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최초 좌초에 대한 소고
KBS가 가공한 '침몰원인' 놀랍다
(서프라이즈 / 내가 꿈꾸는 그곳 / 2012-09-05)
천안함은 왜 까나리 어장의 그물을 덮치게 됐을까.
참 궁금했다. 천안함은 왜 까나리 어장으로 가게 된 것일까. 어쩌면 이 물음에 대해 가장 적절한 답을 할 수만 있다면 천안함 사건의 진실은 여러분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며 쉽게 풀릴 듯 싶었다. 이미 관련 포스트 등을 통해 백령도 주민들의 주 생계원인 까나리 어장은 천안함과 같은 초계함급 함정은 출입을 할 수 없는 곳이라고 했다. 백령도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곳은 단지 까나리 어장이기 때문이 아니라 까나리 어장의 속성상 수심이 얕아서 큰 함정이 접근하면 좌초를 할 수 밖에 없는 수심이 얕은 곳이기 때문이었다.
까나리 어장의 수심은 대략 20m 내외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인양된 천안함의 함미 곳곳에는 그물이 걸려 올라오거나 스크루 샤프트에 그물을 칭칭 휘감고 있는 것이다. 천안함이 어떤 이유로 까나리 어장으로 간 흔적이 천안함 곳곳에 지문 처럼 묻어나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적지않은 분들이 천안함의 '좌초' 사실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어딘지 찜찜한 부분이 남아있었을 텐데, 그건 천안함이 왜 하필이면 까나리 어장으로 들어가 까나리 어장의 그물을 덮치게 되었을까 하는 점이 아닌가 싶다.
그게 늘 궁금해 나흘 전 끼적인 '어느 美 육군이 촬영한 천안함의 진실'에 이어, 본 포스트에서는 '어느 미 육군'의 관련 사진과 함께 천안함이 까나리 어장에 좌초한 배경 등에 대해, 그동안 언론에 보도된 자료 등을 참조하여 재구성해 보기로 한다. 위 그림은 천안함의 함미 부분에 시설된 스크루 블레이드(날개) 모습인데 두 개의 스크루 중에 오른쪽(우현)에 위치한 스크루 모습이다. 이 사진은 이미 여러분들이 봤을 테지만 카메라 앵글이 남달라서, 이 자료를 통해 '스크루 블레이드가 휜 이유'를 잠시 살펴보도록 한다. 아래 그림을 살펴 봐 주시기 바란다.
위에서 본 우현 쪽 스크루와 비교해 보면 좌현 쪽 스크루는 상대적으로 멀쩡해 보인다. 우현 쪽 스크루 블레이드는 심하게 휜 반면 좌현 쪽은 상대적으로 덜 휘 거나 양호한 상태인 것이다. 아마도 이런 상태는 천안함이 좌초 당시 (전체가 좌초된 게 아니라) 함미 우현 일부분만 좌초된 것으로 판단되는 것이다. 아무튼 좌초 현상인데 천안함의 함미가 인양되자 스크루 블레이드가 휜 이유를 놓고 논란이 거듭됐다. 그 논란을 그림 속에 삽입해 봤다.
그림 속에 삽입해 둔 각각의 주장을 살펴보면 합조단의 주장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지 알 수 있다. 천안함의 우현 쪽 스크루 블레이드가 휜 이유에 대해 합조단은 '스크루가 갑자기 멈춰 관성력에 의해 휘어졌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자 과학자들은 관성력이 작용한 반대방향으로 휘어진 것으로 실험결과로 증명해 보였다. 금방 들통이 나고 말았다. 따라서 윤덕용 단장 이하 합조단 구성원들의 과학적 실력은 거의 초딩급으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천안함 사건 재판 당시 증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천안함의 항진 속도는 대략 2~6노트 정도 수준이다. 매우 저속(Dead Slow Ahead)으로 항진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 속도에서 엔진을 갑자기 멈추면 프로펠러가 오그라든다?...(흠...정말 오그라드는 표현이다.)
