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방울 문건에도 "500만 달러는 대북사업 계약금"...국정원도 속였다
① 검찰 "김성태가 낸 500만 달러는 경기도 비용 대납"...쌍방울서 압수한 문건엔 "대북사업 계약금"
② 비공개 문건 제목은 '나노스 IR 리포트'...리포트 내용대로 북에 계약금 송금하고 '본 계약' 체결
③ '북한 광물자원 독점 개발' 숨기고 통일부에는 '내복 지원'만 신고했지만, 국정원에 뒤늦게 발각
④ 국정원 문건엔 쌍방울이 북한에 추가로 20억 약속한 정황도...'합의서 평양 체결식' 이벤트 비용 추정
'대북 송금 사건'의 핵심 쟁점은, 김성태 쌍방울그룹 회장이 북한에 건넨 800만 달러의 사용처다.
김 회장을 비롯한 쌍방울 측은 "경기도가 북한에 약속한 스마트팜(지능형 농장) 비용(500만 달러)과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방북 비용(300만 달러)를 대신 내준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쌍방울이 자신들의 대북 사업을 위해 지급한 돈이며, 경기도와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뉴스타파는 500만 달러의 사용처가 적힌 쌍방울의 비공개 내부 문건을 입수했다. 여기에는 쌍방울이 2019년 1월 북한의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이하 아태위)와 경제협력사업 MOU(양해각서)를 맺으면서, 계약금 500만 달러를 약속한 사실이 적혔다.
이후 김성태 회장은 내부 문건에 적힌 대로 200만 달러(2019년 1월), 300만 달러(2019년 4월)를 순차적으로 북한에 송금했다. 계약금을 완납한 후, 쌍방울은 북한과 비공개로 합의서를 작성하게 된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국가정보원 비밀 보고서에 따르면, 쌍방울은 국정원과 통일부에 '합의서' 내용을 일체 보고하지 않았다. 그러나 국정원은 쌍방울이 북한에 추가로 20억 원을 건네려 한 정황까지 뒤늦게 파악했다. 국정원 보고서 내용을 종합하면, 이 20억 원은 공개적인 '합의서 체결식'이 절실했던 김성태의 '평양 이벤트' 비용으로 추정된다.
* 쌍방울그룹이 작성한 '나노스 IR 리포트' 풀(Full) 버전 11쪽. 분량은 총 13쪽, 외부에는 비공개된 내부 자료다.
제 2의 현대아산 꿈꿨던 쌍방울...'나노스 IR 리포트'에 '대북사업 계약금 500만불'
쌍방울은 2019년 1월 17일 북한과 처음 MOU(양해각서)를 맺었다.
쌍방울의 대북 사업은 1차 협약식(1월)→2차 본계약(5월) 순으로 이뤄졌다.
쌍방울은 1차 협약식 내용을 토대로 투자자 설명자료를 만들었다. 이 자료의 제목은 'NANOS IR(Investor Relations) REPORT', 외부 '비공개자료'로 기존 투자자들은 볼 수 없었다.
리포트는 전체 버전(13쪽)과 요약 버전(11쪽) 두 종류로 작성됐다.
나노스는 당시 쌍방울의 핵심 계열사로, 휴대전화 카메라 렌즈 부품을 생산하는 코스닥 상장사다.(나노스는 SBW생명과학으로 이름을 바꿨다가, 올해 3월 다시 퓨처코어로 상호를 변경했다. 현재는 거래정지 중이다).
쌍방울은 이 리포트에서 '쌍방울 계열사 나노스가 북한 아태위의 협력사업 추진 중심 기업이 되었다. 민간 기업으로는 현대아산그룹을 제외하고 유일하며, 결과물은 현대아산그룹을 뛰어넘는 큰 성과로 새로운 평화 시대의 상징이자 남북 관계 개선의 대표적인 기업이 됐다'고 강조했다.
* 쌍방울그룹이 작성한 '나노스 IR 리포트' 풀(Full) 버전 10쪽. 분량은 총 13쪽, 외부에는 비공개된 내부 자료다.
