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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조선왕조실록과 놀다 <10> -- 이성계,위화도에서 군사를 돌리다

道雨 2008. 6. 25. 10:56
조선왕조실록과 놀다 <10>
  이성계,위화도에서 군사를 돌리다
  2001-12-13 오전 10:12:20

 

우왕은 사람을 보내 장수들에게 금 은으로 만든 술그릇을 내려주었습니다. 5월에 대부대가 압록강을 건너 위화도(威化島)에 머물렀는데, 도망병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우왕은 그 자리에서 목베라고 명했으나, 도망병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좌,우군 도통사가 보고했습니다.
  
  “신들은 뗏목을 타고 압록강을 건넜습니다. 앞에는 큰 냇물이 있는데 비로 물이 불었습니다. 첫번째 여울에 빠진 사람이 수백 명이나 되고, 두번째 여울은 더욱 깊습니다. 섬 안에 머물러 주둔하고 하릴없이 군량만 축내고 있습니다. 여기서 요동성까지의 중간에는 큰 내가 많은데, 역시 잘 건너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요전에 옳지 못한 일의 내용을 조목조목 적어 보고했으나 윤허를 받지 못해 진실로 황공하고 두렵습니다. (…) 하물며 지금은 무덥고 비가 오는 철이라 활은 아교가 풀어지고 갑옷은 무겁습니다. 군사와 말이 모두 피곤한데 이를 몰아 견고한 성(城) 아래로 간다면 싸워도 꼭 이긴다고 할 수 없으며 공격해도 꼭 빼앗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 때에 군량이 공급되지 않으면 나아갈 수도 없고 물러날 수도 없으니, 장차 어떻게 처리하겠습니까?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전하께서는 특별히 군사를 돌리도록 명을 내리셔서 나라 사람의 여망에 답하소서.”
  
  우왕과 최영은 듣지 않고 내시 김완(金完)을 보내 군사를 전진하도록 독촉했습니다. 이성계와 조민수는 김완을 붙잡아두고 보내지 않았습니다. 다시 사람을 최영에게 보내 빨리 군사를 돌리도록 허락할 것을 청했으나 최영은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군중에는 이성계가 휘하 친병을 거느리고 동북면을 향해 벌써 말에 올랐다는 헛소문이 나돌았습니다. 군중이 흉흉했습니다. 조민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단기(單騎)로 이성계에게 달려와 울며 말했습니다.
  
  “공이 가시면 우리는 어디로 갑니까?”
  이성계는 말했습니다.
  “내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공은 이러지 마시오.”
  

위화도 회군

  그런 뒤에 이성계는 여러 장수들에게 말했습니다.
  “만약 상국(上國) 땅을 범해 천자에게 죄를 짓는다면 종묘 사직과 백성의 재앙이 바로 닥치게 될 것이다. 내가 순리(順理)와 역리(逆理)로써 글을 올려 군사를 돌릴 것을 청했으나 임금은 살피지 않았으며, 최영도 늙고 정신이 혼몽해 듣지 않았다. 어찌 경들과 함께 왕을 뵙고 직접 화,복을 말하고 임금 측근의 악인을 제거해 백성들을 편안케 하지 않겠는가?”
  
  장수들은 모두 따라 드디어 군사를 돌이켰습니다. 압록강에서 이성계는 흰 말을 타고 활 화살을 든 채 기슭에 서서 군사가 다 건너기를 기다리니, 군중에서 바라보고 이렇게들 말했다 합니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저런 사람은 없었다. 앞으로도 어찌 다시 저런 사람이 있겠는가?”
  
  이때 장마가 며칠 동안 퍼부었지만 물이 붇지 않다가 군사가 다 건너고 나자 갑자기 큰물이 몰려와 온 섬이 물에 잠겼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신통해했습니다. 또 동요에도 “목자(木子)가 나라를 얻는다”는 말이 있었다고 합니다. 군사와 백성들은 늙으나 젊으나 모두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보다 앞서 이성계가 살던 마을에 동요가 돌았습니다.
  
  서경성(西京城) 밖엔 화색(火色)이요
  안주성(安州城) 밖엔 연광(煙光)이라
  그 사이를 오가는 이(李) 원수여
  제발 창생(蒼生)을 구제하소서.
  
  얼마 안 가서 군사를 돌이킨 거사가 일어났습니다.
  조전사(漕轉使) 최유경(崔有慶)은 부대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가 우왕에게 알렸습니다. 이날 밤 이성계의 맏아들 이방우(李芳雨)와 둘째아들 이방과, 이두란의 아들 이화상(李和尙) 등은 성주(成州)의 우왕 처소에서 도망쳐 이성계 등의 군대가 있는 곳으로 갔지만 우왕은 한낮이 되도록 이를 몰랐습니다. 그들은 길에서 임금의 행차를 지원하러 오는 수령들을 만나 말을 빼앗아 타고 갔습니다.
  
  우왕은 대군이 돌아와 안주에 이르렀음을 알고 말을 달려 도성(都城)으로 돌아갔습니다. 군사를 돌이킨 장수들이 서둘러 추격할 것을 청했으나, 이성계는 서둘러 가면 틀림없이 싸우게 되고 사람을 많이 죽이게 된다며 이를 막고 항상 군사들을 이렇게 경계했다고 합니다.
  
  “너희가 만약 임금을 범한다면 나는 너희를 용서치 않을 것이다. 백성에게서 오이 한 개만 빼앗아도 죄를 묻겠다.”
  
  부대는 도중에 사냥하면서 일부러 천천히 행군했습니다. 서경에서 서울에 이르는 사이의 수백 리 길에 우왕을 따르던 신하들과 서울 사람, 이웃 고을 백성들이 줄을 지어 술과 음료로 영접했습니다.
  
  본디 종군하지 않았던 동북면 사람과 여진인 가운데서도 이성계가 군사를 돌이켰다는 소식을 듣고는 다투어 모여들어 밤낮으로 달려온 사람이 1천여 명이나 되었습니다.
   
 
  이재황/실록연구가

출처 : 황소걸음
글쓴이 : 牛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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