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의 국방 슬로건은 무엇이었을까?
군사 분야나 정치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라도 인터넷을 몇 번 두드려보면 정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참여정부 국방정책의 목표는 ‘자주국방’이었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는 어떨까?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봐도 현 정부가 어떤 목표 아래에서 국방정책을 추진해왔는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국방 분야의 전문가로 꼽히는 사람들도 아는 것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에 국방 슬로건이 있었던가요? 글쎄요, 정확히는 모르겠는데요.”(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민주당 관계자)
“내가 지금까지 국방위만 3년을 하고 있는데, 들어본 적이 없어요. 현 정부에는 우리 군을 어떻게 만들겠다, 이런 목표가 없습니다.”(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관계자)
국방부 대변인도 모르는 국방 슬로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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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3월12일 국방부 업무보고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과 군 관계자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청와대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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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을 찾았다. 12월2일 오후 기자와 김 대변인 사이에 오간 짧은 질의응답 내용을 그대로 옮긴다.
"잘 아시겠지만 참여정부에서는 국방정책과 관련해 ‘협력적 자주국방’이라는 슬로건을 분명히 제시하지 않았습니까. 이명박 정부에도 이같은 국방정책 슬로건이 있나요? 국회 국방위에도 아는 분들이 없어서요."
“아… 국방백서를 보면 나오지 않습니까. 제 코멘트보다는 그게 공식 입장이니까 국방백서를 참고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실례지만 대변인께서도 잘 모르시는 건지요.”
“그렇게 물으시면 저를 시험하시는 거고, 제가 어설프게 답하는 것보다 거기에 잘 정리해놓았을 테니 그걸 보고 이해하시는 게 훨씬 좋을 것 같아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정답은 ‘정예화된 선진강군’이었다.
국방부는 2008년 3월12일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첫 업무보고에서 ‘정예화된 선진강군 육성’을 국방비전으로 보고했다. 짧게 줄이면 ‘선진강군’으로 요약할 수 있는 국방 슬로건은 그해 국방백서에도 그대로 실렸다.
현 정부의 국방정책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정예화된 선진강군’이라는 국방 슬로건에 제대로 들어맞는 것이 없다. 현 정부의 국방 슬로건을 묻는 질문에 ‘돈 안 주는 국방정책’, ‘국방 다이어트’라는 비아냥 섞인 대답이 돌아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선진강군.
외우기 어렵지 않은 구호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국방 슬로건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유는 다시 2008년 3월12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국방부 업무보고 장소는 경기도 용인시 3군사령부였다. 이 대통령이 청와대나 국방부 청사가 아니라 야전사령부를 국방부 업무보고 장소로 선택한 이유는 군의 사기 진작을 감안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지만, 정작 이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군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메시지 일색이었다.
‘선진강군’을 말하는 군 관계자들 앞에서 그는 ‘경제’를 강조했다.
“어떤 여건 속에서도 목표로 하는 경제성장을 이뤄야 강한 군대를 만들 수 있다.”
“국방개혁은 안보태세 확립의 중요한 요소이면서 동시에 국가 경제발전과도 관련이 된다.”
아울러 이 대통령은 “군의 끊임없는 체질 변화” 대목에도 힘을 주었다. 하루 전인 3월11일 육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낡은 관행과 비효율을 과감하게 털어내라”라며 군을 향해 쓴소리를 쏟아낸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취임할 때부터 이미 군에 대해 근본적인 불신을 갖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대다수 언론이 선진강군이 아니라 경제성장과 군 체질 변화에 초점을 맞춰 보도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 대통령은 그 뒤에도 기회가 닿을 때마다 군을 향한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군은 예산 낭비가 심한 비효율적 조직이라는 것이 기업 최고경영자(CEO) 출신 대통령의 확고한 믿음이었다.
선진강군 위해 국방비 상승폭 꺾는 모순
‘정예화된 선진강군’의 국방 슬로건을 달성하려면,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그에 걸맞은 병력 감축 계획이나 무기체계 현대화 등 구체적인 군사력 건설 방안이 뒤따라야 한다. 적어도 참여정부 때는 그랬다.
‘협력적 자주국방’을 달성하기 위해 참여정부는 2005년 ‘국방개혁 2020’ 계획을 수립하는 등, 15년 뒤인 2020년을 내다보는 국방정책을 제시했고, 또 이를 실천했다.