그런 주장은 신상철 전 민군합동조사단 민간위원 등에 의해 다시금 상식 밖 거짓으로 드러나고 말았다. 신 선생은 이에 대해 "스크루 5개의 블레이드가 균일하게 오그라든 손상은 해저지반과의 접촉 외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은 러시아 조사단이나 민간 전문가들의 주장과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스크루의 손상은 스크루가 해저면에 닿아 휘어진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신 선생은 그 현상을 보다 구체적으로 묘사해 놓고 있다. 스크루를 휘게 만든 해저지반은 '고운 입자의 모래가 단단히 다져진 해저지반에서 파묻힌 상태에서 회전 하였을 때'라고 말하고 있다. 백령도 지질 대부분을 차지하는 규암이 부서져 연안에 두껍게 쌓인 '규암가루'를 염두에 둔 지적이다. 한 때 비행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던 사곶 해수욕장 바닥의 모래가 아스팔트 활주로처럼 단단한 것도 그 때문이다. 백령도 연안의 모래밭은 보통 해수욕장의 부드러운 모래밭과 경도가 전혀 다르다는 말이다.
따라서 좌초 이후 이함 과정에서 바둥거린(?) 흔적이 프로펠러가 오그라드는 현상으로 남게된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대략 여기 까지는 모르시는 분들이 없을 거 같다. 그러나 언급한 바 천안함은 두 스크루 중 한 쪽 블레이드는 휜 정도가 아니라 눈에 띌 정도로 오그라들었다. 천안함의 우현 함미 쪽이 해저지반과 접촉한 현상이다. 그렇다면 천안함은 왜 우현 함미 쪽만 좌초를 당한 것일까. 본 포스트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바로 이 부분이다.
이러한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을 극대화 시켜야 한다. 상상력이란 별 거 아니다. 천안함 사건의 진실에 대해 당사자들은 입을 꾹 다물고 있고 또 누구하나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으므로, 천안함 사고 당시 언론들이 투명하고 왕성하게 활동할 당시 기사를 참조할 수 밖에 없었다. 참 다행인 지. 당시 KBS는 관제언론으로 변한 오늘날 KBS와 전혀 달랐다. 특히 고한주호 준위가 숨진 제3부표 위치의 비밀을 밝혀내는 등 천안함 사건 취재는 눈부실 정도였다. 그러나 KBS 보도 내용 전부가 눈부신 게 아니었다.
천안함이 침몰한 지 닷새가 되던 날 KBS 뉴스
<http://news.kbs.co.kr/tvnews/news9/2010/03/29/2071662.html>에 따르면, 백령도 주민들이 천안함 사고지점 근처에 해도나 GPS에도 나타나지 않는 암초가 있다고 말했다. 백령도 두무진에 사는 이원배 씨는 "물속에 잠겨 있는 여(암초)가 있는데 함대가 가도 GPS에 표시 안 돼 있으니까 모르는 거죠"라고 인터뷰를 통해 밝힌 것이다. 천안함이 사고를 당한 곳은 백령도에서 천8백미터 떨어진 지점인 데 수중 암초가 위치한 지점은 사고지점에서 800m 정도 떨어진 곳이라고 했다. 이원배 씨는 이에 대해 "끝이 뾰족하고 밀물때는 잠겨있어요 우리는 알고 피해 다니지…"라고 증언했다.
또 군 당국이 천안함 사고 해역에 암초가 없다고 말했지만, 2010년 3월 30일 해경 김수현 경비안전국장이 민주당에서 "해저지도를 봤는데 사고 지역에 암초가 있는 것을 확인"했고 "사고 당일 오후 9시33분 해군 2함대로부터 '좌초 위기에 처해 있다. 가서 구조해달라'는 전화가 와 출동했다"고 보고한 사실도 있었다. 천안함은 수중의 잠수함 등 괴물체와 추돌하기 전 어떤 우여곡절을 겪고 있었을까. 당시 KBS의 보도 초점은 천안함의 침몰 원인에 맞추어져 있었다. 천안함은 침몰 지점 근처의 수중의 '홍합여'라는 수중암초에 걸려 좌초된 이후 충돌음을 내고 침몰했을 것이라는 등의 가설이었다. 이러한 주장사실은 금방 사람들의 기억으로 부터 멀어져 갔다.
