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러와 대화 않으면 우리 운명 정하는 현장서 스스로 배제될 것”
길윤형 논설위원의 직격 인터뷰 | 위성락 22대 국회의원 당선자
* 제22대 국회의원선거 더불어민주연합 비례대표에 당선된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지난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한국 외교의 현재 위치와 활로 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윤석열 정부 집권 2년 동안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는 말 그대로 급변했다. 미-중 전략 경쟁이 치열해지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옛 냉전 시절과 같은 진영 대결이 더 선명해졌다.
이 흐름 아래서 한국은 지난해 8월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일 3각 군사 협력의 첫 발을 내디뎠고, 10일 열린 미-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더 많은 협력을 요청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미·일과 관계는 튼튼해졌지만, 반대 쪽을 돌아보면 상황은 처참하다. 남북, 한-중, 한-러 관계가 최악의 수준으로 악화되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커지면서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
이 절박한 위기를 어떻게 헤쳐가야 할까.
10일 총선을 통해 22대 국회에 입성하게 된 위성락 당선자(더불어민주연합 비례대표 2번)와 12일 만나 한국 외교의 현재 위치와 활로에 대해 물었다.
위 당선자는 1979년부터 2015년까지 36년 간 외교부에서 일하며, 북핵 문제와 4강 외교의 주요 현장을 지킨 야권 최고의 ‘외교 전략가’로 꼽힌다.
그는 “(보수층에서) 윤 정부가 그나마 외교·안보 정책은 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잘 모르고 하는 얘기”라며, 거센 진영 대립 속에서 휩쓸리지 않으려면 “한국형 외교 좌표를 찾아야 한다”는 지론을 거듭 강조했다.
―오랫동안 직업 외교관과 외교안보 분야 전문가로 활동하다 지난 총선에 출마했다.
“(외교관 퇴직 후) 우리 외교의 정책·전략에 대해 여러 주장·제언을 하며 내 주장이 설득력과 객관성을 갖게 하기 위해 가급적 정파와 거리를 둬왔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정권은 5년마다 바뀌고, 정권 창출에 기여한 이들이 정부에서 외교·안보 정책을 주무르게 된다. 밖에서 정책·전략을 말해도 한계가 있었다. 현실 정치에 참여하지 않고는 한국 외교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기여하는 게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2년 전 대선 참여(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캠프의 실용외교위원장)가 시작이었는데.
“그동안 갖고 있던 ‘초당파성’이 손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를 무릅쓰고 참여했다. 결과는 아시다시피 아깝게 됐다.”
―윤석열 정부 2년 동안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다. 현재 시기를 ‘신냉전’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미-중 대립이 날로 심화하고 미-러 대결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최고조에 달해 있다. 이 대립은 더 강해질 것이다. 한국은 가치·경제·문화 등에서 미국 등 서방과 연대하고 있는 나라다. 한국이 중간 지대에 서거나, 중·러 쪽에 설 순 없다. 그것은 ‘전혀’ 우리 옵션이 아니다. 이런 ‘분열선’이 강고해지면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서방의 최전선에 설 공산이 크다. 실제 분열이 시작된 냉전 초기에 우리는 분단됐다. 한반도는 여전히 4대 강국(미·중·러·일)에 둘러싸여 있고, 북한은 핵·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 그런데 우린 한반도 비핵화·평화·통일을 추구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별도 어젠다를 갖고 있다. 대립의 최전선에 서면 끝나는 게 아니다. 그렇게만 하면 우리 고유의 어젠다를 포기해야 한다. 냉전 땐 이를 포기하고 진영 대립의 최전선에 섰다. 세계 10위 국가가 된 우리가 지금 그렇게 할 순 없다.”
―그런 의미에서 윤석열 외교 2년을 평가한다면.
“미·일과 관계는 분명 좋아졌지만, 그 반작용으로 중·러가 반발하고 있다. 현재 한-중 관계는 최악이다. 남북 관계는 파탄에 이르렀고, 한-러 관계도 최악이 되어 북-러의 전략적 협력이 시작됐다. 이런 결과를 불러온 외교를 잘 했다고 할 수 없다. 윤 정부가 그나마 외교·안보 정책은 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잘 모르고 하는 얘기다.
―외교의 큰 방향성은 맞다는 평가도 있다.