또 ▲북한에 희토류 광물 자원이 약 10억 톤(2,000조 가치) 가량 묻혀 있는데, 나노스가 북 아태위와 기본 합의를 통해 이를 개발하기 위한 실무 단계에 접어들 예정이고 ▲남북한의 주요 인사들을 통해 이 사업을 현실화 할 수 있으며 ▲이미 북 아태위와 기본 합의서(MOU)를 맺었으니 '투자' 해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검찰 수사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부분은, 리포트 7쪽에 적힌 '합의서 개요'다.
여기에는 '계약금 500만 달러(이행보증금 1월 200만불 지급/ 2월 중 300만불 지급)와 사업이행금 1억 달러'를 지급하기로 돼 있다고 적혀있다.
실제로 김성태 회장은 MOU 체결 엿새 뒤인 2019년 1월 23~24일에 200만 달러를, 같은 해 4월 6~11일에는 300만 달러를 북측에 건넸다. 나눠서 주기로 한 계약금 중 두 번째 지급분의 송금 날짜만 다소 미뤄졌을 뿐, MOU 때 약속한 금액 그대로 지급이 실행된 것이다. 이후 실제로 실무 협상도 진행됐고, 본 계약도 체결(2019년 5월)됐다.
* 2019년 10월 29일에 작성된 국정원 비밀 보고서 1쪽.
국정원이 뒤늦게 포착한 '사업권리금 1억불', '소떼 방북', '(주)광림 샘플 20개'
뉴스타파가 입수해 보도하고 있는 45개 국정원 비밀 보고서 문건은, 2018년 8월부터 2020년 1월까지 경기도와 쌍방울의 대북 사업 과정을 면밀하게 담았다. 그 중 2019년 10월 29일 작성된 국정원 보고서에, 위에서 언급한 쌍방울과 북한의 1차 협약식과 2차 본계약이 나온다. 1차 협약식이 2019년 1월 17일, 2차 본 계약이 같은 해 5월 12일이고, 보고서 생산 날짜가 10월 29일인 점을 감안하면, 당국(국정원 및 통일부)은 쌍방울의 대북 사업 내용을 뒤늦게 파악한 셈이다.
위의 문서가 2019년 10월 29일자 국정원 문건 1쪽이다. ▲쌍방울이 북한에 사업권 권리금으로 1억불을 약속하고 ▲본 계약(5월) 후에 공개적인 '합의서 체결식' 일정을 북측과 협의했다고 나온다. '사업권 권리금 1억불'은 나노스 IR 리포트에 적힌 사업이행금 1억불과 같은 돈으로 보인다.
특히 "쌍방울그룹은 2차례의 대북 사업 합의서 체결 사실을 통일부에 신고하지 않는 등, 철저한 비공개 하에 대북 경협 사업을 추진 중'이며, "통일부에는 내의 지원 사업만 신고"했다고 적혀 있다.
쌍방울은 당국에는 '북한 희토류 자원 개발사업' 합의서를 철저히 숨긴 채, 대북 제재를 받지 않는 인도적 지원인 '내의 지원'만을 신고했다.
* 2019년 10월 29일에 작성된 국정원 비밀 보고서 2쪽.
'(주)광림 샘플 20개'는 북한과의 합의서 체결식 비용으로 추정
위의 국정원 문건 2쪽에는 "(주)광림 샘플 20개"라는 표현이 나온다. "구체 품목은 미상(현금으로 추정)"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주)광림은 크레인, 소방차 같은 특수 자동차를 만드는 쌍방울 계열사로, 나노스의 최대 지분(48%)을 갖고 있었다.
문건 2쪽에 따르면, 북한은 광림이 생산하는 철도 특수 차량을 당장 제공받고 싶어했지만, 대북 제재 탓에 차량을 제공하기란 불가능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 국정원은 '광림 샘플 20개'가 '현금 20억 원'을 뜻한다고 본 것이다.
국정원 문건과 검찰 수사기록을 종합하면, '(주)광림 샘플 20개(현금 추정)'는 김성태가 북측에 추가로 건넨 300만 달러의 일부로 추정된다.
