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금강산댐, 천안함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은 그것을 정신적으로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고통스러운 사건인 트라우마를 정신적으로 반복하는 것은 그 자체로 고통이기 때문에 이런 경향은 매우 역설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고통이 해석되지 않는 상태가 고통만큼이나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트라우마를 정신적으로 반복하는 것은 사건의 의미에 도달하려는 힘겨운 노력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천안함의 침몰도 그런 트라우마적 사건이다. 그래서 달포가 넘도록 우리 사회가 그것에 그렇게 집착하는 것이고 모두들 그 사건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두런거리고 있는 것이다.
의미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조명해줄 어떤 준거 내지 참조점이 필요한 법이다. 천안함 침몰의 의미를 조명해줄 수 있는 것으로 내게 떠오른 것 가운데 하나는 9·11테러이다.
2001년 9월11일 납치된 미국 여객기에 의해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심장부에 있는 무역센터가 단숨에 무너졌다. 그 이후 미국은 지금도 끝나지 않은 두 개의 전쟁에 이끌려 들어갔으며, 자국 시민의 인권과 시민권 또한 약화되는 대가를 치렀다.
만일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버블제트 어뢰 공격에 의한 것이라면 스펙터클의 면에서는 9·11테러에 많이 못 미친다 하더라도 대담함이나 치밀함에서는 그것을 웃도는 바가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천안함 사건은 9·11테러처럼 무방비상태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한-미 합동군사훈련 중에, 그것도 세계 최고의 레이더 시스템(AN/SPY-1D)을 갖추어 최대 200개의 목표를 동시에 탐지·추적할 수 있고 그중 24개의 목표를 동시에 공격할 수 있다는 이지스함이 세 대나 떠 있는 가운데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대잠수함 작전능력을 가진 초계함을 침몰시키고 유유히 사라지는 군사적 능력을 북한이 보유하고 있다면, 남한의 모든 전함과 항구는 언제라도 파괴될 위험에 놓여 있는 셈이다.
이런 위기상황이라면 정부는 4대강 사업 따위에 엄청난 예산을 투여할 게 아니라 국방 강화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또다른 하나는 금강산댐 소동이다.
1986년 가을 전두환 정권은 북한이 짓는 금강산댐(임남댐)의 저수량을 200억t으로 부풀려 국민을 겁박했다. 그 댐의 물을 한꺼번에 방류하면 63빌딩의 40층까지 물이 차오를 정도여서 서울시민 대부분이 수장된다는 것이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한국방송>(KBS)과 조중동은 똘똘 뭉쳐 북한을 성토했고, 전국적으로 반공 집회가 조직되었으며, 대응 댐을 짓기 위한 성금 모금 캠페인도 벌어졌다. 그렇게 해서 코흘리개 아이들의 돈까지 긁어모은 639억원 정도의 성금이 소위 ‘평화의 댐’ 건설에 투입되었다.
하지만 금강산댐 소동으로 남북 대결 국면을 조성하고 그 기세를 타고 이듬해 호헌선언에 나섰던 전두환 정권은 6월 민주화운동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1993년에는 금강산댐의 저수량이 최대로 잡아도 50억t 정도임이 공식적으로 밝혀졌으며, 짓다 말다 하던 댐은 소동이 벌어진 지 20여년이 지나서 노무현 정부에 이르러 겨우 완공되었다.
46명의 아까운 목숨을 앗아간 천안함 사건은 9·11테러가 테러의 역사에서 그랬듯이 세계 해전사를 새로 쓴 사건일까, 아니면 금강산댐의 경우처럼 헛소동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만일 전자라면 정부의 우왕좌왕하는 위기대처 방식을 비판해야 할 것이며, 후자라면 정부의 위기제조를 준엄하게 비판해야 할 것이다.
과연 어느 쪽일까?
오컴의 면도날이 필요한 지점으로 보인다. 너무 많은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 설명을 피하도록 하자.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
* 오컴의 면도날
간단하게 오컴의 면도날을 설명하자면, 어떤 현상을 설명할 때 불필요한 가정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하는 말로 번역하자면, '같은 현상을 설명하는 두 개의 주장이 있다면, 간단한 쪽을 선택하라'는 뜻이다.
여기서 면도날은 필요하지 않은 가설을 잘라내 버린다는 비유로, 필연성 없는 개념을 배제하려 한 "사고 절약의 원리"(Principle of Parsimony)라고도 불리는 이 명제는 현대에도 과학 이론을 구성하는 기본적 지침으로 지지받고 있다.
예를 들어, 새까맣게 그을린 나무가 있다고 가정하자. 이는 나무가 벼락에 맞았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누군가가 어떤 장치를 이용해서 나무가 완전히 잿더미로 변하지 않도록 적절히 그을린 다음 자신이 그을렸다는 흔적을 완전히 없앤 것일 수도 있다.
오컴의 면도날을 적용해 본다면, 나무가 그을린 것은 벼락에 맞았기 때문이라고 추론하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벼락에 맞았다는 쪽이 조건을 덜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중세의 철학자들와 신학자들의 복잡하고 광범위한 논쟁속에서, 오컴은 1324년의 어느날 무의미한 진술들을 토론에서 배제시켜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는 지나친 논리비약이나 불필요한 전제를 진술에서 잘라내는 면도날을 토론에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오컴은 "쓸데없는 다수를 가정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이를 좀 더 알아듣기 쉽게 바꾸면 "무언가를 다양한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중에서 가장 적은 수의 가정을 사용하여 설명해야 한다"고 표현할 수 있다.
더 짧게 말하면, 설명은 간단할 수록 좋다.
오컴의 면도날은 다음과 같이 일종의 계율처럼 말해지기도 한다.
"가정은 가능한 적어야 하며, 피할 수만 있다면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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