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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 자랑(계월향)

道雨 2008. 12. 11. 09:16

 

 

 

애인 자랑(계월향)


조선의 의기(義妓), 계월향


안녕하세요. 저는 선조 때 경상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장군 김경서(金景瑞)의 애인입니다. 일전에 논개와 최경회 장군이 서로 전공을 자랑했지만 임진왜란 때 충과 의 그리고 절개를 지킨 미인이 있다면 당연히 계월향(桂月香)이 으뜸입니다.

논개는 유명해져 큼직한 무덤에 사당을 두 개나 지어 받았는데, 일개 노류장화의 기생으로 적장을 껴안고 순절했다는 사실때문아닙니까?

그렇지만 논개는 기생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점은 조금 시정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렇다면 여기 진짜 기생으로 적장을 죽이고 나라를 구한 제 애인 계월향은 논개 못지않은 추앙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1997년 11월, 세상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 신선한 사건이 신문에 보도됐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고급 음식점 ‘대원각’의 주인이던 김영한(金英漢, 82세) 할머니가 첫사랑 백석(白石) 백기행을 추모하며 2억원을 출연해 「백석 문학상」을 제정한 것입니다.

김 할머니는 또 기름 냄새가 진동하던 대원각을 일면식도 없는 법정(法頂) 스님에게 시주해 일약 부처님의 자비를 전하는 도량 ‘길상사’로 탈바꿈시킨 일도 있었습니다.

김할머니는 전직이 기생으로 스무 살에 백석을 만나 ‘자야(子夜)’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3년 간을 같이 살았다 합니다.

“1936년 가을에 함흥에서 만났지요. 대뜸 자기 옆에 앉으라고 하더니 술잔을 건넸습니다. 헤어질 무렵 그는 ‘오늘부터 당신은 내 마누라요’하고 단정적으로 말했어요. 그 순간 내 의식은 바닥 모를 심연 속으로 빠져들어 갔습니다.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애틋한 아픔의 시작이었어요.”

지아비도 아닌 사내를 60년이나 넘게 잊지 않고 가슴에 담았다니, 사랑도 그 정도면 마음이 아니라 도가 아닐까 싶네요.

옛 말에 ‘정의 문을 열면 마음은 괴로운 가운데 행복하고, 정의 문을 닫으면 마음은 한가한 가운데 외롭다’라고 했으니 꼭 그 일을 두고 한 말처럼 들립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칼쓰기를 좋아했는데 겨드랑이 아래로 이상한 뼈가 있어 힘이 그곳에서 튀어나왔어요. 장군의 재목으로 하늘이 보낸 것이지요.

아니 지금 뭐라고 했어요? 장애인이라고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몸이 유연하여 높은 나무도 훨훨 날아다니며 선조 16년에 당당히 무과에 장원으로 급제했습니다. 하지만 검찰이 되었으나 신분이 미천하다는 이유로 파직을 당했지요. 정말 열 불이 났지만 장부답게 꾹 참았어요.

드디어 내 실력을 마음껏 부릴 기회가 왔어요. 임진왜란이 일어나 임금이 의주로 피난을 가실 때입니다. 대동 강을 건너려 했는데, 왜적이 진을 치고 있어 불가항력의 위기에 몰렸지요. 저는 신출귀몰하는 칼솜씨를 마음껏 뽐내면서 왜놈을 물리치고 임금이 강을 건너는 것을 도왔습니다. 승리를 거두자, 저는 즉시 조방장이 되었지요.

고백하건대, 저에게는 만년을 두고 변치 않을 애인이 있었어요. 바로 평양 제일의 명기 계월향인데 우리는 마음으로 굳게 언약을 한 사이였지요. 하지만 어이없게도 평양성이 왜군에게 함락 당해 계월향은 왜장의 술 시중을 들고 있었어요.

서로 은밀하게 내통을 하고 있었지만 워낙 철통같은 감시에 마음을 조리며 하루빨리 평양성을 탈환하고자 결심했어요. 이원일 정승과 함께 성문 밖에서 진을 치고 있는데 연락이 왔어요. 적장 고니시를 죽이고 평양성을 되찾자는 계월향의 편지였어요. 등골이 오싹해지며 머리카락이 곤두섰어요. 저 역시 죽을 결심을 하였고, 계월향은 왜장을 꼬셨지요.

“오빠, 저에게는 한 분밖에 없는 오라버니가 있는데 조선군의 졸병으로 고생이 너무나 심해요. 그러니까 성안으로 불러들여 늠름한 일본의 장수로 삼아 주신다면 알지. 잘 해 줄께요.”

계월향의 미인계는 성공을 거두었고, 저는 평양성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고니시가 잠을 든 것을 확인한 다음 보기 좋게 목을 싹둑 잘라 버렸어요. 저는 즉시 계월향의 손을 이끌고 고니시의 머리통을 럭비공처럼 껴안은 채 성을 빠져 나오려 했어요. 하지만 재수 없게 왜군에게 발각되어 겹겹으로 포위 당했어요. 도저히 함께 도망치기는 불가능했어요.

그 때 계월향이 큰소리로 외쳤어요.“서방님은 어서 몸을 피해 나라를 구하세요.”
아! 갈등.“어떻게 나 혼자 살겠다고 도망을 갈 수 있어?”

“졸장부. 서방님은 글을 배운 선비이니 대의가 무엇인지를 알 겁니다. 나는 어차피 왜놈에게 몸을 더럽혀진 계집이니 차라리 나를 죽이고 가세요. 어서요?”

아! 무정하고 야속한 세상, 계월향은 왜군에게 붙잡혀 죽임을 당하기보다는 차라리 내 칼에 죽고 싶다며 악을 바락바락 썼어요.

“안돼, 나는 못해. 내가 어떻게 당신을 죽일 수 있어.”

“병신, 머저리, 쪼다. 그럼 내가 저 더러운 왜놈의 손에 몸이 찢기어 죽어야 속이 편하겠어요. 이 놈아.”

와! 황당.
"안돼. 그래도 난 못해.”

“아! 천지신명 님이여. 어쩌다가 저런 졸장부를 나에게 보내 주셨나이까. 제 목숨 하나는 아깝지 않으나 왜놈에게 짓밟히는 만 백성은 누가 구원하겠습니까? 주여, 저희 백성을 버리고 어디로 가십니까.”

저는 머리카락을 곤두세우며 몸에 힘을 주었어요. 그랬더니 겨드랑이에서 뼈가 튀어나오며 용기가 솟았어요. 저의 시퍼런 칼날이 허공을 향해 긴 선을 긋더니, 그 순간 계월향의 목에서 분수처럼 피가 솟구쳤어요. 하지만 계월향의 얼굴에는 너무나 뿌듯하고 행복한 미소가 번졌어요.

아 박절하고 원통한 내 신세. 적장을 잃은 왜군은 힘없이 평양성을 내주고는 한양으로 후퇴하였고 저는 훗날 병마절도사로 승진했습니다. 그

러나 계월향없는 내 인생은 너무나 삭막했어요. 사랑의 단절이 가져다 준 상실감은 나날이 고통스러워 오로지 계월향의 명복만을 빌며 세상을 살았어요.

여러분, 제 애인 계월향을 꼭 기억해 주세요. 저와 계월향은 무덤도 없이 구천을 떠도는 외로운 영혼입니다. 마땅히 제사를 지낼 무덤도 없으니 여러분의 마음 속에 저희들이 살아 있다면 다행으로 여기겠습니다. 꾸벅!

 

* 윗 글은 '고제희의 역사나들이'에서 옮겨온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