“북한의 도발에 맞서 미국과 동맹을 강화하고, 일본과도 협력해 억지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방향성이 틀리진 않는다. 그러나 외교는 O·X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하나의 움직임을 하면 그걸로 끝나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는 우리가 하는 게 맞다고 믿고 그쪽으로만 가는 건데, (외교란 게) 그렇게 간단치 않다. 한국이 억지력 강화를 위해 미국의 전략자산을 불러오고 확장억지를 강화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렇게만 하면, 북한은 핵·미사일 능력을 더 고도화하고 중·러와 협력하게 된다. 결국, 우리가 강화한 억지력이 또 다른 반작용을 불러일으키면서 갈등은 끝없이 고조되고 상황은 더 위태로워 진다. 전형적인 ‘안보의 딜레마’이다.
이를 타개하려면 억지력은 강화하더라도 북·중·러와 대화의 여지를 열어둬야 한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데 억지력 강화는 ‘필요 조건’일 뿐 ‘충분 조건’은 아니다. 대화와 협상이 있어야 한다. 주어진 상황에서 이 둘을 어떻게 배합하느냐를 두고 논쟁할 순 있지만 반드시 섞여야 한다. 그런데 윤 정부는 미·일 일변도로, 단 ‘하나의 카드’로 모든 걸 하려 한다. 윤 정부의 ‘단순한 외교’로 현재의 ‘복잡한 현안’을 다루기 어렵다. 만약 이렇게 계속한다면, 한반도의 미래를 논의하는 무대에서 한국만 배제될 가능성이 높다. 나는 오랫동안 한국 외교의 후진성을 자성해 왔다. 우리 국익과 운명이 걸린 핵심적인 문제에서 스스로 배제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1953년 정전협정이나 1994년 제네바 합의가 대표적인 예다. 21세기에 세계 10대 대국이 된 한국이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국민들이 그런 정부를 놔둬서도 안 된다.”
―실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월 미 대선에서 승리하면, 북-미 대화가 시작될 것이란 관측이 있다.
“외교관 시절 현장에서 미국 대선을 두 번 지켜봤다. 외교부에서도 흔치 않은 경험이다. 이를 통해 볼 때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이 아주 높진 않다고 본다. 다만, 변수가 많고 시간이 많이 남아 당선 가능성이 있다. 만약 트럼프가 당선되면, 한-미 동맹, 북한, 중국, 경제 등 모든 이슈에서 엄청난 변화가 있을 수 있다. 트럼프는 동맹을 그리 중시하지 않는다. 미국이 한-미 동맹에서 발을 빼면 윤 정부는 매우 곤혹스런 상황에 몰리게 된다. 지난해 4월 워싱턴 선언을 통해 확인한 ‘확장 억지’를 강화하는 조처를 트럼프 대통령이 어느 만큼 인정할 것인가. 트럼프가 발을 빼면, 차기 한국 대선에선 ‘자체 핵무장론’이 큰 이슈로 떠오를 수 있다. 북한 관련해서도 트럼프가 당선되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바로 축하를 할 것이고, 트럼프가 답장을 보내며 그 유명한 ‘러브레터’가 오고 가는 일이 재현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미-북 대화가 이뤄진다. 그런데 지금 남북 관계는 최악이다. 미-북 대화에서 한국은 배제된다. 한국의 운명이 동맹을 중시하지 않는 예측 불가한 정치 지도자의 손에 놓이게 되는 셈이다. 중국에 관해서도 트럼프는 엄청난 반중 정책을 펼 가능성이 높다.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하게 반도체·배터리 공급망 재편 작업 등에서 우리를 끌어들일 것이고 우리의 운신 공간이나 우리에 대한 배려는 대폭 줄어들 것이다.”
―윤 정부 들어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한-러 관계의 악화다.
“2022년 2월 말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졌다. 우린 서방에 속한 국가이기 때문에 미국이 주도한 제재에 가담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의 운영이 중요했다. 윤 정부는 이게 얼마나 미묘한 것인지 의식이 별로 없어 보였다. 간단하게 미국을 돕는 게 옳으니 갈 길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이후 (한·미·일이 3각 동맹의 첫 발을 뗀)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가 성사 되었다. 그런데 러시아는 아시아 지역에서 나토와 유사한 안보 연대가 생기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그래서 대항하기 시작한다. 지난해 9월 김정은 위원장을 러시아에 불러 협력을 강화했다. 러-북은 인공위성을 넘어 미사일·잠수함·전투기 등 여러 분야에서 협력할 수 있다. 러시아는 북한이 탄도 미사일을 계속 쏘는데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내 추가 제재 결의에 다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다. 지난달 28일엔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 활동을 종료시켰다. 대북 제재의 감시 메커니즘을 무너뜨린 거다. 이대로 가면 끝이 없을 것이다.
