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위치추적만" 헌재의 결정, 국회의 아쉬운 응답
[낮은 자를 위한 지혜, 유현석공익소송기금 16] 휴대전화 실시간 위치추적 헌법소원 사건
우리의 위치가 우리를 설명할 수 있다. 우리가 특정 시점에 머물렀던 장소, 시간대별로 움직인 동선은 때로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사진을 찍고 이 사진을 음식점이 소재한 위치정보와 함께 SNS에 올리는 것은, 이 순간과 장소에 대한 추억을 기록하고 친구들과 나누기 위해서이다.
우리의 위치는 집 주소나 병원 진료과목처럼 때로 매우 사적인 생활을 드러낼 수도 있다. 여러 사람의 위치를 겹쳐보면 누가 누구를 만났는지, 어느 정도로 자주 만나는지 알 수 있다. 특정 주제 모임에 참석하고 있다는 위치정보는 우리의 사상·신념, 노동조합·정당 소속 여부, 정치적 견해 등 민감정보를 드러내기도 한다.
법률적으로 위치정보는 "이동성이 있는 물건 또는 개인이 특정한 시간에 존재하거나 존재하였던 장소에 관한 정보"이다(「위치정보의 보호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호). 이 법률은 위성항법장치(GPS)나 무선주파수인식(RFID) 등 전기통신 측위설비로 수집된 위치정보만을 취급하지만, 실제 누군가의 위치를 알 수 있는 정보는 그보다 더 다양하다.
시간 경과별로 누군가의 위치와 그 변화 동선을 파악하는 위치추적은, 실종아동 등을 발견하거나 긴급구조와 범죄수사를 할 때 널리 쓰인다. 그러나 위치정보가 당사자의 정체성이나 생활에 밀착해 있기 때문에, 과도한 위치추적은 그 대상이 되는 사람의 사생활을 침해한다.
위치정보가 누군가를 설명하는 적실한 개념이 되기 시작한 것은 모바일 환경과 떼어놓을 수 없다. 우리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건 손에서 휴대전화를 떼어놓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2014년 '라일리 판결'에서 "이제 휴대전화는 지니고 다니지 않는 사람이 드물고,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는 90% 이상의 미국 성인들이 그들의 삶의 거의 모든 면에 관한 디지털 기록을 자신들의 몸에 지닌다"면서 "날짜, 장소, 설명까지 있는 천 장의 사진은 지갑에 꽂혀있는 한두 장의 사진과는 달리,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대해 훨씬 더 많은 정보를 드러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위치정보에 대한 권리가 필요하다
예전에 누군가를 추적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소재하거나 이동했던 장소를 실제로 쫓아다녀야 했다. 디지털 시대 위치추적은 실제 사람이 뒤쫓아 다니는 방식이 아니다. 추적 대상자 위치를 알 수 있는 디지털 정보를 원격에서 수집하여 그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다.
다양한 위치정보를 가장 폭넓게 아우른 사례는 코로나19 확진자 동선 추적일 것이다. 코로나19 역학조사지원시스템은 휴대전화 위치, 교통카드 사용 위치, 신용카드 사용 위치, 큐아르(QR) 체크인 위치까지 폭넓게 수집한다. 현재 우리 생활에서 필수적인 휴대전화, 교통카드, 신용카드 서비스를 이용한 기록을 통해 대상자 위치를 간접적으로 파악하는 방식이다.
▲ 코로나19 역학조사지원시스템의 확진자 동선추적 화면 갈무리
디지털 위치추적은 원격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위치정보 수집자를 드러내지 않고 예전보다 더욱 은밀하게 행해진다. 그러나 위치가 원치 않게 노출된 사람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찜찜함을 느끼거나 때로 고통을 받는다는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은밀하게 추적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게 되면 시도 때도 없이 위축되고 행동과 이동에 제약이 생길 수도 있다.
위치정보를 남기게 되는 경로가 휴대전화 서비스처럼 생활과 밀착되어 있으면 이를 피할 방법이 없다는 점에서 더 침해적일 수 있다. 지나간 소재지의 정보를 수집당할 때보다 실시간으로 추적당할 때 당사자에게 미치는 침해적 효과가 더욱 크다.
