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1년 지났을 뿐인데... 윤 대통령 때문에 숨이 막힌다
[조성식의 통찰] 박정희와 노무현 그리고 '아메리칸 파이'
▲ 4월 29일 더불어민주당 김용민(남양주 병) 의원이 남양주시 정약용도서관에서 저서 '누가 죄인인가' 출판기념회를 열고 책에서 다룬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에 관해 얘기하고 있다. ⓒ 김용민 의원실
마치 그레고르가 자고 일어나서 벌레로 바뀌었듯이(프란츠 카프카 <변신>), 유우성은 2013년 어느 날 간첩이 돼 버렸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변호인으로 활약한 김용민 의원에 따르면, 관련 증거 대부분이 날조됐다.
2014년,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무죄 선고가 나온 직후, 검찰은 보복 기소를 단행했다. 4년 전 불기소(기소유예) 처분한 유우성의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에 대해 재수사를 벌여 기소한 것이다.
대법원은 2015년 유우성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무죄를 확정하고, 2021년에는 우리 사법역사상 처음으로 검찰의 보복 기소(공소권 남용)를 인정하는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최근 이 사건을 상세히 다룬 김 의원의 저서 <누가 죄인인가>가 세상에 나왔다. 4월 26일 국회에서 출판기념회가 진행되는 동안 내 머릿속을 짓누른 상념은 도대체 국가란 무엇인가였다.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국가는 다양한 욕망을 가진 개인들의 협업체로,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힘을 합친 집단이 발전한 조직이다(플라톤 <국가론>).
장 자크 루소는 국가를 사람들이 자유롭고 평등한 상태에서 합의한 사회계약이라고 봤다.
약자에 대한 강자의 지배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만들어진 통치조직이라는 학설도 있다.
어느 견해가 맞든, 국가가 특정계층이나 이데올로기를 위한 조직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조직이라는 명제는 흔들릴 수 없다. 국민의 이익이 국가의 이익이고, 국민의 명예가 국가의 명예이고, 국민의 자존심이 곧 국가의 자존심이다. 소크라테스는 훌륭한 국가에 필요한 덕목으로 지혜, 용기, 절제, 정의를 꼽았다. 이 중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이 정의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끄는 오늘의 대한민국은 네 가지 덕목 중 무엇을 갖추었고 무엇을 갖추지 못했나?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생사람을 간첩으로 몰아 고문과 폭행을 하고 증거를 조작한 국가범죄 사건에 책임이 있는 검사를, 공직자 인사 검증과 공직사회 전체의 기강을 책임지는 요직에 앉혔으니 무슨 말을 더하랴?
지혜의 건너편인 어리석음, 용기의 짝퉁인 만용, 절제의 반대편인 남용, 정의의 대척점인 불의가 사방에서 활개 치는 통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경제와 안보
오늘날 국가의 핵심 과업 두 가지를 꼽자면 경제와 안보다. 일찍이 공자가 갈파한 정치의 본질 세 가지 중 두 가지, 즉 식량을 풍족히 하고, 군사력을 충분히 갖추는 것이 바로 이에 해당한다(<논어> '안연'편). 나머지 하나는 백성의 믿음이다.
경제와 안보 두 영역은 밀접하게 관련돼 있는데, 특히 우리처럼 북핵 위협 속에 4대 열강의 치열한 힘겨루기가 벌어지는 나라에서는 한몸이나 다름없다.
국익과 실용을 유난히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는, 의도한 바는 아닐 테지만 거꾸로 두 가치와 점점 멀어지는 길을 걷는 게 아닌가 싶다. 언뜻 이념적 우방인 미국·일본과 확실히 편먹는 것이 안보를 강화하고 경제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되는 듯싶으나, 근시안적인 미봉책이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단편적 국익이고, 모순적 실용이다.
중국과 러시아를 공공연히 적으로 돌린 데 따른 외교적·경제적 손실과 안보 비용 증대를, 미국·일본과의 동맹 강화로 얼마나 상쇄할지 모르겠다.
대일 굴욕외교의 실체는 논란이 된 윤 대통령의 <워싱턴포스트> 인터뷰 내용으로 가늠할 수 있다. "100년 전 일을 가지고 무조건 안 된다, 무조건 무릎 꿇으라 하는 것은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역대 우리 정부가 일본과 불편한 동반자로 지낸 것은, 단순히 과거 우리나라를 침략해 지배한 데 따른 민족 감정 때문만이 아니다.
