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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련 건의서 내용과 일치... 기묘한 윤 정부의 제안

道雨 2022. 12. 15. 12:29

전경련 건의서 내용과 일치... 기묘한 윤 정부의 제안

[분석] 미래노동시장 연구회 '근로시간 유연화' 방안의 실체... 주69시간이 노동개혁?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의 밑그림이 될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의 노동시장 개혁안이 공개됐다. 연구회는 지난 12일 권고안을 통해 우선 개혁과제로 근로시간 유연화와 연공제가 지배적인 임금체계 개편을 윤석열 정부에 권고했다. 노사관계의 정치화를 막겠다며 노조 운영의 투명성 보장이나 노조의 사업장 점거 제한, 대체근로 사용의 범위에 대해서도 법제도 개선을 제안했다. 향후 정부와 여당은 권고안을 바탕으로 한 근로시간 유연화 등 노동개혁 과제를 제도화 하기 위해 근로기준법 개정 등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다. 이해당사자인 노동계는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 방향에 대해 세 가지 영역(근로시간 유연화, 임금체계 개편, 노사관계)으로 나눠 살펴본다.[기자말]

 

 

자본주의 사회에서 거래되는 노동력은 일반적인 상품과는 다르다. 그 주체인 노동자와 분리할 수 없다. 그래서 상품시장에서 판매되는 세탁기나 자동차와는 달리 취급되어야 한다. 튼튼한 세탁기와 자동차는 주인이 24시간 밤낮없이 돌리고 굴려도 되지만 노동자는 그렇게 일을 시킬 수 없다. 노동력은 일반 상품과 달리 축적되어 보관되지 않기 때문이다.

흔히 노동법이라 불리는 근로기준법은 이런 노동력 상품의 특성을 반영해 만들어졌다. 그래서 근로기준법은 사업주에게 적절하게 노동시간의 상한을 정하고 노동자의 휴식을 보장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노동 시장에 관해 오랫동안 연구하고 고민한 전문가들 역시 이러한 특징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노동시간을 사용자가 마음대로 늘였다 줄였다 해도 괜찮은 고무줄로 생각하는 것을 보고 감짝 놀랐다. 정부의 요청으로 우리 노동시장의 개혁 방안을 연구한 미래노동시장연구회(아래 연구회)의 연구 결과물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연구회는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 방향의 핵심 과제를 선정하기 위해 고용노동부 장관의 요청으로 만들어졌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등 고용·노동전문가 12인으로 지난 7월 18일 발족했다. 5개월 동안 약 20회의 회의를 진행하고 노·사 심층 인터뷰 등을 거쳐 노동 시장 개혁과제를 권고문 형식으로 발표했는데 그 내용이 노동법의 기본 목적에 배치되고 기업에 입장에 편향되어 노동계가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연구회가 권고안에서 우선 개혁과제로 많은 분량을 할애한 부분은 '근로시간 개혁과제'다. 연구회는 현행 근로기준법의 근로시간 제도는 "같은 시간, 같은 장소로 출근해 퇴근하는 전통적 공장형 노동과정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기"에 디지털 정보 기술의 발달로 일하는 방식이 다양해진 지금의 노동 시장에 맞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연구회는 권고문에서 세부 개혁 과제로 ▲연장근로 관리 기간을 1주에서 월, 분기, 반기, 연간 단위로 확대 ▲선택적 근로제 기간 확대(1개월→3개월) ▲탄력적 근로시간제 시행시 근로자대표와 사전 확정 요건 완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시행 ▲근로일간 11시간 연속휴식 부여 및 야간근로자 보호조치 등 건강 보호 방안마련 ▲근로시간 기록·관리체계 강화 ▲고소득 전문직에 대한 초과수당 적용제외 방안을 마련하라고 정부에 주문했다.

'근로시간 유연화' 밀어붙이려는 윤석열 정부와 여당
 

 
연구회가 진단한 우리 노동 시장의 문제점과 개혁 방안에 윤석열 대통령은 13일 국무회에 발언을 통해 적극적으로 공감했다.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 장관 역시 권고문에 대해 "한자 한자 곱씹어 읽으며 먹먹한 심정이었다"고 공감을 표시했고 "노동 시장을 위한 개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겠다"고 수용 의지를 내비쳤다. 여당 국민의힘은 여기에 더해 13일 원내대책회의에서 현재 30인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까지 허용하던 특별연장근로를 내년에도 계속해서 시행할 수 있도록 근로기준법을 바꾸자고 호소했다.

연구회의 권고안을 기본으로 정부와 여당이 이를 제도화 한다면 앞으로 노동자의 연장근로는 기업의 필요에 따라 1주 단위가 아닌 한 달 혹은 6개월, 더 길게는 1년 단위로 관리가 이뤄진다. 현재 통상임금에 1.5배를 가산해 지급하는 연장근로 수당이나 휴일근로 수당 대신 근로시간 저축계좌에 초과수당만큼 휴가가 적립될 것이다.

