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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 한번 잘못 맞아서... 우리 아이가 죽었습니다." '환자안전법' 드디어 제정되나

道雨 2014. 12. 18. 11:52

 

 

 

주사 한번 잘못 맞아서... 우리 아이가 죽었습니다

'종현이법' 국회 상임위 통과... '환자안전법' 드디어 제정되나

 

 

 

'세월호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는 데 216일이 걸렸다. 세월호 유가족들에겐 그 어떤 순간보다 암담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세월호 특별법은 아이들이 죽어가야 했던 진상을 밝히기 위해 가장 필요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 1700일이 걸리도록 일명 '종현이법'이라 불리는 '환자안전법'이 통과되기만을 기다려온 부모가 있다. 사실 종현이법은 종현이가 죽은 이유를 밝히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다만 다시는 종현이처럼 안타깝게 죽어가는 환자가 없기를 바라면서 예방 차원으로 만들어진 법이다. 종현이의 부모는 환자의 안전이 보장되는 세상을 바라며 지난 4년 6개월을 매달려 왔고, 이제 남은 절차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둘뿐이다.

한순간의 실수... 아이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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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제 '빈크리스틴' 투약오류로 사망한 정종현군(9세)
ⓒ 환자단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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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당시 아홉 살이었던 정종현군은 4년여에 걸쳐 백혈병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은 백혈병 중 치료성적이 좋아 조혈모세포(골수) 이식 없이 항암치료만으로도 완치가 가능한 유형이었다.

종현이는 5월 19일 백혈병 완치를 위한 마지막 항암주사 치료를 받기 위해 입원했다. 의료진은 각각의 주사기에 '빈크리스틴'이라는 항암제와 '시타라빈'이라는 항암제를 담아 종현이에게 주사했다. 차례대로 주사하면 끝나는 일상적인 치료였다.

그런데 여기서 불행이 일어났다.

의료진이 무의식적으로 항암주사를 엉뚱한 곳에 찔러 넣었다. 항암제 '빈크리스틴'은 반드시 정맥으로 주사돼야 하는데 척수강 내에 잘못 주입이 된 것이다.

'빈크리스틴'은 척수강 내에 주사될 경우 독극물이나 다름없다. 결국 종현이는 온몸의 신경이 손상되는 고통 속에 죽음을 맞았다.

단 한순간의 실수였다. 의료진의 실수가 명백했고, 업무상과실치사죄도 충분히 인정될 만한 사항이었다. 하지만 종현이의 부모는 의사를 용서했다.

인간적인 실수는 눈 감는 대신 다른 길을 택했다. 같은 실수가 재발되지 않도록 '빈크리스틴 투약 매뉴얼'을 만들어 달라고 정부에 건의를 했다.

항암제 '빈크리스틴'과 같은 위험한 주사는 다른 주사와 서로 혼동하지 않도록 구별하는 방안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였다.

그런데 다른 병원에서도 각종 투약 오류가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언론방송 보도가 계속되면서, 종현이 부모는 국가 차원의 제대로 된 안전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 후 그들은 환자단체들과 '환자안전법' 제정운동을 4년 반에 걸쳐 펼쳐왔다.

환자안전법이 환자나 일반 국민들에게는 적극 환영받는 듯하지만, 모두가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환자안전법의 주요 내용은 보건복지부를 주축으로 국가 차원의 환자안전 관리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세부 사항으로는 의료인의 자율보고를 통해 의료사고 예방학습 시스템을 운영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의료기관들은 환자안전위원회 및 환자안전 전담인력을 갖추는 것을 포함한다.

결국 환자안전법 제정은 의료기관 측에 상당한 부담을 준다. 까다로워지는 절차도 그렇지만, 환자안전 관련 위원회 및 전담인원의 운영비 등 들어갈 예산도 만만치 않다. 또 정치적으로도 지금까지의 의료시스템 결함을 인정하는 셈이라 거북스럽기도 하다.

종현이의 부모는 공청회나 세미나 등에서 환자안전법에 대해 예산 문제나 법 시행 시에 현실과의 충돌 등을 지적하는 사람들을 여럿 만났다고 한다. 그리고 "그 중 대부분은 의료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는데 환자안전법의 제정 취지와 핵심 내용은 무시하고 자신들의 입장만 내세우는 모습에 화가 나기도 했다"며 속마음을 꺼냈다.

종현이의 어머니인 김영희씨는 그들의 말을 전혀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차상위계층 가정이었기에 치료비를 전액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그런 국가의 치료비 부담마저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든 것이 의료진의 실수였다"며 "환자안전법 제정이 예산을 쏟아 붓는 게 아니라 예산을 아끼는 방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1인 시위로 시작해 1만 명 청원운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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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환자샤우팅카페에 참석해 소감을 밝히는 김영희씨
ⓒ 환자단체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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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씨는 사람들이 종현이가 겪은 일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2012년 9월부터 동대구역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1인 시위는 보통의 의료사고 피해자들이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선택하는 고통스러운 방식이다.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를 다시 꺼내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용기를 내서 거리로 나갔다. 그러자 지나가던 시민들도 이야기를 들은 후 위로를 건넸고 조금씩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그러던 중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비슷한 일을 겪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환자안전법 제정 운동을 시작했다.

