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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더미 같은 정치개혁과 사회개혁 과제들

道雨 2024. 4. 17. 11:16

산더미 같은 정치개혁과 사회개혁 과제들

 

 

당장 급한 건 검찰권력 해체·언론개혁

제왕적 대통령제·소선거구제도 손봐야

 

 

이번 총선은 민주화이후 역대 총선이 그러했듯이 윤석열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을 가졌다. 지난 2년 동안의 윤석열 정부 실정에 대한 심판 여론이 선거 분위기를 압도했다.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대표에게 불과 0.73퍼센트 표차로 당선된 윤석열 대통령은, 100퍼센트의 권력을 가진 것처럼 행동했다.

정치는 검찰 출신답게 범죄수사식으로 일관했다. 야당 대표를 범죄자로 규정하고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고, 이태원에서 159명의 아까운 청춘이 목숨을 잃었는데도 법적 책임은 없다고 오불관언으로 버텼고, 대통령 부인 가족의 투기와 비리 의혹이 1950년대식 구시대 부패를 연상시켰지만, 침묵과 조사 거부로 대응했다.

대통령은 해병대 채 상병의 무고한 죽음에 대한 정당한 수사까지 훼방한 의혹이 있다.

정적과 비판세력에 대해서는 압수수색과 구속을 무차별적으로 감행하여, 헌법이 보장하는 시민의 정치적 권리를 함부로 침해했다.

역대 최악 대통령의 실정에 대한 심판 선거

무엇보다도 지난 1987년 이후 크게 진전되어온 민주주의의 성과를 후퇴시키고, 국제사회에서의 국가의 품격을 심하게 추락시켰으며, 총선 전 ‘대파 소동’처럼 서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민생경제를 극도로 악화시켰으며, R&D 예산 삭감처럼 국가의 미래에 극히 중요한 사안을 무시하였다. 해외 국빈방문 일정을 갑자기 취소하는 등 역대 최악, 상식 이하의 대통령이었다는 평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윤석열 대통령은 야당이 주도하여 국회를 통과된 여러 법안을, 별다른 명분도 없이 계속 거부하여 국회 입법권을 침해했으며, 그 대신 하위법률인 시행령을 개정하여 입법안을 무력화하는 등, 국정을 마음대로 주물렀다.

국제관계에서는 친미 반중 일변도의 냉전시대의 낡은 노선을 반복했으며, 북한에 대해 노골적인 적대 노선을 추구하면서 남북한 간에 불필요한 긴장을 조성하였으며, 통일의 가능성을 더욱 희박하게 했다.

게다가 야당을 비롯한 국내 시민사회를 공산전체주의 세력이라고 공격하여, 극히 퇴행적인 인식을 드러냈다.

중요 공영방송 장악 시도, 언론 방송 관련 여러 위원회의 파행적 운영, YTN 민영화, 여러 행사 장소에서의 ‘입틀막’ 등을 보면, 이 정부는 거의 과거 군사정권을 방불케하는 행태를 보여주었다.

이번 선거에서 급조한 비례정당 조국혁신당의 12석 획득, 호남지역의 비례 지지율에서 조국혁신당이 민주당을 앞지른 것은, 중도층까지도 검찰권력 청산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높은지 보여주었다. 가장 강하게 검찰개혁을 내세운 것이 조국혁신당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환경, 노동, 여성주의의 가치를 표방한 녹색정의당이 한 석도 얻지 못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즉 과거 민주당보다 진보적 노선을 갖는 사람들이 이번에는 녹색정의당 대신 조국혁신당을 지지했다.

한편 진보세력의 또 한 축인 진보당이 민주당과 선거연합을 해서 후보 단일화를 한 것은 민주당의 의석수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압도적 의석수 차, 아슬아슬한 득표율 차이의 의미는?

이번 총선은 무엇보다도 2016년, 박근혜 정부 시기의 20대 총선을 연상케 한다. 즉 대통령제 하에서 행정 권력은 대통령이 여전히 쥐고 있으나, 국회는 야당이 다수당이 되어 대통령의 권력을 제약하며 새로운 개혁의 가능성을 열었고, 결국 촛불시위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번 22대 총선에 나타난 윤석열 대통령, 특히 검찰권력의 전횡에 대한 대중들의 강력한 비토는 장차 어떤 정치변화를 가져올까?

과연 22대 국회는 20대 국회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민주당-민주연합-조국혁신당 등 야권의 총 의석수 192석과 국민의힘-국민의미래 108석, 여야의 의석수로만 보면 이번 선거는 범야권의 압승이다.

그러나 각 당의 득표율을 보면 야권의 압승이라 보기 어려운 점이 많다. 민주당과 민주연합의 득표율은 국민의힘과 국민의미래 두 당의 득표율보다 5퍼센트 정도 높을 따름이다.