검찰은 이 300만 달러가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방북 비용'이라고 주장한다.
김성태는 재판에서 "2019년 7월경에 북 정찰총국 대남요원 이호남과 '이재명의 방북 비용'을 300만 달러로 협의했고, 돈이 없어 70만 달러만 먼저 이호남에게 지급했다"고 증언했다.
검찰 수사기록에는 잔금 230만 달러가 2019년 11월~2020년 1월 사이에 전달된 것으로 나온다. 이에 따라 국정원 보고서가 작성된 2019년 10월에는 잔금 230만 달러가 남은 상태였다.
그런데 문건 2쪽을 보면 "(주) 광림 샘플(20개) 관련 협의를 위한 접촉 제안→ 7.4 접촉(3차) 성사. 쌍방울은 9.16 북측에 △남북 대표단 접촉 △(주) 광림 샘플 전달을 위한 면담 요청"을 했고 "9월 말 접촉(4차), 합의서 체결식 등을 논의"했다는 내용이 확인된다.
또 다른 국정원 문건에서도 쌍방울이 공개적인 합의서 체결을 위해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이에 따라'(주)광림 샘플 20개'는 쌍방울의 대북 사업 진행 과정 전체를 놓고 봤을 때, 1차 협약식 및 2차 본계약 체결식에 이은, 김성태의 평양 방문 및 합의서 체결식을 위해 쌍방울이 북측에 약속한 돈으로 추정된다.
문건에는 쌍방울이 겉으로 내세운 '내의 지원'에 대한 내용도 나온다. 쌍방울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소떼 방북'과 같은 상징적 행사를 통해 내의를 전달하고 싶어했지만, 북한이 '은밀한 지원'을 요구하는 바람에 결국 성사되지 못한 사실도 위 문건 2쪽에서 확인된다.
* 쌍방울그룹이 작성한 '나노스 IR 리포트' 요약(Summary) 버전 표지. 상단 우측에 비공개자료라고 표기돼있다.
김성태 "경기도 대납이라고 쓸 수 없어서 계약금이라 표기"...그러나 리포트는 외부 '비공개' 자료
김성태 회장과 쌍방울 그룹 임원들은 "외부에 공개되는 '나노스 IR 리포트'에 경기도를 대신해서 500만 달러를 북측에 지급했다는 사실을 쓸 수 없기 때문에 '계약금'으로 표기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검찰도 500만 달러는 경기도의 스마트팜 비용을 쌍방울이 대신 내준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뉴스타파가 확보한 '나노스 IR 리포트' 요약 버전의 첫 페이지 우측 상단에는 '비공개자료'라고 명시돼있다. 회사 홈페이지나 일반 투자자에게는 공개되지 않는 대외비 자료였던 것이다. '외부에 공개되는 자료라 실제와 달리 표기했다'는 김성태 회장 측 주장을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 당시 나노스 주식의 기타소액주주는 11.18%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모두 쌍방울 게열사와 김성태가 만든 투자조합의 소유였다. 따라서 나노스의 주가가 오르면 쌍방울 계열사들이 엄청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구조였다.
국정원 보고서에 적힌 '정주영식 소떼 방북'이나 '평양 합의서 공개 체결식'은, 만약 실현됐다면 쌍방울그룹 전체의 주가가 폭등할 수 있는 대형 호재들이다.
국정원 문건 속 내용을 깡그리 무시한 채, 쌍방울이 경기도와 이재명만을 위해 800만 달러를 북측에 대신 지급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뉴스타파는 '대북 송금' 사건의 실체를 추적하기 위해, 국정원 보고서 문건 45개와 검찰 수사기록을 바탕으로 관련 보도를 이어가면서, 공개가 가능한 취재 자료는 시민들에게 적극 제공할 계획이다.
오늘(26일)은 쌍방울그룹이 당국에도 신고하지 않았던 비공개 자료인 '나노스 IR 리포트'의 전체 버전과 요약 버전을, 뉴스타파 홈페이지 데이터포털에 전면 공개한다.
뉴스타파 봉지욱 bong@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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