그것은 험난한 여정이었다. 본래 의료사고를 겪은 환자나 그 가족은 정신적으로 약하고 피폐하다. 더군다나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상황에서 단순한 진상규명도 아닌, 의료계를 발칵 뒤집을 법률 제정을 국가에 요구하는 것은 힘에 부쳤다.

주변에서 응원의 목소리만 들려온 것도 아니었다. '그냥 저러다 포기하겠지', '환자 유가족들이 뭘 할 수 있겠어', '환자안전법은 아직 시기상조 아니냐'며 오히려 좌절 시키는 말들도 있었다. 김영희씨는 당시 심정을 이렇게 전했다.

"그냥 정상적으로 살다가 이 일을 했다면 힘들어 했을 거예요. 외친다고 금방 바뀌는 것도 아니고 늘 부탁하러 다녀야 했기 때문에 포기했을지도 모르죠. 그러나 아이를 떠나보낸 상황이 너무 힘들었답니다.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종현이에게 더 미안할 것 같았어요."

종현이 부모는 그런 결심에서 1만 명 문자청원 운동을 시작했다. "제2의 종현이가 생겨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 보자는 취지였다. 물론 문자청원 운동이 쉽게만 풀리지는 않았다. 열 명 중 한 명도 답변이 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김영희씨는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누리꾼들의 자정운동 덕분이다. 한때는 온라인으로 문자청원을 홍보하던 것이 스미싱 사기수법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사람들이 기피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지만 많은 수의 누리꾼들이 적극 해명에 나서주면서 고비를 넘겼다. 그것이 마지막 한 달 동안 8천 명이 문자를 보내오는 원동력이 됐다.

그리고 지난해 4월 7일 국회에서 환자안전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가 열리기 이틀 전, 극적으로 1만 명의 문자청원이 달성됐다. 비로소 그 때, 1만 명의 서명이 들어간 액자가 공청회에 참석한 국회의원들에게 전달됐다.

입법 후에도 가야 할 길 첩첩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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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자청원 현황과 1만명 서명 담긴 청원액자 국회전달 모습 환자단체연합 안기종 대표(왼쪽), 종현이 어머니 김영희씨(가운데), 새정치민주연합 오제세 의원(오른쪽)
ⓒ 환자단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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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청회 후 7개월 후인 지난 1월, 새정치민주연합 오제세 의원과 새누리당 신경림 의원이 각각 '환자안전법'을 대표 발의했다. 1만 명의 뜻이 한데 모인 결과였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입법과정이 시작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입법절차가 법안소위에서 한동안 정체되기도 했다. 이전에 제기됐던 예산 집행과 시행 후 겪게 될 운영문제, 그리고 의료계의 반발이 걸림돌이었다. 그리고 논의과정에서 환자안전법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 들어가 있던 위반 시의 벌칙조항들이 삭제되면서 본래 의미가 퇴색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종현이 부모와 환자단체들은 일부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일단은 입법과정이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고 신속한 국회통과를 촉구했다. 일부 조항을 문제로 시기를 놓쳐 버린다면 다시 논의되기까지 수년이 흐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국민의 관심이 모인 지금이 적기였다.

그 후 10개월 만인 11월 18일에 법안소위에서 환자안전법이 통과되면서 다시 입법진행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12월 4일 국회 상임위를 통과했다. 이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에서의 표결만 거치면 환자안전법이 제정된다.

환자단체연합회는 지난 8일 제13회 환자샤우팅카페를 개최해 김영희씨를 초대했다. 이 자리에서 김영희씨는 환자안전법이 국회 상임위를 통과한 것에 대해 "처음에는 엉뚱한 주사기를 잡지 않는 매뉴얼을 만들려고 했는데 법제정까지 왔다"면서 "환자안전법 제정이 이뤄진다면 종현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을 것 같아 위로가 될 것"이라며 소감을 밝혔다.

울산의대 이상일 교수가 2012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한 해 동안 예방 가능한 병원내 안전사고 사망 환자수가 1만70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6000여 명인데 비하면 거의 3배에 달하는 수치다. 환자안전법이 제 구실을 한다면 해마다 그와 비슷한 수의 환자들이 의료사고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

환자안전법의 국회통과를 위해 노력해온 종현이 부모와 환자단체들은 이제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라고 말한다. 입법과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국회 본회의가 남았을 뿐더러 입법 후에도 지속적인 개정을 통해 법의 실효성을 높여야 하기 때문이다.

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환자안전법이 제정된다고 해서 곧바로 의료사고 환자 모두를 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속적인 고민을 통해 법의 실효성이 조금씩 강화될 때마다 살아나는 환자들은 더 늘어날 것"이라며 향후 법 개정에도 신경 쓰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 승태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