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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견우불과 직녀불로 거듭난 여왕과 대각간의 사랑-해인사 목조비로자나불

道雨 2007. 11. 13. 16:40

 

견우불과 직녀불로 거듭난 여왕과 대각간의 사랑

해인사 목조비로자나불

 

 

▲ 보랏빛 광채를 내뿜고 있는 해인사 목조비로자나불
ⓒ 이종찬
해인사의 하늘에 세상살이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뭉게구름

뜨락에 선 감나무 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린 동이감이 유난히 붉은 빛을 띠는 가을날 오후.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목조비로자나불을 만나러 합천 해인사로 간다. 해인사로 가는 들녘 곳곳은 황금빛으로 가득하다. 군데군데 그 눈부신 황금빛을 거둬들이는 농민들의 숨가쁜 모습도 더러 보인다.

눈부시게 푸르른 하늘 저만치 솜사탕처럼 뽀송뽀송하게 피어오르는 흰구름이 순간순간 여러 가지 모습을 그린다. 마치 푸르른 하늘이 가야산을 붓으로 삼고 뭉게구름을 하얀 물감으로 삼아 이 세상 사람들의 온갖 얼굴과 살아가는 모습을 쓰윽쓱 그리고 있는 것만 같다. 뭉게구름이 천천히 변하는 모습이 흡사 이 세상살이 같다.

저 뭉게구름 속에 어린 날, 부모님과 함께 구슬땀을 흘리며 벼를 베는 형제들의 모습도 보인다. 그 벼논에 서서 알찬 나락을 훑어먹다가 후여후여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놀라 퍼더덕 날아오르는 참새떼들의 모습도 보인다. 그때 사람이 옆에 다가가도 힐끗 쳐다보기만 하던 그 노루의 모습도 뭉게구름으로 피어오른다.

논둑 곳곳에서는 빨강, 보라, 하양 코스모스가 가을햇살을 마구 철벅이고 있다. 코스모스가 예쁜 꽃잎을 이리저리 흔들 때마다 무지개빛 햇살이 촤르르 촤르르 쏟아진다. 그 무지개빛 햇살 속에 나그네가 들어 있다. 가을햇살 속의 나그네는 여치와 메뚜기를 잡느라 논둑 여기 저기를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 단풍물이 곱게 물들고 있는 해인사 들머리
ⓒ 이종찬
▲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이종찬

 

진성여왕과 대각간 위홍의 못다한 사랑이 깃든 목조비로자나불

해인사(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10) 들머리에 내려 단풍이 활활 불타고 있는 홍류동 계곡과 세월의 돌꽃에 초록빛 이끼를 잔뜩 문 길상탑을 지나 일주문 앞에 선다. 화려한 단청이 단풍빛과 맞물려 예쁜 색을 빚어내고 있는 일주문. 그 기와지붕에도 일찍 떨어져 수북히 쌓인 낙엽이 마치 나그네에게 '인생무상'이라고 속삭이는 것만 같다. .

마음 속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읊으며, 해인사 절마당에 들어서자 저만치 커다란 천에 그려진 까아만 비로자나불 두 쌍이 금빛 부처님을 가운데 모시고 있다. 저 그림 속의 까아만 비로자나불이 지난해 5월 해인사에서 일반인에게 공개한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쌍둥이 목조비로자나불이다.

이 불상은 지난 해 장경각 법보전에 있는 불상을 개금(改金)하는 과정에서 중화(中和) 3년에 제작됐다는 묵서(墨書)가 적힌 나무판이 불상 안쪽 벽에 붙어 있는 것을 발견, 검정 옻칠을 한 상태에서 일반인들에게 선을 보이게 되었다. '중화'란 당나라 희종(僖宗)의 연호로 신라 제49대 헌강왕(憲康王, 재위 875∼886) 9년에 해당되는 때다.

참고로, 그동안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불상은 개심사에 있는 아미타 삼존불상이다. 이 불상은 고려 충렬왕 6년, 서기 1280년에 보수했다는 기록이 있다.

안내자료에 따르면 이 쌍둥이 목조비로자나불은 통일신라 진성여왕과 대각간 위홍이 두 사람의 영원한 사랑과 영생을 기리며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해인사는 올 여름, 견우 직녀가 1년에 꼭 한번씩 오작교를 건너 만난다는 음력 7월 7일에 이 두 사람을 기리는 사랑과 만남의 축제를 열었다. 앞으로 이 행사는 해마다 계속된단다.

