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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변의 명판결

道雨 2008. 11. 12. 15:45

 

 

 

           손변의 명판결

 

 

 

고려 고종 때 손변이 경상도의 안찰부사가 되었는데, 그 고을에 남동생과 누이가 재산 문제로 송사를 벌이고 있었다.

남동생은 "다 같이 한 부모에서 태어났는데, 어찌 누이 혼자 재산을 갖고 동생인 나에게는 그 몫이 없단 말입니까?"라고 하였고, 누이는 “아버지께서 임종하실 때 전 재산을 나에게 주고, 네가 가질 것으로는 검은 옷 한 벌, 검은 관 하나, 신발 한 켤레, 종이 한장 뿐이었으니, 어찌 이를 어기겠는가? 이렇게 증거서류가 구비되어 있으니 낸들 어찌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여 서로의 주장만을 고집하며 그 건의 송사가 미결로 남아 있은지가 벌써 여러 해째였다.

이때 손변은 그 송사를 넘겨받아 두 남매를 불러 앞에 앉혀 놓고 조용히 물었다.

"너희 아버지가 죽을 때에 너희 어머니는 어디에 있었는가?“

그들의 대답이 "아버지보다 먼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하였다.

손변이 계속해서, “그때 너희들의 나이는 각각 몇 살씩이었느냐?”고 다시 물었다.

"누이는 이미 시집을 갔었고 동생인 자기는 아직 총각 아이였다.”는 대답이었다.

 

손변이 그들의 말을 듣고 나서 이렇게 타일렀다.

"부모의 마음은 어느 자식에게나 다 같은 법이다. 어찌 장성해서 이미 출가한 딸에게만 후하고 어미도 없는 총각아이인 아들에게는 박하게 할 리가 있겠는가?

생각컨대, 아들의 의지할 곳은 누이 밖에 없으니, 만약 재산을 나누어준다면 혹시 그 아이에 대한 누이의 사랑과 양육이 부족하지 않을까를 우려했음이다.

그러나 아이가 장성해서 재산으로 분쟁이 있게되면, 검정 옷을 입고 검정 갓을 쓰고 미투리를 신고 관가에 고소하면, 이것을 잘 분간하여 줄 관원이 있을 것이므로, 오직 이 네 가지 물건만 그 아이에게 남겨 준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의도가 대개 어디에 있었겠느냐!”라고 하여 그들을 설득시켰다.

 

누이와 동생은 이 같은 그의 명쾌한 말을 듣고 비로소 깨닫고 감동하여 서로 붙들고 울었다.

그래서 손변은 드디어 재산을 반분하여 남매에게 나누어 주고 그 송사를 마무리하였다

 

 

 

 

* 위의 내용은 '고려사'와 '역옹패설'에 기록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