지금도 계속되는 코로나19 위기 앞에서 우리는 위치정보를 비롯한 사생활의 많은 부분을 포기하면서 대재난 극복을 염원해 왔다. 그러나 공익을 이유로 하더라도 권력의 감시나 추적이 통제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사생활을 파괴할 수 있다.
감염병 대응을 위한 목적이었지만, 지난 2021년 12월 시에서 운영하는 모든 공공장소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에서 확진자와 접촉자의 얼굴을 인식하고 추적하겠다는 부천시의 계획이 세계 언론을 경악시킨 것은 이 때문이었다.
개인이 권력의 감시 대상이 되는 사례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만이 아니라 회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회사가 일하는 노동자의 위치를 시시각각 추적한다면 이는 정당한 근태 관리일까? 아니면 지나친 인권 침해에 해당할까?
디지털 시대의 등장과 더불어 우리는 새로운 인권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위치정보에 대한 권리가 인권에 속한다는 선언이었다. 2018년 헌법재판소는 위치정보가 민감한 정보라고 인정하며, 이를 현재보다 더 보호할 것을 요구하였다. 경찰의 과도한 실시간 위치추적으로 고통 받은 희망버스 활동가들과 철도 노동자들의 도전으로 얻어낸 결정이었다.
정보·수사기관의 과도한 위치추적은 위헌
2011년 6월 11일 첫 번째 '희망버스' 17대가 출발했다. 시민 700여 명은 회사의 대규모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35미터 타워크레인에 올라 고공농성 중인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김진숙씨와 노동자들을 응원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 영도에 모였다.
희망버스는 11월 9일 김진숙씨가 309일 만에 땅을 밟을 때까지 4차례 더 운행되었다. 경찰은 이 희망버스를 기획한 송경동 시인과 정진우, 김혜진, 기선 활동가를 체포하기 위하여, 그해 7월부터 12월까지 5개월여에 걸쳐 실시간으로 활동가들의 휴대전화 위치를 추적하였다.
경찰이 장기간 자신은 물론 가족들의 휴대전화 위치까지 실시간으로 추적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희망버스 활동가들은, 헌법이 보호하고 있는 개인정보자기결정권과 통신의 자유를 침해당했다며, 2012년 2월과 6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2012헌마191, 2012헌마550 사건).
2013년에는 경찰이 철도 민영화를 반대하며 파업 중이던 철도 노동자들을 체포하기 위해, 실시간으로 휴대전화 위치를 추적한 사건이 발생했다. 당사자들은 물론 부모, 아내, 초등학생 자녀 등 가족의 휴대전화와 함께, 정부기관이나 금융기관 인터넷 아이디에 대해서도 2개월씩 대규모 실시간 위치추적이 이루어졌다. 철도 노동자와 그 가족들은 2014년 5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2014헌마357 사건. 참고로 이때 철도 파업은 2017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확정되었다).
발신기지국 위치추적은 정보·수사기관이 통신사로부터 휴대전화가 발신된 기지국 정보를 제공받아 해당 휴대전화를 소지한 대상자의 위치를 파악하는 수사기법이다. 2001년 무차별적인 언론인 통화내역 조회로 큰 사회적 논란이 일어나자, 통신비밀보호법과 관련 시행령이 개정되었고, 이때부터 통화내역과 발신기지국 위치정보를 비롯한 '통신사실확인자료'를 이 법령에서 보호하기 시작했다.
정보·수사기관이 통신사에게 발신기지국 위치정보를 제공받으려면, 검사장 승인을 받은 서면으로 요청하고, 대장에 기록을 남기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무단 조회 논란이 그치지 않자, 2005년 법원의 사전허가를 받도록 통제가 강화되었다. 더불어 수사를 마친 후에는 대상자에게 위치추적 등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 사실을 통지하도록 하여, 그 남용을 견제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실시간 위치추적은 과거의 위치가 아니라 장래의 위치와 동선을 계속하여 추적하는 신종 수사기법이었다. 휴대전화를 '발신'하는 경우는 물론, 발신하지 않는 대기모드인 경우에도, 통신사가 매 10분 간격으로 대상 휴대전화 기지국의 위치를 자동으로 추적하여 수사관에게 문자메시지로 알린다.
인권침해 수준이 높지만, 별도의 규정 없이 기존의 통신사실확인자료의 한 유형에 포함되어, 대상을 장기간 은밀하게 추적하는 데 사용되어 왔다. 당사자들에게 통지하도록 했다고는 하지만, 수사가 장기간 계속되면 추적도 계속되고 통지도 늦어지면서 견제 효과가 무색했다.
