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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선 안 될 참사,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었다

道雨 2022. 10. 31. 09:00

일어나선 안 될 참사,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었다

 

 

 

핼러윈 데이 앞둔 주말 이태원서 비극
지자체·경찰 등 대비미흡, 철저히 따져야
초당적 협력으로 안전사회 근본 대책을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일어나고 말았다. 지난 29일 늦은 밤 처음 소식이 전해졌을 때만 해도 이 정도의 사태를 예상한 국민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장의 구급대원들이 아무리 온 힘을 써서 당겨도, 포개지고 뒤엉킨 시민들을 제때 구조할 수 없었다. 밤새 텔레비전 화면과 사회관계망서비스로 현장 상황을 보고 듣던 이들의 마음은 타들어갔고, 30일 아침 우리 사회는 형언하기 어려운 비통함에 휩싸였다. 핼러윈 데이를 앞두고 서울 이태원에서 일어난 참사는 사망자 수가 속절없이 늘어 150명을 훌쩍 넘겼다. 다수가 20대 젊은이와 여성들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담화를 내어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비극과 참사가 발생했다”며 “정부는 오늘부터 사고 수습이 일단락될 때까지 국가애도기간으로 정하고, 국정 최우선 순위를 사고 수습과 후속 조처에 두겠다”고 밝혔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태원이 있는 용산구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사망자 유족과 부상자에 대한 치유 지원금과 심리치료 등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또 다음달 5일까지를 애도기간으로 정하고, 서울시에 합동분향소를 설치하기로 했다. 수습과 지원, 애도 어느 것 하나 차질이 없도록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일어나서는 안 되는데 일어난 일이 다름 아닌 ‘참사’다. 뒤집어 말하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전 대비’가 더욱 중요한 이유다. 이태원 참사라고 다르지 않았을 터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던 지난해 핼러윈 데이 전후에도 이태원 일대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참사 하루 전인 28일 밤에도 걷기 힘들 만큼 밀려든 인파에 떠밀려 행인이 넘어지는 일이 있었으나, 다행히 인명 피해로 이어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지자체와 경찰 등이 이런 사정을 몰랐는지도 의문이지만, 어느 경우든 재난 대비에 심각한 허점이 있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7일 용산구는 ‘핼러윈 데이 대비 긴급 대책회의’ 결과를 보도자료로 냈으나, 인파가 몰려 발생할 수 있는 대형 안전사고를 고려한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사고가 처음 일어난 것도 아니다. 2005년 경북 상주에서도 공연장에 인파가 몰려 11명이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그 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축제 사고 예방을 위한 내용이 강화됐고, 행정안전부도 ‘지역축제장 안전관리 매뉴얼’을 두고 있다.

그러나 행안부와 지자체 모두 ‘핼러윈 데이는 법적으로 축제가 아니다’라며, 매뉴얼을 적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기가 막힐 따름이다.

 

경찰도 “어느 때보다 축제 열기가 고조되고 있다”고 판단했지만, 현장에 배치한 인력은 137명에 그쳤다. 그나마 인파에 의한 안전사고가 아닌 마약·성폭력 같은 사건·사고에 대비한 것이었다. 좁은 골목길을 일방통행식으로만 바꿨어도 달랐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경찰과 지자체는 이제 와 책임 공방까지 벌이고 있다. 양쪽을 함께 관할하는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책임 떠넘기기는 더 심각하다. 이 장관은 이날 합동 브리핑에서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했다고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서울 시내 곳곳에서 여러 소요와 시위가 있었기 때문에 경찰·경비 병력이 분산됐던 측면이 있다”고 했다.

사태 원인 파악과 수습을 이끌어야 할 행안부 장관이 집회·시위 핑계를 대는 듯한 발언을 한 것에 대해 여당에서도 “물러나야 한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 30일 새벽 서울 용산 이태원 해밀턴 호텔 인근 사고 현장에서 병원 이송을 위해 대기하는 부상자들을 시민들이 돌보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반면 국민들은 비통함을 달래며 성숙한 태도로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 그동안 극한의 정쟁에 매달려온 여야 정치권이 애도와 함께 참사의 후속 조처에 전념하겠다고 밝혔다. 초당적 협력으로 근본적인 제도 보완에 나서야 할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각국 지도자들과 세계 시민들도 이번 참사에 깊은 애도를 표하고 있다.

참사 현장에선 시민들과 인근 상인들이 피해자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심폐소생에 매달리고 구조에 나서기도 했다. 참담함 속에서도 이들의 헌신에서 우리는 작지 않은 위안을 얻고 희망을 본다. 그 위안과 희망이 이제는 피해자들에게로 온전히 전해지기를 바란다.

 

진정한 애도는 이런 비통한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뜻을 모으는 데 있을 것이다.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도 드러나고 있듯이, 사회적 참사는 한두 가지 원인으로만 발생하지 않는다. 사고 원인을 낱낱이 찾아내 분석하고, 잘못이 있는 이들에게 응분의 책임을 묻고, 실효성 있는 재발 방지 대책을 찾아가는 과정이 얼마나 지난한지, 우리는 세월호 침몰 등을 고통스럽게 겪으며 확인해왔다.

