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상식

미국의, 그때그때 다른 ‘전작권 전환’

道雨 2021. 2. 25. 09:33

미국의, 그때그때 다른 ‘전작권 전환’

벨 전 사령관 “전작권 전환 안 돼”

“북한이 핵무기로 무장하고 있는 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을 추진하면 안 된다. 전작권 전환이 강행되면 한국은 북한에 복속될 위험이 커진다.”

노무현 정부 시절 한미연합사령관을 지낸 버웰 벨 전 사령관이, 지난 10일 <미국의 소리>(VOA) 방송에 보낸 성명서 내용이다.

실로 충격적인 주장이다. 전작권 전환이 이루어지면 미국이 동맹 파트너 역할에 전념하지 않을 수 있고, 북한이 한국군을 격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한반도 전구 작전을 책임졌던 미군 사령관의 발언이라는 점에서 가볍게 보기 어렵다. 국내에서도 북한 핵 위협이 상존하는 한 전작권 전환은 시기상조라는 목소리가 크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전작권 전환은 한-미 동맹의 군사지휘구조의 변화다. 주한미군도 유지될 것이고, 연합사 체제도 변함이 없다. 중요한 변화는 한국군 장성이 사령관이 되고, 미군 장성이 부사령관이 되는 것뿐이다.

그런데 “북한이 한국군을 격퇴”해서, 한국이 “북한에 복속”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미국의 대한반도 방위공약이 한·미 양국의 국익과 공유된 가치에 기초한 것이 아니고, 단지 연합사령관의 국적에 의존해왔다는 말인가? 현재 미-중 경쟁의 격화 속에 바이든 행정부가 동맹 복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 미국이 결정적인 순간에 동맹을 버린다면, 어느 나라가 미국을 믿고 운명을 함께하려 하겠는가?

 

동맹 차원만이 아니다. 만약 미국이 비핵 동맹국 한국을 핵 위협으로부터 보호해주지 못한다면, 전세계 비확산체제도 위기에 봉착할 것이다. 비확산체제는 핵보유국이 우방국에 제공하는 확장억제(핵우산) 공약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비핵국가를 핵 위협으로부터 지켜주겠다는 공약과 개별 국가들의 핵무장 자제는 일종의 교환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북핵 위협에 대한 한국군의 대응능력을 높이는 것은 꼭 필요하고, 한국군이 사령관이 되어 주도적으로 전작권을 행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북한 핵 위협은 기본적으로 한국군 단독이 아니라 동맹의 능력으로 대응해야 하는 문제다. 따라서 북핵 위협 대응은 전작권 전환의 결정적 변수나 조건이 아니라, 전작권 전환 전후를 막론하고 한·미가 함께 노력해야 할 과제로 이해하는 것이 맞다.

 

그렇다면 벨 사령관은 왜 이런 주장을 폈을까? 아니 전직 장성의 사적 견해만이 아니다. 미국 정부는 전작권 전환에 대해 왜 ‘조건’ 충족만을 강조하며 소극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을까? 미-중 경쟁 등 유동적인 안보환경하에서, 한반도에서 군사적 주도권을 놓고 싶지 않다는 고려가 클 것이다. 국지적 충돌 등 각종 위기단계에서 한국군에 대한 통제가 약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전작권 전환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미국의 전략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와 부시 행정부는 2007년에 전작권을 2012년 4월에 전환하기로 합의한 바 있는데, 그 과정에서 전환 시기를 더 앞당기고 싶어 한 쪽은 오히려 미국이었다. 당시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한국군 능력을 신뢰한다며, 2009년 10월 조기 전환을 주장해서 한국 국방부가 곤혹스러웠던 적이 있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대테러 전쟁에 빠져 있던 미국으로서는, 붙박이 주한미군을 좀 더 융통성 있게 활용하고 싶은 계산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전작권 전환 문제, 더 나아가 주한미군 또는 한-미 동맹에 대한 미국의 정책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우리가 사령관 자리를 양보한다고 해서 붙들어 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군의 전쟁 기획과 수행 능력을 높이고, 한반도 방위에서 주도적 역할을 강화하기 위한 전작권 전환은 이 때문에도 마냥 미뤄서는 안 된다.

 

작전통제권 전환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노태우 대통령은, 결국 평시 작전권만 환수하는 것으로 타협한 바 있다. 회고록에는 “독자적으로 지휘권을 갖지 못한 것은 주권국가로서 창피한 일”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1980년대의 시기상조론이 30년이 지나서도 득세하고 있다. 앞으로 또 30년이 지나서 2050년대에도 엄중한 안보환경 탓을 하게 되지 않을까 마음이 무겁다.

 

김정섭 |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984307.html#csidx9b387db408edcb9af6005d89c1b6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