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정치, 파국 다가오나
‘윤석열의 정치’가 점점 파국을 향해 다가서는 모양새다. 범여권 인사와 언론인들에 대한 ‘윤석열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이 갈수록 또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 참여 이래 장모 법정구속, 부인의 각종 의혹, 본인의 설화와 태도 논란 등이 잇따라 터지며 야금야금 지지율을 갉아먹었지만, 견딜 만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이번은 다르다. 초반부터 검찰 개입의 ‘빼박’ 증거가 쏟아지고 있다. 국민의힘 자체 경선 행사에서도 “만약 윤 후보가 지시한 정황이나 증거가 나오면 사퇴하겠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파장을 차단하려는 윤 전 총장의 몸짓은 다급해 보인다.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했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다”며, 제보자를 비난했다. 그러자 제보자가 얼굴을 내놓고 증거를 대기 시작했다. 조성은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 알고 보니 돌려차기가 필살기인 ‘춘리’급 인파이터 아닌가.
이제 윤 전 총장은 ‘국가정보원장 정치공작설’을 반격 카드로 쓰고 있다. 윤석열 캠프는 지난 8월11일 함께 식사를 한 박지원 국정원장과 조 전 부위원장, 또 한명의 동석자를 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고발했다. 이 동석자가 ‘홍준표 캠프’ 소속이라는 루머도 흘렸다.
그러나 이게 구원의 동아줄이 될까? 두가지 점에서 쉽지 않아 보인다. 전래동화에서도 어린 오누이는 새 동아줄을 타고 올라가 해와 달이 됐지만, 호랑이는 썩은 줄이 끊어져 수수밭을 붉게 물들이는 최후를 맞았다.
첫째, 검찰의 ‘고발 사주’ 실행 정황이 너무 뚜렷해지고 있다. 손준성 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이 고발장을 최초 전달한 사실은 이제 부인할 수 없게 됐다. 조 전 부위원장이 고발장 파일에 찍힌 ‘손준성 보냄’의 프로필 계정과 손 전 정책관의 계정이 일치한다는 증거를 공개했다.
남은 건 윤 전 총장의 관련 여부다. 그런데 검찰총장의 ‘눈과 귀’인 수사정보정책관이 총장 모르게 ‘고발 사주’라는 중대한 범죄를 실행할 수 있었을까? 더구나 고발장 내용은 윤 총장 본인과 부인 김건희씨, 측근인 한동훈 검사장의 명예훼손을 처벌해달라는 것이다.
14일엔 ‘고발장 전달’ 한달 전인 지난해 3월 대검에서 ‘(윤 총장) 장모 의혹 대응 문건’을 작성했다는 <세계일보>의 보도가 나왔다.
어느 하나라도 윤 전 총장 개입이 확인된다면, 검찰권력을 자신과 가족을 위해 사유화한 ‘검찰 농단’이요, ‘국기 문란’이다. 의혹이 입증되면 ‘제보 사주’ 같은 ‘물타기’ 신공은 약발이 다할 수밖에 없다.
윤 전 총장은 지난해 4월3일 전달됐다는 고발장에 당일치 <조선일보> 기사가 언급된 점 등을 들어 조작된 괴문서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손준성 보냄’이 분명해진 만큼, 고발장 조작보다는 검찰이 치밀한 작전을 세워 ‘언론 플레이’와 ‘고발 사주’를 조직적으로 시도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검찰 구조상 이 정도 플랜이 대검 과장급인 손 정책관 수준에서 실행되기란 불가능하다고 보는 게 상식적이다.
둘째, 국민의힘 ‘내부 총질’이 더 격렬하다. 검찰총장 때는 윤 전 총장에 대한 여권의 공세를 국민의힘이 앞장서서 방어했다. 이는 고스란히 윤 전 총장에 대한 ‘반문 보수’의 지지율 상승으로 귀결됐다. 지금은 당내 경쟁자들이 급소를 노리며 으르렁대고 있다. 윤 전 총장은 11일 대구에서 “아무리 경선에서 경쟁한다고, 어떻게 저쪽에서 총을 한 방 날리니까 바로 올라타 가지고 그렇게 합니까”라고 울분을 토로했다. 정치판이 참 냉혹하다.
더 큰 위협은 지지층도 차갑게 돌아설 수 있다는 점이다. ‘반문 보수’가 그동안 윤 전 총장 지지를 신속히 철회하지 않은 건, 야권에서 가장 지지율이 높은 윤 전 총장 말고는 정권교체의 기대를 걸 대안을 찾지 못한 까닭이다. 그러나 홍준표 의원이 약진하면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아직은 홍 의원에 대한 여권 지지층의 역선택 가능성을 더 우려하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윤석열로는 어렵겠다’는 판단이 서는 순간, 흐름은 급변할 수 있다. ‘날개 없는 추락’도 아주 동떨어져 있진 않다.
중립성이 생명인 현직 검찰총장이 노골적인 정치적 행보를 걷다가 중도 사퇴하고 대선에 나선 것 자체가 불행한 일이다. 정치적 비전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이제라도 그 위험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 환기와 대응이 이뤄지는 것은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다.
손원제 논설위원
wonje@hani.co.kr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11694.html?_fr=mt2#csidxa875af9042047ca8b683019ebaf72e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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