무엇보다 그간 헌법에서 보호하는 통신의 비밀은 통신의 '내용'을 보호하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통신비밀보호법 또한 통신 내용 감청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한 법원의 영장을 요구했지만, 위치를 비롯하여 통신으로 발생하는 외형적인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통신 내용에 비하여 보호 가치와 필요성을 낮게 인정하고 있었다.
2018년 6월 헌법재판소는 위 사건들에 대한 결정을 내렸다. 실시간 위치추적에 대한 현행 법률이 헌법에 불합치한다는 것이었다.
▲ 2018년 6월 28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위치추적 통제가 예전보다 강화되긴 했지만
헌법재판소는 "통신관여자의 인적 동일성・통신시간・통신장소・통신횟수 등 통신의 외형을 구성하는 통신이용의 전반적 상황"의 비밀도 보장할 가치가 있다고 보았다. 위치추적 자료는 전기통신 이용자가 휴대전화를 사용할 때 필연적으로 생성되는 정보로, 개인의 사적 생활의 비밀과 자유에 속한다. 특히, 실시간 위치추적 자료는 정보주체의 현재 위치와 이동상황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비록 내용적 정보가 아니지만 충분한 보호가 필요한 민감한 정보"에 해당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럼에도 당시 통신비밀보호법은 '수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라는 조건만으로 피의자・피내사자뿐 아니라 그 가족을 비롯한 관련자들에 대한 위치추적도 허용했다. 목적 달성을 위해 필요한 범위를 벗어나 광범위하게 수사기관의 위치추적을 허용하는 것은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및 통신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이다.
한편, 수사는 은밀하게 행해져야 하겠지만, 수사기관의 권한남용을 방지하고 정보주체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위치추적에 대하여 정보주체에게 적절하게 고지하고 의견진술의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그런데 당시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르면, 수사가 장기간 진행되면 통지하지 않아도 되었고, 위치추적 사유를 통지하지 않았으며, 수사 후 이 자료가 파기되었는지 여부도 확인할 수 없어서, 정보주체가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없었다. 이 역시 정보주체의 절차적 권리와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충분히 보장하기에 미흡한 수준이다.
같은 날 헌법재판소는 특정지역 기지국에서 불특정 다수의 휴대전화번호를 수집해가는 일명 '기지국수사'에 대해서도 헌법불합치로 결정하였다(2012헌마538 사건. 참고로, 이 사건은 '유현석공익소송기금'의 지원을 받은 사건은 아니다). 이 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휴대전화의 이용과 관련하여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통신사실확인자료는, 여러 정보의 결합과 분석을 통하여 정보주체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유추해내는 것이 가능하므로, '통신내용'과 거의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으며, "비내용적 정보이긴 하지만 강력한 보호가 필요한 민감한 정보로서, 통신의 내용과 더불어 통신의 자유를 구성하는 본질적인 요소에 해당"한다고 선언했다.
2021년 한 해 동안 실시간 위치추적의 대상이 된 전화번호는 3만1359건이다(필자의 정보공개청구 결과). 이 모든 경우가 헌법재판소가 말한 대로 꼭 필요한 최소한의 위치추적이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정부와 국회가 개정한 통신비밀보호법은 헌법재판소 결정 취지를 최소한만 반영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개정 통신비밀보호법은 문제가 된 실시간 위치추적과 기지국 수사에 대하여, 다른 방법으로는 수사가 어려운 경우라는 추상적인 보충성 요건만 추가하여 계속 허용하고, 통신사실확인자료 통지를 강화하는 정도에 그쳤다. 앞서 국가인권위원회는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 전반적으로 대상범죄를 한정하고 제공 요건을 대폭 강화할 것을 요구하였는데, 그 수준에는 이르지 못한 것이다.
단지 집회시위를 기획했다거나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몇 개월간 본인과 그 가족의 위치를 추적당하는 일이 정말 근절되었을까?
최근 독일 등 주요 국가의 경우에도 통신사실확인자료를 비롯한 '통신 메타데이터'를 제공할 수 있는 대상범죄를 한정하는 등 그 보호 수준을 높였다.
위치정보에 대한 권리를 충분히 보호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도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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