국방개혁 2020은 당시 68만 명 수준의 병력을 2020년까지 50만 명 수준으로 감축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했다.
군의 규모는 줄이되 현대화 및 첨단화로 자주국방을 이룬다는 국방개혁 2020은 이에 따라 2011년까지 고고도 무인정찰기인 글로벌호크와 2천t급 차기호위함을 도입하기로 하는 등 체계적인 전력 증강에 초점을 맞췄다.
그런데 ‘정예화된 선진강군’을 국방 슬로건으로 내세운 현 정부의 국방정책은 오히려 그 반대 방향으로 치달았다.
선진강군이 되려면 최신 무기를 도입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국방 경영의 효율화’가 우선이라는 대통령의 철학 때문이었다.
군을 책임지는 김태영 국방부 장관이 2009년 9월23일 취임하며 ‘강한 군대’가 아니라 ‘국방 경영 합리화’를 가장 앞에 내세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방 경영 합리화.
물론 좋은 말이지만 그렇다고 현 정부의 국방정책이 경영 합리화라는 명분에 맞았는지도 의심스럽다는 지적이 많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관계자의 말이다.
“국방 경영의 합리화라면 무엇을 어떻게 합리화하겠다는 것인지 분명히 제시해야 하는데, 이 정부는 국방비를 많이 줄 수 없다는 것 이외에 어떤 합리화 방안을 제시했는지 알 수 없다. 적어도 노무현 정부 때 나온 국방개혁 2020에는 군 구조 개혁과 전력체계 개편에 대한 구체적 방안이 있지 않았나. 지금은 국방비를 줄이라는 것 이외에 방안이 없다.”
실제로 현 정부 출범 이후 국방비 상승폭은 해마다 가파르게 꺾였다.
11월29일 장병완 민주당 의원이 정부로부터 제출받은 ‘2005~2011년 국방비 지출 현황 자료’를 보면, 참여정부 기간(2005~2008년)에 연평균 8.0%였던 국방비 증가율은 현 정부 들어(2009~2011년) 5.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정부는 2009년 ‘국방개혁 2020’을 ‘국방개혁기본계획’으로 수정하며 621조원의 소요 예산을 599조원으로 삭감했다.
예산 삭감 과정에서 줄어든 22조원의 80%인 17조6천억원은 국방개혁의 핵심인 방위력 개선비였다. 공군의 글로벌호크나 해군의 차기호위함 도입 사업이 자연스럽게 현 정부 이후인 2015년 이후로 늦춰지거나 재검토 대상에 올랐다.
대신 2020년까지 50만 명 규모로 줄이기로 했던 병력 감축 계획을 늦춰 2020년까지 51만7천 명 수준을 유지하기로 했다.
애초 병력 감축 계획의 배경은 민간이나 경찰에 이양할 수 있는 군 업무를 덜어내 장기적으로는 경영 합리화를 꾀하겠다는 것이었다.
현 정부는 국방 경영의 합리화를 주장하면서도 이런 사업에는 제동을 걸었다. 이를테면 지난 8월 대통령직속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가 병력 감축 계획에 따라 육군의 해안경계 임무를 해양경찰에 이관하겠다는 군의 계획을 백지화시킨 것이 대표적이다.
국방 합리화도 제대로 안 돼
결과적으로 현 정부가 추진하는 국방정책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정예화된 선진강군’이라는 슬로건에 제대로 들어맞는 것이 없다.
그렇다고 ‘국방 경영의 합리화’를 올바르게 추진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현 정부의 국방 슬로건을 묻는 질문에 정치권과 군 안팎에서 ‘돈 안 주는 국방정책’ ‘국방 다이어트’라는 비아냥 섞인 대답이 돌아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방비 절감 이외엔 목표가 불분명한 국방정책이 가져오는 결과는 뻔하다.
당장 군의 사기 저하와 기강 해이, 복지부동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보수 인사로 분류되는 전직 국방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이 양반이 말로만 확고한 안보태세를 강조하지 실제로는 국방부가 국방 예산을 제대로 집행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불신만 드러내고 있다. 군 통수권자와 군의 신뢰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지금은 서로 신뢰가 없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
*** UAE에 대한 원전수출에 끼워 파는 상품 격이 되어 버린 특전사 파병, 육해공 사관학교의 통합 논의, 육사와 3사의 통합 추진(결국 3사의 폐교) 등은 이러한 경제우선 논리의 맥락에서 추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