하지만 이 사실은 천안함이 인양된 후 스크루 샤프트에 휘감긴 그물 등으로 부터 새로운 영감을 불러 일으키기 시작했다. 백령도 주민들로 부터 홍합여로 불리우는 수중암초가 천안함의 좌초 및 추돌 현상을 잘 설명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따라서 그동안 언론 등지에 드러난 사실과 함께 최근 신 선생이 자신이 대표로 있는 서프라이즈에 제공해 둔 해도(백령도 근해)에 대입해 보니 놀랄만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동안 막연하게 머리 속에서만 그려놓고 있던 그림을 지도 위에 표시해 보니, 사고 순간이 마치 영화를 보는 듯 명확하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수중암초 '홍합여' 위치(대략)와 최초 좌초 위치를 비교해 본 그림은 놀랍도록 (비슷하게)일치 한다. |
그동안 천안함 재판을 통해 증인들의 한결같은 증언은 천안함이 북서쪽 방향으로 느리게 아무런 문제없이 작전(항진)에 임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고 당시 KBS 보도에 나타난 천안함의 항적은 (어떤 이유로)수중암초인 홍합여를 건드리고 말았다. KBS 보도에 따르면 "해안에 근접했던 '천안함'이 암초 위를 통과하면서 상대적으로 가벼운 함수 부분은 무사했지만 배 밑바닥이 암초에 부딪칩니다. 최초 상황 보고에서 충돌시 함미 부분이 20cm 가량 솟아 올랐었다는 정황과도 일치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당시 상황을 참조해 보면 천안함은 좌초 당시 까나리 어장에 근접했을 망정 아직 그물을 휘감을 정도는 아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천안함은 수중암초와 부딪칠 당시 심각한 위기에 빠지고 만다. 함미 부분이 20cm 정도 들리는 정도가 아니라 수중암초에 부딪치면서 함미 기관실 쪽 배 밑바닥에 구멍이 뚫려 물이 새고 있었다. 바닷물은 대략 2000톤에 달하는 수압으로 기관실 엔진룸을 향해 솟구치고 있었다. 기관실은 침수되고 있고 빼도박도 못하게 된 좌초 상황. 어쩔 텐가.
다급해진 천안함은 기관부 승조원 등을 동원하여 침수를 막는 노력과 함께, 이러한 사실을 즉각 상부에 보고하고 '좌초'라며 해경에 긴급구조를 요청을 했다. 대략 상상력을 동원해 최초 좌초 상황 까지 도착해 보니 수중암초 홍합여의 존재가 무색해 졌다. 해저지도를 통해서 확인해 본 수중암초(?)는 광범위하게 형성돼 있었던 것이다. 천안함의 함미가 수중 암초의 뾰죽한 부분에 파공된 게 아니라 해저지반에 의해 파공된 것을 온 몸으로 말해준 게 백령도 연화리 앞 바다에 형성된 해저지반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사고 당시 열심히 취재에 나섰던 KBS의 보도에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와 군 당국은 어느새 언론을 장악하며 사실을 왜곡하며 은폐를 시도한 것일까.
관련 보도를 한 KBS는 최원일 함장의 녹취를 통해 "함장실에 있는 순간 쾅하는 충돌음과 함께 배가 오른쪽으로 직각 90도로 기울었습니다."라는 내용을 동시에 내보내고 있었다. 아울러 천안함 설계자(신영균 씨)를 통해 "(천안함의)가장 취약한 부분이 기관실 근처입니다 공간이 크기 때문에 그쪽을 '맞게' 되면 다량의 해수가 들어오기 때문에…"라며 천안함 침몰원인을 수중암초에 의한 파공과 피로파괴에 대한 가설은 물론 <어뢰 폭침>을 연상케 하는 일련의 시나리오를 완성해 두고 있었다. 시선이 집중된 국민들의 이목을 분산 시키는 한편 최 함장의 진술을 통해 어뢰 폭침이라는 실로 교묘한 복선을 깔아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천안함이 침몰한 지 닷새 만에 일어난 일이다. <계속>
내가 꿈꾸는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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