일본은 독일과 달리 진정한 사과와 반성을 보인 적이 없는 데다, 독도와 위안부, 강제동원 등 핵심 갈등 사안을 두고 여전히 거짓과 궤변을 일삼고, 침략주의적 근성과 태도를 버리기는커녕, 100년 전 동아시아의 강자로 군림했던 영광을 그리워하기라도 하듯 군사대국화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한국이 아닌 일본의 국익에 이바지하고, 일본의 제국주의적 범죄에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다른 걸 떠나 독도 문제만 보자.
독도는 안보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 양면에서 한국의 국익에 매우 중요한 섬이다. 일본은 역사적 증거를 무시한 채, 교과서에 여전히 독도를 자국 땅이라고 기술하면서, 국제사법재판소 회부를 주장한다. 자원이 넘치는 독도 주변 바다를 자국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이라고 선포했다.
일본의 군국주의적 우경화가 심해지면, 향후 독도를 놓고 무력충돌이 빚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18~19년 동해에서 일본 해상초계기가 4차례나 저공비행으로 한국 함정들을 위협한 사건은 그 전조다.
그런 맥락에서 한미일 군사동맹을 내세워 일본군의 동해 진입을 허용한 것은 반안보적 반국익적 행태다.
명분도 실속도 없는 양보
▲ 3월 16일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한일 확대정상회담을 마친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여권과 그 지지자들, 보수언론 등은 야당과 진보세력이 무분별한 반일감정을 선동한다고 개탄한다. 윤 대통령의 <워싱턴포스트> 발언에서도 그런 시각이 엿보인다. 이는 논리학에서 말하는 의도확대의 오류이자 허수아비 때리기 오류의 일종이다.
100년 전 일로 일본에 무릎 꿇으라고 요구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상식 있는 국민이라면 이웃 일본과 협력하면서 잘 지내는 걸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가해자를 승리자로 바꿔주면서, 명분도 실속도 없는 양보를 대승적 결단으로 미화하는 것이 께름칙할 뿐이다.
핵 공유 논쟁을 일으킨 한미동맹 강화는 어떠한가? 이미 많은 사람이 '워싱턴 선언'의 문제점을 짚었기에, 여기서는 한 가지만 살펴보려 한다. 바로 핵무기 개발 포기 명문화다.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국인 우리나라가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는 것은 국제법을 지키는 것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의 말마따나 핵 개발 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을지 모른다. 하지만 일 년 내내 핵 공격 위협에 시달리는 나라가 핵을 개발해 균형전력을 유지하고 안보 불안감을 덜려는 것은 유엔헌장에서 보장한 자위권 범주로 볼 여지도 있다.
NPT 자체가 국제평화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미국을 비롯해 먼저 핵무기를 개발한 5개국의 기득권을 인정하는 규약임을 감안하면, 핵 개발은 강대국에 대한 약소국의 실효적 자위권인 셈이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개념을 응용하자면, NPT는 핵강국의 '핵 사다리 걷어차기'에 다름 아니다.
이런 논리가 자칫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합리화할 수 있다는 지적은 언뜻 타당하다. 하지만 합리화와 현실은 별개다. 이미 북한은 핵보유국 반열에 올랐다. 그 실체를 인정하고, 대화로 평화공존을 추구하거나 무력도발을 억제할 힘을 갖추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동맹과 자주
오해는 마시라. 나는 핵무장 찬성론자가 아니다. 다만 우리의 안보에 매우 중요한 핵 개발 카드를, 그다지 얻는 것도 없이 자발적으로 내던진 게 과연 국익에 도움이 되는 일인지 의심스러워서 하는 말이다.
동맹은 강화하되 종속은 피해야 한다. '워싱턴 선언'으로 한국의 대미 안보 종속은 한층 심해졌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치열하게 부딪치는 냉엄한 국제관계에서, 자국의 안위를 동맹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을 공자는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하다.
그러잖아도 한국의 대미 무기 종속은 심각한 수준이다. 오랫동안 우리 무기의 90% 이상은 미국산이었고, 무기 수입 다변화는 꿈도 꾸지 못했다. 미국으로부터 고가의 무기들을 사들여오면서도 반대급부인 기술 이전이나 국산 무기 수출, 관련 부품 구매 요구 등, 이른바 절충교역에서는 엄청난 불평등과 불리함을 감내해야 했다.
