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혁당 재건위 사건’ 고 박기래 선생, 47년 만에 재심서 무죄
1974년 불법 체포돼 사형 선고 뒤 17년 수감
재판부 “가혹행위 등으로 자백…재심 늦어져 사과”
* 고 박기래 선생 장남 박창선씨(왼쪽)와 아내 서순자씨(오른쪽)가 27일 재심 무죄 판결 뒤 기자들과 만나 대화하고 있다. 정혜민 기자 jhm@hani.co.kr
‘통일혁명당(통혁당) 재건위 사건’에 연루돼 사형을 선고받은 고 박기래 선생이, 47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12-1부(재판장 김길량)는 27일, 국가보안법 위반, 간첩, 군기 누설 등의 혐의로 기소돼 사형이 확정됐던 박 선생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박 선생은 박정희 유신 독재가 본격화된 1974년 통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보안사령부에 불법 체포된 상태로 수사를 받다, 이듬해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17년 동안 수감됐다가 감형돼 1991년 출소했고, 2012년 세상을 떠났다.
통혁당 사건은 당시 대표적인 국가폭력 간첩단 조작사건 중 하나다.
박 선생의 유족은 2018년 12월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민간인 수사 권한이 없는 보안사령부가 박 선생을 영장 없이 체포·감금해 수사했고, 구타와 고문 등 가혹행위로 인해 허위 자백했다는 주장이었다.
서울고법은 2020년 5월 재심을 결정하고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검찰은 재심 사건에서 이례적으로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박 선생이 보안사 진술과 같은 취지로 법정에서도 진술했는데, 법정 진술의 증거능력은 인정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박 선생의 유족은 당시 재판에 보안사 요원이 법정에 참석했기 때문에 재차 고문을 당할 수 있다는 심리적 압박 상태에서 진술했다는 취지로 항변했다.
이날 재심 재판부는 박 선생의 법정 진술과 수사기관이 수집한 압수물의 증거능력을 모두 인정할 수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수사기관에서 가혹행위 등으로 임의성 없는 자백을 하고, 법정에서도 그런 심리 상태가 계속됐다면, 법정 진술도 임의성 없는 자백이라고 봐야 한다”며 “각 증거물은 불법 수사 과정에서 강제로 수집한 증거로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재심 사건 진행이 많이 늦어진 데 대해 사과드린다”고 덧붙였다.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하자, 방청석에서는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아흔이 넘은 박 선생의 아내 서순자씨는 눈물을 흘렸다.
선고 직후 장남 박창선씨는 기자들과 만나 “독재자 권력 아래의 공안 검찰의 증거능력 없는 공소사실에 대한 탄핵”이라며, “이 땅에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혜민 기자 jh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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