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현실적인 경제위기 대책
올해 경기 전망이 매우 어둡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고 세계 전체가 비슷하다.
지난해 경제적 도전이 인플레이션과 금융 불안이었다면, 올해의 도전은 실물경제의 불황이다.
여러 국제기구들이 세계 경제성장 전망치를 내놓고 있는데, 시간이 갈수록 더 비관적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10월 올해 세계경제가 2.7%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는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불과 한달 뒤 2.2%로 낮췄다.
글로벌 금융위기나 코로나19 유행 같은 극단적 시기를 제외하면 3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정부가 내놓은 올해 우리 성장률 전망치는 1.6%다. 이 수치 역시 앞에 말한 두 위기 때를 제외하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경기 침체가 예상되면 정부는 대책을 갖고 있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새해 첫날 신년사에서 “이 복합위기를 우리 경제의 근간이고 일자리의 원천인 수출로 돌파”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수출이 정말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우리 수출시장인 주요국들이 모두 불황 위험에 직면한다는데, 우리가 수출로 불황을 극복하는 것이 가능할까?
우리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은 방역조치 완화로 올해 중반부터 회복세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일상 회복을 마친 나라들의 사례를 보면, 경기 반등은 주로 내수 서비스업 중심으로 나타났다. 무역을 통한 긍정적 파급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더구나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 간 연대를 통한 수출전략’을 주창했는데, 이는 대중 수출은 개의치 않겠다는 소리처럼 들린다.
중국 다음 중요한 시장인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올해 성장률은, 오이시디 전망에 따르면 0.5%에 불과하다.
품목 중에선 우리 수출의 20%가량을 차지하는 메모리반도체 수출이 올해 10% 이상 감소할 것으로 전문기관들은 전망한다.
상황이 이런데 어떻게 수출로 복합위기를 돌파한다는 것인가? 대통령 신년사에서는 플랜트, 방산, 원전에 기대를 두고 있지만, 이 세 품목의 수출 비중은 겨우 5% 남짓이다. 마땅한 수출 확대 수단도 없다. 수출금융을 확대하고 정부가 플랜트 수주를 위해 열심히 뛰겠다고 하지만, 50년 전 개발연대 시절의 수단이 어떤 성과를 거두겠는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중 이런 정책 수단으로 불황에 대응하겠다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경제정책은 의지의 영역이 아니라 현실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비현실적인 대책이 신년사에 포함됐을까? 아마 대통령의 신념을 헤아려 관료들이 작성했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수출이 경제의 성장 동력이며 일자리 창출의 기반이라고 여러차례 강조하며, 전 부처가 수출 확대에 나서라고 독려했다.
우리나라에는 ‘수출을 통해 국가경제를 세운다’는 수출입국 신화가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는데, 이번 정부에서는 그 정도가 유독 심하다. 최근 수출에서 수입을 뺀 순수출의 성장 기여도는 줄어들고 있으며, 마이너스를 나타내기도 한다. 전체 일자리 중 80%는 내수에서 만들어지고, 수출 비중은 20%로 줄었다. 그런데도 수출 신화는 오히려 더 강해졌다.
우리 주력 수출품의 약 40%는 국제가격 변동성이 매우 큰 품목들이다. 반도체, 석유제품, 철강, 선박의 국제가격은 사이클을 타고 크게 출렁거리는데, 이 서너개 품목의 국제가격이 우리 전체 수출을 좌우한다. 지난 수십년간 우리 수출 구조는 크게 변해, 정부 노력으로 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어졌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신년사는 반세기 전처럼 정부가 노력하면 수출이 증가할 것처럼 말하고 있다.
올해 경기 침체를 생각하면, 지난해 5월 정부 출범 직후 실시한 대규모 2차 추경이 두고두고 아쉽다. 당시 정부는 기존 추경 때보다 10배 이상 큰 60조원 규모 추경을 단행했다.
일상 회복으로 보복소비가 폭발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최고조에 이른 시기에 대규모 정부 지출이 더해진 것이다. 누가 봐도 지방선거용이었다. 만약 그때 추경을 일반적인 규모로 줄이고 국채를 상환한 다음, 대신 경기 침체가 예상되는 올해 지출을 늘렸다면 경기도 살리고 인플레 압력도 줄였을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정반대로 올해 재정지출을 지난해보다 무려 6%나 줄였다.
이렇게 재정정책은 반대로 하면서, 현실성 없는 수출 확대를 경기 대책이라고 내놓으니 답답할 뿐이다.
박복영 | 경희대 교수·전 청와대 경제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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