최종 목적지는 모두가 안전한 사회이며, 모두가 안전한 사회는 생명과 인권이 존중받는 문화가 굳건히 자리잡은 사회일 터이다. 다시 한번 피해자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

 

 

 

[ 2022. 10. 31  한겨레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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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구도 경찰도 안전대책 0개…이태원 ‘행정 참사’

 

 

 

 

10만 인파 명확히 인지했음에도
용산구·서울시·경찰 모두 무방비
서로 ‘내 일 아냐’ 식 소극적 행정

 

 

              * 3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세계음식문화거리가 외부인이 통제된 채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150명 넘는 사망자를 낸 이태원 참사는 관료적 무책임이 빚어낸 전형적인 ‘행정 참사’였다. ‘10만 인파’가 몰릴 것이란 예고에도, 관할 지자체인 용산구와 서울시, 서울경찰청은 현장 안전요원 배치나 교통·보행동선 관리 등 기본적인 안전대책은 전혀 세워두지 않고 있었다.

 

참사 이틀 전, 거리청결 대책 논의했다

 

이태원 일대에서 진행된 핼러윈데이 행사가 법적인 의미의 ‘지역축제’가 아니라는 이유였다. 지방자치단체가 주최하거나 후원하는 공식 행사가 아니라, 지역 유흥업소들이 자체적으로 벌이는 영업 활동이니 일반 지역축제와 같은 기준으로 관리할 책임이 지자체나 경찰에는 없다는 것이다.

 

30일 <한겨레> 취재 결과, 이태원동을 관할 행정구역으로 둔 용산구는 핼러윈데이와 관련해 안전관리계획을 전혀 세우지 않았다. 소방당국이나 경찰에 도로 통제나 보행동선 관리 같은 행정 지원을 한차례도 요청하지 않았고, 유관기관이 참석하는 안전관리위원회·지역안전관리민관협력위원회도 열지 않았다. 사고 이틀 전인 10월27일 부구청장 주재로 열린 긴급회의에선 코로나 방역과 시설 점검, 거리 청결 대책 등이 주로 논의됐다.

 

실제 사고 당일 해밀톤호텔 옆 참사 현장을 비롯한 이태원 일대에는 도로·차량 통제는커녕 안전지도요원도 배치되지 않았다. 인파가 많이 몰려 안전사고가 우려될 때 내려지던 지하철역 무정차 운행도 없었다. 이태원동 상인 모임인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 관계자는 “용산경찰서장까지 나온 자리에서 경찰과 지자체에 사전 통제 요청을 했지만 아무런 조처가 없었다”고 했다.

 

안전대책 세운 기관 용산소방서뿐

 

이날 핼러윈데이 안전대책을 세운 기관은 용산소방서가 유일했다. 그나마 의용소방대원 48명(연인원 기준·사고 당일 12명)을 중심으로 핼러윈데이 소방안전대책을 자체 수립했을 뿐이다. 경찰청 경비국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인파 운집에 따른 안전사고 관리 책임은 관할 자치단체장에게 있다. 집회 신고도 따로 없었다”고 했다. 서울경찰청은 사고 당일 이태원에는 경찰 137명을 배치했다고 밝혔지만, 다수가 마약·풍기 단속을 위한 외사·형사 담당 사복 경찰이고 정복을 입은 경찰관은 58명뿐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핼러윈 인파 압사 사고 다음날인 30일 오후 서울시청 앞에서 작업자들이 다음날부터 운영할 합동분향소를 설치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시도 이번 행사와 관련해 별도 안전대책을 세우거나 논의하지 않았다. 권우정 서울시 안전지원팀장은 “자치구 2개 이상이 걸쳐 있는 행사는 서울시가 관여하지만 핼러윈데이는 그렇지 않다”며 “용산구로부터 지하철 무정차 등 협조 요청도 없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용산구와 경찰 모두 10만이 넘는 인파가 일시에 이태원으로 몰릴 것이란 사실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행사 기간에 언제든 대형 사고가 터질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뜻이다.

 

실제 이태원동을 관할하는 용산경찰서는 지난 27일 낸 보도자료에서 “올해는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된 이후 처음 맞이하는 핼러윈으로, 클럽 등 영업 제한이 해제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축제 열기가 고조되고 있다. 온라인상 핼러윈과 이태원을 단어로 한 검색량이 폭증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도 경찰은 ‘관할 지자체의 요청이 없었다’는 이유로 아무런 사전 대비를 하지 않았다. 또 다른 경찰청 관계자는 “홍대 앞에서 클럽데이 행사에 인파가 몰린다고 우리가 교통통제를 하는 건 아니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지자체·경찰 총괄하는 행정안전부의 ‘한가한’ 인식

 

지자체 행정 사무와 경찰 업무를 총괄하는 행정안전부도 다르지 않았다. 이응범 행안부 재난안전점검과장은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용산구는 핼러윈데이를 축제로 판단하지 않았다. 축제라면 행안부에 보고하는 등 관련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핼러윈데이 행사에 대한) 행안부 판단도 용산구와 같은가’라는 물음에 “그렇다”고 말했다. 핼러윈데이 행사가 재난안전법 적용을 받는 공식 행사가 아니라고 행안부는 판단한다는 뜻이다.

 

재난안전법은 일정 규모 이상의 축제에 대해선 중앙행정기관의 장 또는 지방자치단체장이 안전 책임을 지고 소방·경찰 등 유관기관은 물론 행사 특성에 맞는 전문가의 조력을 받도록 돼 있다.

 

제진주 한국열린사이버대 교수(소방방재안전학과)는 “관할 지자체나 경찰 쪽은 상당히 많은 인파가 몰린다는 정보를 모두 갖고 있었을 것이다. 각 기관들의 소극 행정으로 대형 압사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재난안전법은 1천명 이상 관광객이 오거나 지자체장이 대비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축제에 대해선 안전대책을 수립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이승욱 장나래 손지민 김선식 기자 seugwook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