오죽하면 미국 군수업계의 '봉'이라는 소리까지 들었을까. 2021년에야 해제된 미사일 사거리 제한 지침에서 알 수 있듯이, 자체 무기 개발과 성능 향상은 늘 미국의 견제를 받았고, 무기 수출도 미국 눈치를 봐야 했다.
동맹과 자주는 대립적 가치가 아닌 보완적 가치로 여겨야 한다. 극과 극으로 보이는 박정희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만나는 지점이 있다. 바로 자주국방이다. 두 사람은 이념적으로는 양립할 수 없는 관계로 보이지만, 나라를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자주정신만큼은 상통했다. 시행착오와 부작용도 있었지만, 두 사람이 뿌린 자주의 씨앗은 그 나름대로 열매를 맺었다.
독재와 인권 탄압에 대한 비판과 별개로, 미국의 강력한 감시와 통제에도 핵무기 개발까지 추진했던 박정희의 자주국방 의지가, 오늘날 우리나라가 방산수출강국으로 자리 잡는 데 원동력이 됐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노무현 정부는 국방비를 역대 최대 폭으로 늘리면서 무기 첨단화를 이루고, 육해공군 간 균형발전을 꾀하는 한편, 주권국가로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추진했다. 이로써 수십 년간 미군의 작전과 지휘에 의존하느라 독자적인 전술지휘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2010년 연평도 포격전에서 드러났듯이 정상적인 자위권 행사에도 갈팡질팡했던 한국군이, 유사시 국익과 자국민의 안전을 위해 독자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역사는 교훈이다
▲ 4월 26일(현지시간) 윤석열 대통령이 워싱턴 DC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국빈만찬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노래를 부르고 있다. ⓒ 연합뉴스
국제관계에서는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다. 미국의 필리핀 지배권과 일본의 대한제국 지배권을 맞교환한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년), 분단의 씨앗이 된 3.8선 획정(1945년), 한국을 미국의 극동방위선에서 제외한 애치슨 선언(1950년), 패전국 일본이 포기할 영토에서 독도를 빼 버린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1951년) 등을 다 미국이 주도했다.
물론 6.25 전쟁 때 한국의 공산화를 막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도 미국이다. 하지만 '혈맹'과 국익은 별개다. 동맹에도 우선순위가 있다. 한일 간 독도 전쟁이 벌어진다면 미국은 어떤 태도를 보일까?
개인 간에도 그렇지만 나라 간에도 지켜야 할 원칙과 도리가 있다. 그것을 바탕으로 신의가 생기고 상생이 가능하다. 윤 대통령의 대일·대미 동맹 강화가 국익을 극대화한 실용노선이라는 평가를 받으려면 상대국의 상응 조치가 이어져야 한다.
그런데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승리자로 우쭐대면서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는 일본은 기대난망이고, 우리 기업들에 대한 압박을 서슴지 않는 미국은 우리의 안보적 약점을 이용해 자국 이익을 최대화한다는 느낌을 준다.
역사는 교훈이다. 자고로 정기가 쇠락하고 스스로 힘을 갖추지 못한 민족은 외세에 굴복하는 수모를 당했다. 실용과 실속도 중요하지만, 정신적 가치를 하찮게 여기면 사회 구성원들이 분열하고 국가 존립의 근간이 흔들린다. 31세, 24세에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내던진 안중근과 윤봉길 의사를 생각해서라도 일본에 대한 언행은 신중해야 한다. '통 큰 결단'이라고 쳐도 좀 더 당당하면 좋겠다.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애국심이라는 단어가 쥐구멍을 찾게 내버려둘 수는 없지 않은가?
경제적 양극화 못지않게 정치적 양극화가 심각한 우리 사회는, 지금 가치 실종시대를 맞고 있다. 표적수사와 보복수사가 정의로운 수사로 포장되고, 사법적/경제적 특권층이 서민 위에 군림하고, 그저 힘세고 돈 많은 쪽에 붙는 게 유리하니, 정의 따위의 정신적 가치는 개나 줘버리라는 인식이 팽배한 나라에서 무슨 희망을 보겠는가?
5년 중 고작 1년 지났다. 이 정권이 지금부터라도 진짜 실속 있는 안보·경제 노선을 걷고 진짜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데 진력하길 바라는 것은 헛된 꿈일까?
비록 '빈센트'만큼 좋아한 건 아니지만, 앞으로 돈 맥클린의 '아메리칸 파이'를 들을 때마다 서글픔이 밀려올 것 같은 예감에 젖으면서 묻는다.
누가 죄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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