라는 짐작만으로 함부로 배에 메스를 갖다 대는 의사는 없을 것이다. 나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확실한 근거에 따른 확신이 없었다면 그런 결론을 함부로 입에 담지 못했을 것이다.

나에게 “당신이 위암을 진단하는 의사의 수준만큼, 선체의 사고를 진단하는 수준을 갖추고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거침없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 만큼 선박과 운항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갖추고 있다고 자부한다.

국방부가 나를 비토하고 조·중·동을 필두로 한 수구언론들이 악의적인 기사로 ‘자격이 없다’며 깔아뭉갠 탓에 아직까지도 그러한 덧칠이 씌어 있는데다가 내가 그에 대해 아직껏 한 번도 ‘나는 이만큼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는 사람이다’며 공개적으로 항변한 적이 없으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의 자격’을 알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그래서 나는 이 책을 통해 내가 경험했던 독특하고 특이한 경력에 대해 비교적 소상하게 펼칠 생각이다.

조작과 은폐와 왜곡을 감추기 위한 몸부림

합조단과 문병옥 준장이 내게 합숙과 외출 금지를 요구했던 이유, 그것을 거부하자 옵서버로 몇 번만 참석하라며 수정 제안한 이유는 당시 천안함의 사고 원인과 국방부 주도 조작·은폐의 중요한 부분들이 그때까지 내가 올린 12편의 글 속에 고스란히 언급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조금은 낯간지러운 느낌도 들지만, (이제는 이런 말을 해도 된다고 보아 주시면 좋겠다) 천안함 사고 후 2주 동안 내가 올린 글들을 보면서 그들은 분명 경악했을 것이다. 천안함 침몰 후 물위로 모습을 드러내기도 전인데 천안함 사고의 원인과 그들의 은폐에 관한 중요한 핵심사항들을 대부분 펼쳐놓았으니 그들이 받았을 충격은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나의 손가락을 키보드에서 떼어 놓아 네티즌들로부터 격리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이 불가능하게 되자 자격 운운하며 인격에 먹칠을 하고 사법적으로 옭아매려고 했던 것 역시 그들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그에 따른 반작용이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도 있겠다. 다만 안쓰러운 것이 있다면 그들의 몸부림이 조작과 거짓과 은폐와 왜곡을 감추기 위한 악의적 행위였다는 사실과 점점 더 커다랗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진실 앞에서 그들의 속 역시 더 새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으리라는 사실, 그것을 조만간 국민 모두가 함께 보아야 한다는 비극적 현실을 맞아야 한다는 사실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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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분명히 합조단 문병옥 대변인과의 통화로 4월 30일에 첫 조사를 하기로 약속을 하였고, 당연히 그들은 4월 30일 이전 저에게 어떠한 통화도 없었을 뿐만아니라, 4월 30일 당일 아침 평택2함대로 가서 조사에 임했기 때문에 그들은 저에 대해 <조사에 성실히 임하지 않았다는 둥> 어떤 비난도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제가 다각도로 조사할 수 있는 여건에 제약을 가하기 위해 합조단 내에 묶어 두려 했을 뿐이지요.
 

2. 새로이 드러난 사실 - 민간위원들은 출퇴근 했다

 

위에 제가 “천안함은 좌초입니다”책의 내용을 원문 그대로 인용한 이유는, 합조단이 <조사위원들의 합숙문제>에 대해 얼마나 강력하게 요구하였는지, 그리고 합조단은 소위 <보안>의 이유로 조사위원들이 외부와 소통하는 것 자체를 원치 않았던 당시의 정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드리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의 재판에서 참으로 허탈하고 어이없는 상황이 연출되었습니다. 합조단에서는 민간조사위원들에게 <합숙>을 요구하자, 일부 위원들이 “개인적인 직업이 있기 때문에 합숙이 곤란하다”고 하여 실제로는 합숙을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도대체 이게 어찌된 일일까요? 그렇다면 그들은 왜? 저에게 다시 전화를 하여 “민간 위원들에 대해 합숙을 하지 않기로 했으니 지금이라도 합류를 하시라”고 전화를 했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재판정에서 저의 변호인이 이재혁 대령에게 물었습니다.

 

변호인 : 증인은 검찰진술에서 “다만 민간위원들은 개인적으로 직업이 있기 때문에 사정상 합숙을 하며 상근을 할 수 없다고 거절하여 실제로는 모든 민간위원들이 전부 비상근 조사위원으로 근무했다”고 진술했는데 사실인가요?

이재혁 : 네.

변호인 : 그러면 합조단에서는 왜, 신상철 위원에게는 “합숙없이 비상근으로 조사에 임할 수 있다”는 제안을 하지 않았던 것인가요?

이재혁 : … 했는지, 안했는지… 자세히 알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 황당하여 헛웃음만 나오더군요. 문병옥 준장이 저에게 <합숙>을 요구하며 전화를 걸었던 것이 2010년 4월 16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합숙을 거부하자 제가 중간조사와 최종조사만 참석키로 하고 첫 조사를 가기로 약속한 날짜가 4월 30일이었고 그날 첫 조사에 입했습니다.

