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판별법'을 아십니까?
중세의 마녀재판
한 시대의 몽매와 편견, 권위와 폭압의 질서가 빚은 가장 비극적인 역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마녀재판이다.
중세 유럽의 불과 2~3세기 동안에 마녀재판으로 처형당한 사람이 약 100만 명에 달한다고 하니, 가히 광기 어린 집단학살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이들의 죄목을 살펴보면 정말 황당하기 그지 없다.
- 악마와 계약을 맺은 죄
-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닌 죄
- 불법적인 악마연회에 참석한 죄
- 악마의 꽁무니에 입맞춘 죄
- 얼음같이 차디찬 성기(性器)를 지닌 남성 악마 '인큐비'(Incubi)와 성교한 죄
- 여성 악마인 '서큐비'(Succubi)와 성교한 죄
위와 같은 황당한 죄목에서 점차 생활 주변에서 벌어지는 현실적이고 사소한 것으로 확대되었으니 다음과 같다.
- 이웃의 암소를 죽인 죄
- 우박을 불러온 죄
- 농작물을 망친 죄
- 아이들을 유괴하여 잡아먹은 죄
오늘날 마녀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지 않는 것만큼 확고하지만, 중세시대에는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이 없었던 것처럼 중세인들은 마녀의 존재와 그 위험성에 대해 절대적으로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에도 재판을 하고 기록을 남겼는데, 그 기록을 보면 이러한 집단학살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알 수 있다.
한 명의 마녀가 고문을 못견뎌 또 다른 몇 명의 마녀를 실토하는 방식으로 수만, 수십만 명의 마녀가 기하급수적으로 탄생된 것이다.
마녀 판별법
수십만 명의 마녀 희생자들이 생겨난 데는 바로 중세유럽의 무자비한 사법절차와 가혹한 고문 때문이었다. 단지 풍문만으로도 마녀는 체포될 수 있었다.
누가 마녀라는 소문이 나면 즉각 이웃들에 대한 조사가 실시되고, 강압적인 심문이나 유도 심문을 통해 얻어낸 증언에 의해 곧바로 마녀가 되었던 것이다.
사소한 의심만 가지고도 수사착수의 단서가 되기에 족하였다.
온갖 질병과 사고, 태풍과 흉년, 사산한 아이, 언쟁과정에서 무심코 던진 말 한 마디, 십자가 한쪽이 깨어진 묵주를 가지고 다니는 행동 등이 모두 의심거리가 되었다.
이미 마녀로 소추받은 자가 심문 과정에서 누군가를 지목하면 그 사람도 마녀로 체포되었다.
마녀의 자식은 대체로 마녀로 간주되었다. 마녀로 처형된 어린아이들은 대개 그들의 어머니가 마녀였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증거능력이 없는 미성년 아동들의 증언에 따라 마녀로 소추되곤 하였다.
마녀로 고발되거나 체포된 자가 실제 마녀인지 아닌지를 증명하는데 여러 방법이 동원되었다. 가장 흔한 방법이 물에 의한 실험이었다.
마녀로 지목된 자를 무거운 바위에 매달아 강이나 늪, 운하에 던져보는 방법이 그것이다. 물 위에 떠오르면 악마와 교접한 근거가 되었고, 빠져죽으면 결백한 사람으로 간주되었다.
결백이 증명되더라도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마녀 용의자의 몸무게를 달아보는 저울시험도 마녀 판별법의 하나였다. 마녀는 몸이 가볍다는 이론에 따른 것이었다.
저울시험으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한 소도시에서는 마녀의 몸무게를 25kg으로 규정했다.
1782년 헝가리 어느 지방에서는 이러한 저울시험을 통해 13명의 마녀를 산 채로 불에 던졌다는 기록도 있다. 형리들이 저울눈이나 추의 무게를 속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이밖에 악마의 표징을 찾는 방법이 있었다.
몸의 어딘가에 악마의 표징이 있으리란 믿음에서, 몸의 털을 모두 깎아낸 다음 바늘이나 칼로 찔러보는 방법이었다. 반응을 보이지 않는 부위가 나온다면 그곳이 바로 악마의 표징이었다.
사마귀, 반점, 부스럼, 혹, 심지어 기미와 주근깨조차 악마의 낙인으로 간주되었다.
그런 낙인이 없다고 해서 안심할 수도 없었다. '악마는 의심스런 계약자에 대해서는 자기 눈만으로 표시를 해두기 때문'에 표식이 없는 마녀도 있을 수 있다고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1601년 일흔 살의 과부 드 뤼는 자신이 마녀라는 소문과 평판 때문에 스스로 당국에 출두하여 잘못된 소문임을 밝혀달라고 요구하였다.
