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서는 법이다.

道雨 2010. 11. 16. 15:00

 

 

 

               노혁명가의 공연에 부쳐 
한겨레
» 김영훈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서는 법이다.’

 

지난해에 이어 오는 11월25일 서울대 문화관 대강당에서 두번째로 열리는 ‘노래에 얽힌 백기완의 인생 이야기’를 준비하면서 백 선생께서 하신 말씀이다. ‘열 마디의 연설보다 한 편의 시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엄연한 사실을 망각해 온 우리에게 주는 선생의 따끔한 질책이자 실의에 빠져 있을 우리에게 어서 빨리 일어나라고 하는 호소이다.

‘예술이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것이야말로 정치적이다’라는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노동현장에서 문화예술인들의 도움은 적지 않다. 인간의 본성을 노래하고 형상화하는 예술만큼 혁명적인 행위가 있을까? 전태일 열사도 글쓰기를 좋아했고, 미완성의 희곡을 직접 쓰기도 했다. 6년이라는 세월을 싸웠던 기륭전자 불법파견 노동자들의 곁에는 언제나 의로운 예술인들이 함께했기에 그들은 외롭지 않았을 것이다. 이름 없는 예술인들의 노래와 시, 그림들이 없었다면 그 모진 세월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을까? 그리고 기륭 조합원들이 마지막 죽을힘을 다해 포클레인 단식농성에 돌입했을 때 경찰의 강제진압을 막아준 것은 시인이었다.

송경동 시인은 김소연 분회장과 함께 포클레인 위로 올라가 들이닥치는 경찰들을 향해 전깃줄에 매달렸고, 농성 도중 실족해 지금 병상에 누워 있다. 고공농성장에서 그의 외침은 그대로 이 시대의 시이다. 백 선생의 말씀처럼 부족한 우리를 대신하여 시인이 앞장선 것이다. 이런 예술인들이 어찌 이분들뿐이겠는가. 지금도 1000일을 넘게 투쟁하고 있는 재능교육 비정규직 노동자들, 단지 교섭을 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불살라야만 했던 경북 구미 케이이시(KEC) 노동자들. 이제 10~20일 단식투쟁은 어디 명함도 못 꺼내게 하는 장기투쟁 사업장과 적어도 한 100일은 파업해야 그나마 투쟁한다고 신문에 한 줄이라도 나는 척박한 노동현장에서 예술인들은 자본의 늪을 헤치고 나오려는 노동자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해주고 있다. 부끄럽고 고마울 따름이다.

많은 시민들이 20세기 최고의 화가 피카소가 위대한 혁명가였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처럼, 이 시대의 노혁명가 백 선생의 예술에 대한 깊은 열정을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오늘날 노동조합을 무력화하고 모든 것을 자본의 입장에서 해석하는 신자유주의 정권의 공통점은 문화예술 탄압과 인문학 멸시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올바른 예술작품을 노동자들이 접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존재를 부정하게 하는 강력기제이기 때문이다.

백 선생은 자신의 모든 사재를 털어 진보진영의 학술과 예술, 노동과 통일이 함께 어우러질 ‘노나메기 재단’을 건립하기 위해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고 계신다. 열흘 앞으로 다가온 노혁명가의 공연은 재단 건립을 좀더 많은 이들과 함께 하기 위함이리라. 80 성상을 오로지 노동자, 민중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투쟁해오신 그 힘은 어디에서 비롯될까? ‘나에게도 무서운 회초리를 들고 종아리를 내리칠 스승이 한 분 계시면 좋겠다’던 우리의 영원한 스승 백 선생이 들려줄 말씀은 무엇일까?

“여보게 젊은이, 당신은 뭐하려고 민주노총 위원장이 되었어? 죽을 각오가 없으면 오늘 당장 그만둬!” 당선 인사 드리러 간 날 들었던 선생님의 쩌렁쩌렁한 가르침을 나는 오늘 실천하고 있는가? 정치적 수사가 정치에 대한 냉소를 조장하듯, 우리의 ‘결사투쟁’도 수사로 전락하지는 않았는가? 투쟁의 현장에서 천지를 호령하던 연설만큼 우리의 정신을 일깨워줄 선생의 구수한 날노래(유행가)와 가슴을 치는 비나리(시) 한편을 이 가을에 듣고 싶다. 힘든 농사일에도 막걸리 한잔에 농요를 함께 부르던 우리 민중들의 멋, 노나메기 정신을 계승하고 싶다. 누구보다 앞장서서 이 야만의 시대를 돌파해나갈 우리 노동자들이 객석의 맨 앞자리를 채워야 할 분명한 이유이다.

 

 

<김영훈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