▲ 그 절마당에 견우불과 직녀불이 있었네
ⓒ 이종찬
▲ 문화재청에서 국보급으로 인정 받은 해인사 목조비로자나불
ⓒ 이종찬

 

금빛과 검은빛이 어우러져 내뿜는 보랏빛 광채

"석불은 화강암으로 조성됐기 때문에 옷주름을 섬세하게 표현할 수 없어 단순화하거나 생략시키며, 철불은 그 양식이 뛰어나지 않고 지방색이 강하다. 하지만 목조불상은 나무로 조각하기 때문에 사실주의, 자연주의 조각이 가능하다.

해인사 목조비로나자불상은 얼굴이 신체에 비해 크고, 옷주름이 유려한 것으로 보아 자연주의적이고 사실주의적인 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는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전반의 특징적 양식이다. 9세기 불상으로 확신한다." -강우방 이화여대 교수


목조비로자나불이란 나무로 만든 비로자나불을 말한다. '비로자나'란 낱말은 인도 산스크리트어이며, 비로자나불은 깨달음을 형상화한 법신불로 '태양', '광명' 등을 뜻한다.

나그네가 나무로 만든 비로자나불을 모신 보경당에 들어서자 금빛을 내뿜는 왼쪽 벽에 비로자나불 두 구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시커먼 미소를 흘리고 있다. 금빛과 검은빛의 아름다운 조화라니. 나그네가 가까이 다가서자 비로자나불의 새까만 몸에서 보랏빛 광채가 무지개처럼 찬란하게 빛난다. 높이 127㎝, 무릎 폭 96.5㎝.

나그네가 더욱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으려 하자 등 뒤에서 누군가 "사진을 찍으면 안 됩니더" 한다. 힐끗 돌아보니 보경당을 찾아오는 손님들을 안내하는 보살이다. 나그네가 "이 소중한 불상을 누군가 사진을 찍어서 널리 알려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보살에게 되묻자 말없이 고개를 몇 번이나 끄덕인다.

▲ 진성여왕과 대각간 위홍의 못다한 사랑이 깃든 목조비로자나불
ⓒ 이종찬
▲ 검은 몸에서 보랏빛 광채를 내뿜고 있는 목조비로자나불
ⓒ 이종찬

 

견우와 직녀가 오작교를 타고 내려와 까아만 등신불이 되다?

흔히 불상, 하면 석가모니불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 절에 다니며 대웅전이나 대적광전, 미륵전, 나한전 등에 모신 여러 모습의 금빛 불상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구 헷갈리기 십상이다. 아미타불, 비로자나불, 미륵불, 관음보살, 지장보살, 문수보살 그리고 사천왕, 나한 등등.

그렇다면 만중생들이 향촉과 과일 등 공양물을 올리며 자신의 소원을 비는 불상의 종류는 대체 몇 가지나 될까? 해인사 보경당에 있는 안내보살의 말에 따르면 그 예배대상이 석가모니불뿐이었던 소승불교에서 대승불교에 이르면서 불상이 여러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는 대승불교의 불교교리의 발전에 따른 것.

"불상은 크게 불타, 보살, 천, 나한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불타는 보통 여래라고도 부르는데,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지요. 보살은 불교의 진리를 깨우치기 위해 수행하며 부처의 자비행을 만중생들에게 실천하는 수행자상이며, 천은 불교를 수호하는 신, 나한은 부처님 제자와 고승들을 가리킵니다.

불타에는 석가여래, 아미타불, 약사불, 비로자나불, 미륵불이 있으며, 보살에는 미륵보살, 관음보살, 대세지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지장보살이 있습니다. 그리고 천은 범천, 제석천, 사천왕, 인왕(금강역사), 팔부중, 비천이 있으며, 나한은 부처님 십대제자와 유마거사 등 여러 나라에서 숭앙받았던 고승들이 해당되지요."

▲ 이 불상을 개금(改金)하는 과정에서 중화(中和) 3년에 제작됐다는 묵서(墨書)가 적힌 나무판이 불상 안쪽 벽에 붙어 있는 것을 발견, 검정 옻칠을 한 상태에서 일반인들에게 선을 보이게 되었다
ⓒ 이종찬
▲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쌍둥이 목조비로자나불
ⓒ 이종찬
검은 몸에서 보랏빛 광채를 뿜어내고 있는 목조비로자나불에게 합장을 한 채 반배를 한 뒤 보경당을 나와 해인사 절마당에 선다. 따가운 가을햇살이 쏟아지는 해인사 절마당에서는 희부옇게 깔린 마사토가 부처님의 사리알처럼 빛을 반짝반짝 낸다. 마치 전설 속의 견우가 직녀가 오작교를 타고 해인사에 내려와 까아만 등신불이 되기라도 했다는 듯이.

▲ 목조비로자나불 몸에서 나온 유물
ⓒ 이종찬

 

******************************** < 글,사진:오마이뉴스/이종찬기자>

 

 

출처 : 토함산 솔이파리
글쓴이 : 솔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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