마녀를 274명이나 찾아냈다는 이단심문관은 이 과부의 몸에서 모든 털을 제거하고, 긴 바늘을 이용하여 온 몸을 찔러보는 실험을 실시했다. 악마가 이 노파와 맺은 계약을 증명할 속셈으로 노파의 몸에 남겨놓았을 흔적을 찾아내려는 시도였다.
결국 왼쪽 어깨 위에 있는 다섯 개의 점을 발견하고, 이들은 이 과부가 마녀임을 증명해 냈다. 그녀는 목졸려 살해된 뒤 화형당했다.
눈물을 흘리지 않는 것 역시 마녀의 증거가 되곤 하였다.
한 심문관이 프뤼동이라는 마녀 용의자에게 처참한 고문을 가했는데도 눈물을 흘리지 않자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너무 울어 더 이상 울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마구 두들겨 팼답니다"라고 대답했다.
극도의 공포에 사로잡혀 있거나 긴장하는 경우 눈물샘이 고갈될 수 있다고 오늘날 여러 의학논문들은 입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는 것은 악마와 맺은 중요한 계약이라고 간주되었다.
악마와 마녀는 계약서를 작성하면서 악마는 마녀에게 초자연적인 힘을 주고 마녀는 생애를 통하여 악마에게 복종할 것을 서약한다. 말하자면 마녀의 신통력은 악마에게 영혼을 판 대가로 부여받는다는 것이다.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방법은 보통 육체적 교섭을 통하여 가능하다. 악마는 남성으로 상정되기 때문에 육체적 관계를 통하여 그 악마성이 여성인 마녀에게 전달된다는 것이다.
악마는 보통 멋있는 신사, 기사, 상인, 사냥꾼 등의 모습으로 나타나 궁핍한 처지의 여성에게 접근하여 이들에게 도움을 주거나 감언으로 유혹한다.
마녀 용의자가 수사과정에서 밤중에 집에 있지 않았거나 행선지를 대지 못하는 경우 마녀회의에 참석한 근거가 되었다.
체포될 당시 지나치게 놀라는 모습이 마녀의 징표로 여겨지는가 하면, 지나치게 차분한 것도 마녀의 습성으로 간주되었다.
일단 당국의 의심에 걸려든 사람은 어떤 경우에든 마녀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이러한 수사와 재판절차조차 거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마녀사냥의 광풍이 불고 있던 1644년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에 한 목동이 나타나, 마녀를 알아볼 수 있는 투시력이 있다고 자처하며 돌아다녔다. 물론 그가 지목한 사람들은 마녀로 기소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1670년 베아른에서는 열여섯 살 난 어린 도제가 마녀집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했다고 자백하였다. 이에 따라 이단심문관은 그로 하여금 그 지방에 우글거린다는 마녀들을 찾아내라며 주변 마을을 순회하게 하였다.
그에게 지목당한 사람은 6,210명에 달하였다고 한다.
마녀를 판가름하는 일이 쉬울 리 없었다.
교황사절은 마녀판별에 고민하는 재판관들을 향해 "한 사람도 남김없이 죽여라. 신이 분별해 주실테지"라고 독려하였다고 한다. 이단심문관들은 이 독려에 충실히 따랐다.
중세의 기록에 보면 처형당한 마녀의 재산을 몰수했울 뿐만 아니라, 마녀에게 가한 고문과 화형에 드는 비용까지 마녀의 가족에게 청구하였다고 한다.
*** 위의 내용은 『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 (박원순 지음, 부제 : 세기의 재판이야기, 한겨레신문사 발행)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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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에나 있었던 마녀 재판이 우리의 현대사에도 여전히 그 위력을 떨치고 있다.
이승만 독재시절과 박정희, 전두환 등 군사정권하에서의 많은 공안사건에서 가혹한 고문으로 인해, 증언 및 증거가 조작되고, 사법부에서 조차 이를 바로잡지 못하고, 잘못된 재판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고귀한 생명까지 잃기도 하였다.
민주화 이후 김대중, 노무현 정부하에서 재심절차를 거쳐 구제되거나 보상을 받게된 경우도 여럿 있으나, 아직도 억울한 사연을 간직한 사람들이 많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 '광우병 촛불 시위', '천안함 사태' 이후 다시 공안정국으로 회귀하고 있으니, 이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일이며, 현대판 마녀사냥이라 아니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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