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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벌주기인가, 우크라이나 구하기인가?

道雨 2022. 5. 3. 09:59

러시아 벌주기인가, 우크라이나 구하기인가?

 

모든 전쟁은 절박한 필요나 숭고한 가치를 내세우나, 결국은 잔인하고 더러운 진창으로 귀결된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나토의 동진 등 서방의 위협을 막기 위한 자신의 절박한 안보 필요성을 내세웠다. 하지만 중립국인 핀란드나 스웨덴 등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을 밝히면서, 나토는 당분간 더 견고해지고 확장되는 역설을 낳았다.

침략으로부터 우크라이나를 보호하겠다는 미국 등 서방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에 박차를 가하면서, 국제 경제는 주름이 더해지고 확전된다.

“제발 이 사람(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권좌에 머물러선 안 된다”(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3월26일), “우리는 러시아가 약화되는 것을 보고 싶다”(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 4월25일),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내의) 러시아군 병참선을 공격하는 것은 합법일 것이다”(벤 월리스 영국 국방장관, 4월28일).

 

러시아의 정권 교체나 영내 공격을 으르는 서방에 맞서 러시아는 한술 더 뜬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4월25일 “현재 핵전쟁 위험은 실재하며 매우 심각한 수준이고,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데 이어, 29일에도 나토와의 충돌은 핵전쟁 위험을 키운다고 위협했다.

 

애초에 우크라이나 전쟁의 배경은 무엇이었나?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위협에서 독립된 주권국가로 설 수 있기를 원했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자신의 안보를 위협하는 서방의 교두보가 되지 않기를 원했고, 서방은 기존의 국경선으로 상징되는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수호를 원했다. 3자의 이런 이해 충돌에서 균형점은 ‘우크라이나 구하기’이다. 중립화가 해법이다.

중립화는 전쟁 직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중재했으나, 미국은 프랑스가 주제넘은 일을 한다며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기어이 전쟁이 시작되고서야 지난 3월29일 이스탄불 평화회담에서 원칙적인 중립화 합의가 나왔다. 하지만 부차 학살 등으로 협상은 중단되고 서방과 러시아는 확전으로 가고 있다.

미국은 차제에 러시아를 손보려고 한다. 러시아는 키이우 전선에서 밀려난 뒤 남·동부에서 땅따먹기 전략으로 선회해, 우크라이나를 내륙국가로 만들려 한다.

미국의 러시아 손보기는 우크라이나 침공이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위협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제재는 미국에 가장 큰 무기이고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나, 역효과 역시 크다. 북한·베네수엘라·이란에 대한 가혹한 제재가 그 나라를 바꾸지 못했다. 세계 지정학 질서의 한 축인 러시아에 대한 제재는 장기적으로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더 침식할 우려가 크다.

러시아, 중국, 인도, 이란 등이 달러 체제를 회피하는 그들만의 결제 시스템 구축에 나서고 있다. 이들 국가가 가진 석유나 가스, 식량 등 막대한 자원이 장기적으로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국제질서에서 독립된 질서를 이룰 무기가 될 수 있다.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하는 국가들은 세계 경제력의 3분의 2에 육박하나, 인구는 세계 전체의 14%뿐이다.

 

전쟁을 도발한 쪽은 응징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 응징은 침략받은 쪽의 희생을 더 요구하는 게 현실이다.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해 우크라이나가 전투에서 이기면 이길수록 우크라이나의 고통과 피해가 커지는 역설이다. 전투에서 그런 승리가 우크라이나의 전쟁 승리를 담보하는 것도 아니다.

제재와 군사적 압박은 러시아를 피 흘리게 하고 약화시킬 것이나, 장기적으로는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허무는 블록화, 그리고 무엇보다도 러시아의 피보다 더 많은 우크라이나의 피를 요구한다.

서방의 진정한 성공은 우선 주권과 안보가 보장되는 우크라이나이다. 그런 우크라이나가 종국적으로 서방의 이익에 복무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의 피해 속에서 중립화로 안내해야 한다. 러시아도 종전과 철군의 조건을 명확히 해야 한다. 러시아 역시 땅따먹기에 집착할수록 흘릴 피는 많아지고, 종전의 가능성은 멀어진다.

 

한국전쟁 때 연합군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는 만주 폭격과 대만 국부군의 중국 해안 침공을 주장했다. 그 주장대로 확전됐을 때와 휴전 이후 경제 번영을 이룬 한국의 현실을 비교하면, 무엇이 진정한 응징이고 공산세력의 위협을 막은 것인지 알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 선량한 시민들만 피해를 보는 조폭들의 ‘나와바리’(영역) 싸움이 된다. 노엄 촘스키가 “핵전쟁을 막으려면 푸틴에게 출구를 주는 추악한 해결책을 시도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협상을 통해 우크라이나를 구하자는 지극히 현실주의적인 목표가 공허한 평화주의를 주장하는 이상주의로 조롱받는 전도된 세상에 우리는 현재 살고 있다.

 

 

정의길 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