비례후보 득표를 보면 민주연합당이 26퍼센트. 조국혁신당이 24 퍼센트를 얻어 14석과 12석을 각각 확보했고, 국민의힘의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가 36퍼센트로 18석을 얻었다. 민주연합-조국혁신당과 국민의미래 득표율의 차이는 14퍼센트로, 지역 득표율의 차이보다는 크다. 결국 승자독식 지역구에서 민주당은 득표율보다 훨씬 많은 의석을 얻은 것이다.

더구나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이 서울에서 37석, 국민의 힘이 11석을 얻어서 (지난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41석, 국민의 힘의 전신인 미래통합당이 8석을 얻은 것과 비교해보면) 21대에 비해 민주당의 의석수가 오히려 줄어들었다. 서울 강남권역에서 양당의 표차는 지난 총선에 비해 더 벌어졌고, 마포와 동작, 용산, 그리고 성남 분당에서 국민의힘 후보가 승리했다. 서울의 거의 대부분의 후보는 수천 표 내외로 당락이 결정되었다. 서울 지역의 경우는 전반적으로 계급투표 성향이 강화되었으며, 민주당이 완승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런데 전국 각 지역구의 1, 2위 간의 표차는 전남과 경북 대구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지역에서 그다지 크지 않아, 민주당과 국민의힘 후보 지지율 5퍼센트 내외의 차이로 수십 개의 의석수가 결정됐다. 선거 직전 여야의 지지율을 보더라도 양당의 차이는 5퍼센트 내외였다.

최근 20여년 동안 그랬듯이, 여당은 60~70대 노인층, 서울의 강남지역 등 부유층 거주지와 영남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야당은 호남과 경기지역, 그리고 40~50대를 주요 기반으로 하고 있는 사실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

양당 후보의 재산도 국민 평균의 9배~4배에 달한다. 이러면 정치권의 변화로 인한 사회세력의 교체를 기대할 수 없다.

175석 민주당, 21대 180석 민주당과 크게 달라질 수 있을까?

특히 민주당 수도권 지역 출마자들의 공약을 보면, 거의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와 심지어 윤석열의 국토부가 발표한 재건축 선도 지역 지정도 들어 있었다. 부동산 경기부양을 통한 아파트값 상승의 욕망에 편승한 점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 후보들 간의 차이는 별로 없었다. 민주당이 도시 중간층의 지지를 얻기 위해 부동산 관련 세금 인하, 재건축·재개발 인센티브 부여, 교통망 개선을 더 강조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양당의 부동산 정책의 차이는 없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바로 민주당의 이런 태도 때문에 지난 한 세대 동안 수도권 집중, 저출생, 자살, 국민 행복감 저하 경향은 강화되었고, 청년들과 지방 주민의 좌절감은 더욱 커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노란봉투법’, 간호법 등에 거부권을 행사한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우리는 지난 국회에서 180석의 민주당이 어떤 의미 있는 개혁 법안을 제출하여 통과시켰는지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민주당은 지난 대선 이후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 검찰개혁 실패, 정권재창출 실패 등의 이유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더 큰 압승을 거두지 못한 이유, 선거 당일 부산 지역에서 보수의 결집을 가져온 이유도 일부 민주당 후보들이 보여준 여러 문제들 때문이고, 정치적 효능감을 갖지 못한 청년 유권자를 투표장으로 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20~30 남성 청년들에게 가장 큰 문제인 노동-주거-복지 정책에서 국민의힘과 별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지금처럼 민주당이 사회경제 정책에서 국민의힘과 별 차이를 드러내지 못하는 한, 이번에 정권 심판을 위해 민주당을 지지한 청년들과 40~50 유권자들이 다가오는 지방선거나 다음 대선에서는 또 다시 민주당 지지를 철회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으로 이어진 개혁적 자유주의 대통령의 경제정책 실패와 보수세력의 집권, 그리고 집권 보수정권의 퇴행과 그들의 실정에 편승한 야당의 반사적 이익이라는 반복되는 교착구도는 1987년 이후 지속되고 있다.

 

이 교착 상황에서 저출생-수도권집중–심각한 교육병-부동산 양극화와 불평등 심화–기후 위기 등 서로 간에 긴밀하게 얽혀 있으면서, 장기적이고 종합적 대책이 필요한 국가현안은 언제나 뒤로 밀려 났다. 이번 총선에서도 이런 의제는 아예 정책 논의에서 떠오르지도 않았다.

이번 선거에서 많은 비판을 받기는 했으나, 조국혁신당이 제기한 사회연대임금제를 제외하고는 의미 있는 정책의제는 거의 없었다.

‘낡은 것’이 사라지지 않고, ‘새 것’의 등장을 가로막아온 한국의 정치적 대표체제가, 국가와 선거정치, 정당정치에서 국가와 국민에게 정말로 중요한 의제가 부각되지 못하게 막은 중요한 요인이다.

한국의 대통령제-소선거구제의 정치구조가 대선과 총선을 향한 대립과 이합집산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 타협이 실종되고, 국민 정치의식, 복지의식, 그리고 국제문제에 대한 식견은 여전히 제 자리 걸음이다.