 

그 사이에 다른 민간조사위원들은 <합숙하지도 않았고, 자유롭게 출퇴근하며 조사를 했었다>는 사실이 이번 재판에서 드러난 것이지요. 그들은 왜 저에 대해 처음부터 <민간조사위원들은 합숙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일단 와 보시라>고 말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이미 민간조사위원은 합숙 않기로 결정했음에도 민주당 추천위원인 저에게는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을까요?


3. 합조단은 신 위원의 언론 인터뷰, 칼럼과 댓글까지 정리해놓고 있었다

 

당시 제가 평택2함대에 가서 조사를 하던 날, 합조단에서는 제가 그동안 언론과 했던 인터뷰 내용과 기고 칼럼, 서프라이즈 등에 올린 천안함 분석글은 물론 심지어 댓글까지도 복사를 하여 편철해 놓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부분에는 칼라팬으로 색색깔로 마킹을 해 놓고 있었습니다.

 

이번 재판에서도 이재혁 대령의 진술가운데 제가 썼던 칼럼의 내용과는 별개로 댓글을 통해 네티즌들과 논의를 하였던 내용에 대해 언급을 하는 등, 제가 천안함의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에 대해 전방위적으로 추적하고 마킹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저에게 합숙을 요구했고, 그에 응하지 않자 조사의 기회를 두 번으로 제한했으며, 제가 첫 조사를 갔던 날, 터무니 없이 상석의 자리를 배치해 주고 다각도로 회유코자 하였으나 그것도 먹히지 않게되자 <조사위원 교체를 요구>하는 등 맹공을 퍼부었던 것이지요.


4. 이재혁 대령의 Miscommunication

 

이번 재판과정에서 당시 천안함 선체 조사 당시 이재혁 대령의 Miscommunication에 대해 한가지 언급하자면, 오전 브리핑이 끝나고 미국.영국 조사단과 함께 선체조사를 나갈 때 이재혁 대령도 함께 갔었나 봅니다. 당시 십수명이 함께 움직였기 때문에 이재혁 대령이 누군지도 몰랐었는데 이번 재판에서 함께 그 자리에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거지요.

 

저는 천안함 선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미국 대표단과 직접 대화를 통해 질문과 답변을 주고 받았습니다. 그리 능통한 영어는 아니지만, 그들과 소통하는데 별 문제는 없었고, 사고 원인과 관련하여 예리하게 따지고 묻기를 반복해야 했기 때문에 중간에 통역을 통해서 대화하기 보다 직접 대화하는게 더 나았고 효율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미국측과 주고받는 말의 내용을 옆에서 귀기울여 들은 통역장교가 한국군 장교들에게 나즈막히 한국말로 통역해 주게 되었던 겁니다. 하여 저는 미국측 대표와 각을 세우며 따지고 답변듣기를 반복하느라 통역장교가 뒤에서 한국군 장교들에게 뭐라고 전달을 하는지 전혀 귀기울이지 않았었지요.

 

그런데 이번에 이재혁 대령이 진술한 내용 중에, (당시 이재혁 대령이 잘못 알아 들었는지, 아니면 통역장교가 잘못 전달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당시 천안함 선체를 조사하면서 “배가 좌초로 침몰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나도 좌초로 배가 침몰했다고 주장한 적은 없다. 그렇지만 침몰 이전에 암초 등에 접촉했다고 볼 수 있는 어떤 선저 긁힘 현상은 있다”라고 말을 했다는 겁니다.

 

이재혁 대령께서 2010년 당시에도 그랬었지만, 이번에 재판의 과정에 대해서도 제가 어떤 글을 서프라이즈에 올리는지 관심을 갖고 지켜 볼 것이 분명하므로, 다시 정확하게 짚어드리겠습니다. 이재혁 대령께서 언급하신 것처럼 중간부분을 확 빼버리고 앞과 끝만 이야기하면 논리에도 맞지 않고, 제가 매우 비겁한 발언을 한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  

 

<침몰 이전에 암초 등에 접촉했다고 볼 수 있는 어떤 선저 긁힘 현상> 그 자체가 바로 <좌초>인데, <배가 좌초로 침몰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나도 좌초로 배가 침몰했다고 주장한 적은 없다> 라고 말한 것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지요. 그 말은 <나도 좌초라고 말한 적 없다. 그런데 좌초다>라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요?

 

사실은 이렇습니다. 그날 미국측 조사위원에 저에게 그러더군요. <좌초로 이렇게 배가 부숴지지는 않는다>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그랬지요. <나도 좌초로 배가 이렇게 반파되었다고 말한 적은 없다. 이 배는 좌초를 하고 난 다음에 어떤 충격에 의해 이렇게 되었다고 본다. 이 배가 좌초를 한 것은 선저하부에 발생한 스크랫치로 입증이 된다. 그리고 선체를 반파에 이르게 한 것은 좌초가 아니고 충돌이다>라고 주장을 했는데, 그것을 거두절미하고 발췌해서 전달하니 논리에도 맞지 않는 주장이 된 거지요.

 

그리고 사실, 미국 양반이 이야기 한 <좌초로 이렇게 배가 부숴지지는 않는다>는 말도 진실은 아닙니다. 좌초로 그 이상 부숴지는 선박들, 숱하게 많습니다. 그것을 입증하는 시리즈 사진을 보여드리며 1편의 글을 마무리합니다. 모두 인터넷에서 간단한 검색만으로 찾을 수 있는 자료들입니다.

 

 

신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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