5월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베이징에 갈 것으로 전망되는데, 그 길에 북한에 가면 24년 만의 방문이 된다. 러시아 정상이 북한을 방문한 것은 2000년 단 한번 뿐이다. 그땐 핵 미사일 개발을 만류하러 갔지만, 지금은 부추기러 가는 분위기다.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러-북은 냉전이 끝나며 옛 동맹 조약(북-러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을 폐기하고 새 조약(‘조러 친선·선린 및 협조에 관한 조약)을 맺었다. 이것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다. 심각한 문제다.”
―한-중 소통은 아예 단절돼 있다.
“여기서도 윤 정부는 하나만 생각한다. 지난 2년 동안 대미·대일 정책은 있었지만, 대중·대러 정책은 없었다. 우리 대미·대일 정책은 뒤집으면 바로 중국한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반드시 이를 함께 생각해 움직여야 한다. 현재 한-중 간에 대사급 소통이 단절돼 있다. 그 원인을 얘기하면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한국에 자극적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이게 바람직한 일인가.”
―미·중과 협력하면서도 중·러와도 대화해야 한다는 얘긴데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잡는가.
“한국만의 외교 좌표가 필요하다. 윤 정부처럼 대미·대일 정책만으로 중·러에 대응하려는 것은 맞지 않는다. 윤 정부는 우리가 대미·대일 정책을 성공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고양된 입지에서 중·러를 충분히 다룰 수 있다고 본다. 대미·대일 관계가 대중·대러 관계에 즉각 부정적 영향을 미치므로 그렇게 되지 않는다. 미·일·중·러에 대한 전체 전략을 조율해 통합하고 그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다루는 전략을 짜야 한다.
즉, 미국하고 뭘 할 때는 반드시 중·러를 고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분명한 ‘한국형 좌표’가 필요하다. 10일 미-일 정상회담이 한국에게 또 하나의 중요한 전기가 될 것이다. 미·일이 어떤 새 지평을 열면 그 공식을 가지고 한·미·일의 틀로 온다. 미·일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자신들의 힘을 투사하기로 했는데 이는 중·러에게 심각한 문제가 된다. 우리가 이 흐름을 완전히 거스를 수 없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매우 어려운 과제이다. 이때 한국형 좌표가 필요하다. 우리 판단을 가지고 ‘할 것은 하고 못 할 것은 못하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중·러와 외교 공간이 확보된다. 이 좌표가 없으면 그냥 휩쓸리게 된다. 우리가 일본·호주와 똑같은 수준으로 대중 압박에 참여하기는 어렵다. 나토는 모두 다 미국의 동맹이지만, 독일·영국·프랑스의 대러 정책이 각각 조금씩 다르다. 미국이 이를 잘 알고 존중한다. 이게 국가의 좌표다. 4강에 둘러싸인 한국이 중·러와 동시에 대립하는 것은 결코 현명한 일이 아니다.”
―지난 선거 운동 기간에 이재명 대표의 대만 관련 “쉐쉐”발언이 비판을 받았다.
“대만 사태는 우리가 심각하게 고심하고 연구해야 할 문제다. 미-중 대립의 핵심 이슈인 대만에서 어떤 사태가 발생하면 우리 의도와 관계 없이 휩쓸려 들어갈 가능성이 아주 높다. 첫 시나리오는 주한미군의 개입 가능성이다. 그러면 중국이 대응하고 우리도 자동으로 끌려 들어간다. 미국이 도움을 청할 가능성도 있다. 그걸 거부하게 되면, 동맹에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두번째는 북한이 움직이는 경우다. 북한이 상황을 활용하려 움직일 수도 있고, 중국이 사주할 수도 있다. 어떤 시나리오든 한국에겐 굉장히 위태롭고 부담스럽다. 한국에겐 대만해협의 현상 유지가 가장 바람직하다. 조용히 견지해야 할 우리 입장이다. 윤석열 정부는 불필요한 ‘레토릭’으로 중국과 마찰을 야기했다. 미-중 대립이 진행되는 중에도 중국과 대화하고 협력할 공간을 열어 둬야 한다. 이재명 대표가 윤 정부의 이런 대응은 문제라고 지적하는 차원에서 유세 현장의 표현으로 그런 말을 했다고 이해한다.”
―앞으로 활동 계획은.
“외교통일위원회와 정보위원회에 들어가 활동했으면 한다. 한국 외교의 업그레이드가 필생의 과제다.”
―윤 정부는 달라질까.
“변화를 기대하기 쉽지 않다고 생각된다. 다만, 우리 나라의 국익을 위해, 현 정부를 위해 지금 같은 대응은 조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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