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북 9·19 합의 ‘무효화’, 강대강 멈추고 위기관리 나서야

道雨 2023. 11. 24. 09:53

북 9·19 합의 ‘무효화’, 강대강 멈추고 위기관리 나서야

 

 

 

북한이 9·19 남북 군사합의를 사실상 무효화하고 “강력한 무력을 전진배치”하겠다고 했다.

북한이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하고, 우리 정부가 9·19 군사합의 일부 조항의 효력을 정지한 데 이어, 북한이 사실상 합의 파기로 응수하면서, 긴장의 수위가 계속 고조되고 있다.

 

북한은 23일 “지금 이 시각부터 우리 군대는 9·19 북남(남북) 군사분야 합의서에 구속되지 않을 것”이라며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취하였던 군사적 조치들을 철회하고, 군사분계선 지역에 보다 강력한 무력과 신형 군사장비들을 전진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이날 국회 국방위에서 “북한이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를 빌미로 도발을 감행한다면, 즉각, 강력히, 끝까지 응징할 것”이라고 했다.

북한은 “돌이킬 수 없는 충돌사태가 발생하는 경우 전적으로 ‘대한민국 것들’이 책임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남북 모두 9·19 군사합의에 대해 ‘파기’라는 말은 하지 않고 있다. 합의 파기의 책임을 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합의가 사실상 파기된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양쪽 모두 군사분계선 인근에서 군사적 활동을 강화하면서 우발적 충돌 위험이 매우 높아졌다.

 

북한이 그동안 합의를 거듭 위반해왔고 전술핵 개발로 한국을 위협하고 있는 것은 극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남북이 9·19 합의라는 안전판도 없애버린 채 마주 달리는 기차처럼 서로 강경책을 쏟아내는 것은 무책임하다. 이미 접경 지대의 주민들은 국지적 도발 가능성에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는 한·미, 한·미·일 군사 협력 강화로 대응하려는 모습이다. 이번 주말에는 미 해군 핵추진 항공모함인 칼빈슨호가 참가하는 가운데 한·미, 한·미·일 해상 연합훈련이 진행된다.

북한은 21일 밤 군사정찰위성 ‘만리경-1’호 발사 과정을 비롯해 여러 분야에서 러시아의 군사 기술 지원을 받고 있다.

양쪽 모두 강대국과 손을 잡고 강 대 강으로 맞서고 있다.

 

전쟁을 막는 유엔의 기능이 무력화되고,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2개의 전선’이 펼쳐진 상황에서, 만에 하나 남북 간 무력 충돌이 벌어진다면, 한반도 안보 정세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극한 대립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도 최근 정상회담에서 군사 대화를 복원했다.

남북도 책임질 수 없는 비극을 막기 위해, 군사 대화 채널을 복원하고 위기를 관리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 2023. 11. 24  한겨레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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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력 정지’ ‘무효화’…남도 북도 ‘파기’는 아니다?

 

 

9·19 남북 군사합의의 현재 상태를 두고 남과 북이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남과 북 당국이 9·19 군사합의를 “우리가 파기한다”는 표현은 입에 올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9·19 군사합의를 ‘먼저 파기’했다는 책임을 피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읽힌다.

 

북한 국방성은 23일 오전 성명을 내어 “지금 이 시각부터 우리 군대는 9·19 북남군사분야합의서에 구속되지 않을 것”이라며, 이 합의를 지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성명의 제목은 “‘대한민국’ 것들은 북남군사분야합의서를 파기한 책임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으며, 반드시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이다. 9·19 군사합의를 남쪽이 파기했다는 주장이다.

국방성은 성명 본문에서는 ‘파기’라는 단어는 쓰지 않은 채 “‘대한민국’ 것들의 고의·도발적 책동으로 사문화돼 빈껍데기로 된 지 오래”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을 만나, 북한 국방성 성명의 성격을 “9·19 군사합의 사실상 무효화 선언”이라 규정했다. 이 당국자는 ‘파기로 보지 않는다는 뜻인가’라는 기자들의 거듭된 질문에 “통상적인 남북 합의는 쌍방이 파기에 동의해야 효력이 발생한다고 본다”며 “정부는 파기에 동의한 바 없다”고 말했다.

북쪽이 뭐라 하든 9·19 군사합의의 현재 지위가 ‘파기’ 상태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당장은 정부가 효력정지시킨 1조 3항을 뺀 나머지 9·19 군사합의 조항은 지키겠다는 뜻도 담겨 있다.

 

전직 군 고위 관계자들도 “쌍방의 합의에 따라 수정 및 보충할 수 있다”는 9·19 군사합의 6조 1항을 들어, 일방적 파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가능성이 낮더라도 앞으로 남북 관계가 풀려 9·19 군사합의를 복원할 경우를 상정해서라도, ‘파기’를 먼저 선언할 필요는 없다는 게 외교안보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