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윤석열 정부 1년, 거대한 퇴행을 목도하다

道雨 2023. 3. 8. 08:51

윤석열 정부 1년, 거대한 퇴행을 목도하다

 

 

 

독일 방송에서 가장 정치적이고 지적인 장르는 코미디다. 특히 공영방송 코미디 프로는 정치의식의 수준을 보여준다. 촌철살인의 예리한 지성과 신랄한 풍자의 언어로 권력의 위선과 부패를 통렬하게 꾸짖는다.

 

한국에도 그런 프로가 있다면, 윤석열 대통령 당선 1년은 정치코미디의 황금기였을 것이다. 이처럼 무궁무진한 코미디 소재를 제공한 대통령이 있었던가. 왕(王)자 손바닥, 천공 스캔들, 바이든-날리면 참사, 도어스테핑 사고, 이준석-유승민-나경원 사태까지 그야말로 코미디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지난 한해를 단순히 ‘사건사’만으로 돌아보는 것은 위험하다. 사건의 저류에 흐르는 불길한 구조적 변화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당선 1년은 무엇보다도 ‘선진국’ 대한민국의 토대가 얼마나 허약한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성숙한 민주 사회 실현이 얼마나 지난한 길인지를 가르쳐줬다.

 

지금 한국 사회는 거대한 퇴행의 궤도에 진입해 있다.

 

첫째, 신자유주의의 부활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조종이 울린 이후, 신자유주의의 폐허를 복구하기 위해 각국 정부가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이 오늘의 세계다.

동북아도 예외가 아니다. 시진핑 중국 주석의 ‘공동부유’나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신자본주의’ 모두 이런 세계적 흐름의 일환이다. 미국에서도 ‘급진적 분배정책’이란 평가를 받은 바이든 예산이 세상을 놀라게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만 사망한 신자유주의가 오히려 부활하고 있다. 부자 감세와 노조 탄압 등 노골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은 세계적인 흐름에 완전히 역행하는 것이다.

 

둘째, 수구의 귀환이다.

역사의 지평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수구보수들이 다시 속속 돌아오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사면되던 날, 그의 집 앞에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서 수구의 놀라운 생명력에 할 말을 잃었다. 박근혜 탄핵으로 정치 무대에서 퇴출당한 수구가 지배권력으로 재등장하고 있다.

 

셋째, 냉전의 회귀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전쟁위기에 휩쓸리고 있다. 내일 전쟁이 터진다 해도 놀라울 것이 없을 정도로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과거 냉전시대로 완전히 돌아간 형국이다.

신냉전 국제질서 속에서 동북아에 전운이 짙어지는 가운데, 윤석열 정부는 낡은 냉전적 사고에 사로잡혀 상황을 악화일로로 몰아가고 있다.

 

넷째, 역사의 역행이다.

특히 일본과의 관계에서 역사의식을 망각한 행태를 보인다. 역사적 화해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반성 없는 화해는 거짓 화해다. 지금 윤석열 정부가 일본에 보이는 태도는 전혀 미래지향적이지 않다. 미래를 지향한다는 것은 과거를 성찰한다는 것이다. 성찰 없는 화해는 굴욕감과 저항감을 남길 뿐이다.

 

 

이처럼 윤석열 대통령 1년 동안 신자유주의는 부활하고, 수구는 귀환하고, 냉전은 회귀하고, 역사는 역행했다. 거대한 퇴행이 거듭됐다.

그러나 이런 퇴행들보다도 더 우려스러운 것이 있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후퇴다.

 

대한민국은 위대한 ‘민주혁명의 나라’라고 하지만, 본질에서 보면 지금도 여전히 독재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군사독재에서 자본독재로 넘어가더니, 이제는 아예 ‘검찰독재’로 나아가고 있다.

민주주의란 기실 이 과정을 화려하게 분식하는 장식품에 불과하다. 이런 과정은 ‘폭력의 지배’(Autocracy)에서 ‘자본의 지배’(Plutocracy)를 거쳐, ‘기술관료의 지배’(Technocracy)로 이행한 것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현재 한국 사회는 기술관료 중에서도 법기술자가 지배하는 단계이며, 이는 동시에 ‘자본의 지배’ 심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검찰은 자본지배의 가장 충직한 마름이기 때문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후퇴는 또 다른 측면에서도 관찰된다. 거의 모든 영역에서 민주주의가 뒷걸음질 치고 있다. 국민의힘 전당대회나 민주당 팬덤정치에서 볼 수 있듯이 ‘정치민주화’가 퇴보하고 있으며, 불평등 심화와 노동탄압이 보여주듯이 ‘경제민주화’가 퇴각하고 있고, 불공정과 차별의 심화에서 ‘사회민주화’의 퇴조를 볼 수 있으며, 권위주의의 심화와 혐오의 확산에서 ‘문화민주화’의 후퇴를 목도하게 된다.

 

이제 이 거대한 퇴행을 멈춰 세워야 한다. 더는 이 정부의 거친 역주행을 용납할 수 없으며, 무능한 야당의 만성적 무기력을 용인할 수 없다.

이제 시민사회가 움직여야 한다. 나라를 망치고 있는 거대 양당의 기득권 정치계급을 대체할 새로운 정치세력을 구축해야 한다. 거대한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김누리 | 중앙대 교수·독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