위기 몰린 국민의힘, 범야권에겐 정치개혁 전략적 기회

비판법학자 웅거(Unger)는 정치의 가장 큰 야망은 사람들에게 질서가 아니라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도 정치는 곧 신민(新民)-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이어야 하고, 백성이 (‘스스로’) 새롭게 되어야 정치가 바로잡힌다는 가르침이 있다.

정당정치에서 그것은 정당이 유권자 동원, 그리고 선거라는 정치 행위를 통해 사회변화의 가능성, 시민들의 정치 참여의 필요성과 의미, 그리고 참여를 통해서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자각하도록 하는 것이다.

선거는 사회변화의 결과이자 동시에 새로운 시작이기도 하다. 정치가는 선거라는 표층 현상을 통해 그 표층 아래에서 움직이는 대중의 열망을 파악해야 하며, 진정한 사회변화를 위해 정치변화 이상의 그 무엇이 이루어져야 하며, 또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총선으로 심각한 경고장을 받았지만, 지금까지의 스타일로 미루어 볼 때 기존 통치방식을 바꿀 가능성이 크지는 않다.

그럴 경우 앞으로의 3년은 갈등이 증폭되고 혼란이 가중되어, 한국은 정치경제적으로 더욱 더 후퇴하는 국가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한편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은 윤석열 대통령과 거리두기를 하면서 다른 목소리를 낼 가능성도 있다. 보수정권의 지휘부인 <조선일보>가 과거 21대 총선 직후 박근혜 대통령을 버리기 시작하고, 총선의 야당 약진이 계기가 되어 촛불시위가 발생한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번에도 <조선일보>의 윤석열 정부 비판의 강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으며, 이미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이 채 상병 사망사건 관련 특검을 받아들이겠다는 의사를 보이고 있어서, 20대 총선 이후와 유사한 양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위기에 몰린 국면은 범야권에게는 전략적으로 새로운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런 유리한 국면에서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장단기 비전 수립과 함께 당장의 정치적 선택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즉 윤석열 정부와 거리두기를 시도하는 국민의힘 의원들을 견인해서 개헌과 정치개혁의 시동을 걸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국민의힘도 현행 소선거구제에서 불이익을 보고 있기 때문에, 선거법 개정, 개헌 등을 의제로 협상에 응할 수도 있다.

 

그러나 범야권은 윤석열 정부의 잘못된 정치를 개혁하기 위해 공격을 계속해야 하지만, 보다 거시적인 기획 하에 한국 정치의 틀을 바꾸고, 나아가 장시간 노동, 고용불안, 높은 집값 때문에 힘들어하는 생활 대중을 살리는 정치를 해야 한다.

무소불위의 검찰권력 해체, 언론개혁 등이 미완의 민주화를 마무리 짓기 위한 작업이라면, 개헌과 정치개혁 등은 후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일 것이다.

민주당은 이미 공약에서 제왕적 대통령제 종식과 선거의 비례성 강화 등의 내용을 담은 권력구조 개편 의지도 밝힌 바 있다. 민주화 이후 대통령제와 소선구제에 의해 거의 교착된 영호남 지역주의 극복과 정당의 국민적 대표성 제고를 위해 선거법과 정당법도 개정해야 한다. 그리고 국회의 특권을 내려놓고 의원수를 늘리는 등 국회 개혁을 위한 과제도 개원 초기에 시동을 걸어야 할 것이다.

한국 젊은 정치가들이 배워야 할 칠레의 노동시간 단축

사실 지구적 차원에서는 대의제 민주주의가 심각한 한계에 직면해 있고, 직접민주주의, 정당체제의 근본적 개편이 계속 논의되고 있다.

현재 한국이 안고 있는 전환기적 과제는 불평등 극복과 사회개혁, 기후위기 극복,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 등 매우 구조적이고 거시적인 것이다.

이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는 없지만, 우선 노동-주거-교육 등 국민의 삶의 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여러 사회개혁 입법안도 조속히 마련해서 상정해야 할 것이다.

노동시간이 한국과 비슷한 칠레에서 노동 시간을 현행 주 45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이는 법안이 11일 의회에서 통과됐다. 칠레 하원은 이날 노동 시간 단축을 핵심으로 하는 ‘주간 근무법’ 개정안을 찬성 127표, 반대 14표, 기권 3표로 가결했다. 지난달 상원에선 만장일치 찬성표가 나왔다.

한국의 젊은 정치가들도 이런 성공 사례에서 배워야 한다.

 

정치가 시민의 고통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정책적 의제를 계속 제출하고, 그것을 둘러싼 심도 있는 논의와 대안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실질적 주민자치, 시민교육의 제도화, 정책 싱크탱크의 설립 등, 민주화 이후의 미완의 과제들도 마무리해야만 그러한 변화의 주체가 만들어질 것이다.

 

 

 

김동춘 성공회대 명예교수, 좋은세상연구소 대표mindle@mindlenews.com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s://www.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