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누수 대통령의 외교 욕심이 무섭다
이 글은 이번 총선 이후 사실상 권력누수(레임덕)에 빠진 윤석열 대통령이 앞으로 어떤 정치적 행보를 취할지에 대한 하나의 예상이자 경고다.
민주화 이후 최초로 발생한, 대통령 임기 중·후반부 극단적인 여소야대 상황. 이 초유의 구조 속에서 윤 대통령은 국회 통제에서 벗어나 있는, 그래서 사실상 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외교·대북 영역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중대하면서도 위험한 외교적 결정과 사건을 치적이라며 쏟아낼지 모른다.
예상의 근거는 두가지다.
첫번째는 윤 대통령이 외교와 대북 정책에서 보여준 일관된 태도다. 그에게 외교는 정치나 실용이 아니었다. 이념이었다. 많은 사람이 아직도 오해하고 있지만,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강조한 자유, 자유민주주의는 다원주의에 기반한 민주주의(Liberal Democracy)가 아니다. 반공주의에 가까운 ‘자유로운 민주주의’(Free Democracy, 1972년 유신헌법 개헌 과정에서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우리 헌법에 명문으로 도입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다.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통령이 ‘공산전체주의’에 열변을 토하자 많은 이들이 경악했지만, 일관된 세계관의 표현이었다.
‘공산전체주의 세력과의 싸움’을 소명이라 믿고 있는 윤 대통령이 미국과 일본에 지나친 편향외교를 하고, 중국과 러시아에 거리를 두는 것은, 신냉전으로 재편되는 국제질서 속에서 신중히 내려진 전략적 결정이 아니었다. 중국이 가장 민감해하는 대만 관련 언급을 일본 총리보다 더 화끈하게 하고, 러시아가 극도로 반대하는 우크라이나 무기 공급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현재 모습은, ‘적국 대 동맹국’이라는 이분법적 반공주의 신념 말고는 달리 설명이 어렵다.
대북 정책도 마찬가지다. 북한과의 교섭과 협상을 ‘가짜평화의 구걸’이라 깎아내리며, 그저 ‘힘에 의한 평화’만 외친다. 대한민국 역사상 ‘힘에 의한 평화’가 아니었던 적이 있던가. ‘외교 포기’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확신에 찬 대통령이, 총선 참패라는 민심의 평가 앞에 바뀔까?
기존 외교·대북 노선이 더욱 극단적이 될 것이라 예상하는 두번째 근거는 인적 구성이다.
총선 참패 이후 대통령실은 “국가안보실 제외 대통령실 참모진 전원 사의”를 밝혔다. 국가안보실은 그대로 간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대북 정책에서 전략적 결정을 해온 단위가 외교부나 통일부가 아닌 국가안보실이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국가안보실 실세 김태효 1차장,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모두 대표적 뉴라이트 인사다.
이 인적 구성이 그대로 집권 중·후반기로 이어진다면, 뉴라이트들은 대통령의 남은 임기 중에 불가역적인 성과(변화)를 만들어내고자 애가 탈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이미 한·미·일 정상은 지난해 ‘캠프 데이비드 선언’을 통해, 한·미·일이 군사동맹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 더욱 밀어붙일 것이다.
현재 감사원은 문재인 정부 시절 ‘사드 고의 지연 의혹’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대중국 견제(봉쇄)의 첨병을 자임하며 경북 성주에 배치된 사드 기지 ‘정상적 운용’을 추진할지도 모른다.
내년은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이다. 윤석열 정부는 이 시기에 역사적인 1998년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대체할, 2025년 윤석열·기시다 선언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핵심은 일본의 반성적 역사인식이었다. 반면 2025년 선언에 들어갈 내용은 (윤 대통령의 반복된 3·1절 기념사처럼), 역사 따위는 잊고 인도·태평양에서 한-일 군사협력을 하자는 내용으로 채워질 것이다.
길윤형 한겨레 논설위원은 “우리의 역사인식·대북관·대중관을 재구축”하겠다는 의도에서 현 정부가 한-일 간 새 문서를 만들고자 한다고 분석한다.
대북 정책은 가장 우려스럽다.
9·19 남북군사합의 등 남북한이 축적해온 긴장 완화 장치는 모두 무력화됐다. 1970년대 이후 현재와 같이 남북 간 연락채널이 단절된 적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국지적 무력충돌이 발생하면, 확전으로 번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총선 이후 특검 정국이 시작되고 있다.
거부권으로 폐기된 법안들도 다시 발의할 준비가 이루어지고 있다.
중요한 일들이다.
그럼에도 견제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외교·대북 정책 영역에서 발생할 대통령의 폭주를 예상하고 대비해야 한다.
임재성 | 변호사·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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