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물 관련

허난설헌과 어린 자식의 하소연

道雨 2008. 3. 22. 10:42

 

 

 

나의 어머니

허난설헌의 어린 자식


응~애, 응~ 애.

저와 누나의 이승 나이는 갓난 아이이지만, 저승의 나이로는 4백살이 넘는 어른이라고요. 저는 우리 엄마와 아빠의 ‘부부싸움’과 엄마의 죽음을 애도하려고 해요.

불쌍한 우리 엄마! 저의 엄마는 시인으로 유명한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1589)이어요. 신동으로 소문이 났던 엄마는 이달 선생에게서 시를 배우고, 15살 때 시집을 오셨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벼슬이 없던 아버지[김성립]은 다재다능하고 똑똑한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고 허구헌 날 기방에만 출입하셨어요. 그러자 할머니는 며느리가 잘못 들어 와 집안을 망쳤다며 엄마를 마구 구박했어요. 엄마는 얼마나 슬펏겠어요.

우리 엄마는 경상도 관찰사를 지낸 외할아버지(허엽)의 외동 딸로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자랐다고 해요. 하지만 굴종만이 강요되는 숨막히는 시집살이는 엄마에게 고통 그 자체였어요. 엄마는 슬픈 마음을 시로 달랬어요. 그런데 어린 누나가 먼저 죽고 또 나까지 병들어 죽자, 엄마의 슬픔은 극에 달했습니다. 엄마는 우리를 끔찍히 사랑했어요. 어린 우리의 무덤을 나란히 만들어 놓고는 애끓는 슬픔을 피눈물로 곡을 했을 정도여요.

지난해 귀여운 딸을 여이고/ 올해는 사랑스런 아들을 잃었네
서러워라 서러워라 광릉 땅이여/ 두 무덤 마주 보고 나란히 서 있구나
사시나무 가지엔 쓸쓸한 바람 불고/ 도깨비불 숲 속에서 번쩍이는데
지전(紙錢)을 뿌려서 너의 혼을 부르고/ 너희들 무덤에 술 부어 제사를 지낸다
아! 너희 남매 가엾은 외로운 혼은/ 밤마다 정답게 놀고 있으리
이제 또 다시 아기를 갖는다 해도/ 어찌 잘 자라길 바라겠는가
부질없이 황대사를 읊조리나/ 애끓는 피눈물에 목이 메인다

그런데 더 큰 슬픔이 몰려 왔어요, 외할아버지와 큰외삼촌이 연이어 객사한 거여요. 엄마는 더 이상 살아갈 의욕을 잃고 격한 슬픔을 시로만 달래며 살았어요. 숨은 쉬고 있으나 마치 저 세상 사람 같았습니다.

조선 봉건사회가 짓누르는 구속과 억압 속에서 재능을 마음껏 펼치지 못한 엄마여요. 또 아빠의 외도, 할머니와 집안 사람들의 학대와 질시가 한꺼번에 몰려 왔어요. 그러던 어느 날, 뱃속에 있던 제 동생이 유산되고 또 막내 외삼촌[허균]까지 귀양을 가게되자, 엄마는 스스로 강물에 몸을 던져 27살의 꽃다운 나이로 세상을 마감했습니다.

아빠는 정말 나빠요. 아무리 엄마가 똑똑한 척을 했어도 어떻게 엄마가 죽자마자, 남양 홍씨를 새로 얻어 장가를 갈 수 있어요? 그리고 돌아가신 뒤에는 엄마가 아닌 작은 엄마와 함께 묻힐 수 있어요?

경기도 광주군 초월면 지월리에는 안동 김씨의 선영이 있어요. 맨 아래에는 엄마의 예쁜 무덤이 있고, 그 옆에 저와 누나의 무덤이 마치 쌍분처럼 다정해요. 죽어서도 저희들을 지켜주는 엄마의 모습 같아 눈물이 나요. 아빠는 바로 위쪽에 모셔져 있어요.

엄마! 불쌍한 우리 엄마.
엄마는 죽어서도 혼자여요. 형님, 누나들 많아 찾아와서 우리 엄마의 외로운 혼을 달래 주세요. 여기 아래로는 중부고속도로가 지나가 너무너무 시끄러워요. 밤새 한 잠도 못 잤어요. 아~함, 졸려. 그만 들어가 잘께요.


<사진: 허난설헌의 묘역에 있는 아기 무덤들-어린 나이에 죽은 허난설헌의 자식들의 무덤이다.>

 

 * 윗 글은 '고제희의 역사나들이'에서 옮겨온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