권고안에 따르면 노동자가 회사에 육아나 학습, 가족 돌봄의 이유로 출퇴근 시간의 조정을 요구할 수 있다. 정부의 정책 방향을 설계한 미래노동시장 연구회가 만나 의견을 수렴했다는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IT 대기업의 일부 노동자들은 높은 기술력으로 경쟁우위가 있는 만큼 시간선택에 있어서 회사로부터 자율성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노동자가 일하는 제조업 등 중소기업의 노동현장에서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일터를 넘나들며 유연하게 일하고 싶어 하는 기업과 노동자들의 수요 때문에 불가피 하다는 것인데 정말 그럴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여전히 사업주들은 집단적으로 소속 노동자를 규율하고 싶어한다. 출퇴근 시간 관리조차도 제대로 되지 않는 인사노무 역량으로 기업이 과연 다양한 노동자들의 근로시간 선택 욕구를 충족시키며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연장근로 시간 관리 방식 변경과 근로시간 저축계좌가 결합하면 실질적으로 탄력적 근로 시간제를 1년으로 늘리는 결과가 될 것이다. 그동안 대기업이 줄기차게 요구한 내용이다. 해당 기간 평균적으로 1주 12시간을 충족하면 특정주에는 1주 12시간을 초과해 연장근로를 시킬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인데 그렇게 연장근로한 수당은 근로시간계좌에 저축해 필요할 때 꺼내 쓴단다. 인력 부족으로 법으로 보장된 연차휴가도 제대로 못 쓰는 현실에서 그림의 떡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장시간 압축적으로 노동하고 실질임금은 감소하게 될 것이다.

'근로시간 유연화' 시도는 두 가지 지점에서 퇴행적이다. 먼저 근로시간 유연화는 노동법의 핵심 목적과 배치된다. 노동법의 핵심 목적은 결코 상품으로 취급될 수 없는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확보하고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하여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연구회의 권고안에 따르면 1일 최대 노동시간은 11시간 30분이다. 하루 24시간 중 11시간 연속휴게가 보장돼야 하고 근무시간 13시간 중 휴게시간이 4시간 마다 30분씩, 총 1시간 30분이 주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기업의 필요에 따라 1주에 6일을 연속해서 일한다고 가정하면 1주 동안 최대 69시간을 일하게 된다.

이를 기준으로 게임개발업체가 업무특성에 따라 1년을 단위로 연장근로를 관리한다 가정해 보자. 1년간 허용되는 총 연장근로 시간은 권고안에 따라 440시간이다. 회사에서 게임 출시 압박으로 1년 중 특정 주에 집중해 연장근로를 권하면, 노동자는 1주일에 69시간(법정 근로시간 40시간+연장 29시간)씩, 약 15주간(440시간÷1주 최장 29시간) 일해야 할 수도 있다. 

계절적 요인으로 3개월 단위로 연장근로를 관리하는 냉난방기 업체라면 3개월에 허용되는 총연장 근로시간은 권고안에 따라 140시간이 된다. 이를 1주 최대 29시간의 연장근로 가능 시간으로 나누면 약 4.8주로 4주를 초과하여 5주 가까이 1주 69시간씩 일을 시킬 수 있다.

이는 정부가 뇌혈관 및 심장질환으로 사망한 노동자의 죽음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만성 과로 기준을 초과하는 노동강도다. 산재보험의 과로 인정기준에 따르면 ▲발병 전 4주 동안 1주 평균 64시간 이상 근무 ▲발병 전 12주 동안 1주 60시간 이상 근무를 했다면 반증이 없는 한 산업재해로 인정된다.

사람의 몸이 특정 시간에 격렬하게 일하고 나머지 시간에 푹 쉰다고 컨디션이 제자리로 돌아오나? 고무줄이나 용수철도 탄성한계를 넘어서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탄성한계에 해당하는 산재 인정기준을 넘어서는 근로시간을 허용하면서 노동개혁이라 부른 것은 명백한 모순이다.

균형 잃고 기업 요구만 담은 권고안
  

  전경련은 근로시간 유연화 제도 개선방안 건의서를 통해 윤석열 정부에 근로시간계좌제나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를 제시했다.

 

 

 

연구회의 권고안이 재벌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단체의 이익만 편향적으로 반영했다는 점은 또 다른 문제다. 재벌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올해 초 매출 상위 500대 기업의 인사 노무 관리자를 대상으로 윤석열 정부의 노동공약에 대한 의견 조사를 벌였다. 약 129개 사 인사 노무 관리자가 응답했고 그 결과 새 정부가 가장 먼저 다루어야 할 노동현안으로 '근로시간 유연화'(27.9%)를 꼽았다.

근로시간 유연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정책을 묻는 말에 응답자들은 '탄력적·선택적 근로 시간제 정산 기간을 1년으로 확대' 해야 한다는 의견을 가장 많이 제시했다(55.8%) . 그 다음으로 '특별연장근로 사유 확대 및 절차 간소화'(20.9%), '근로시간저축계좌제 도입'(18.6%), '전문직 직무, 고액연봉 근로자에 근로시간 규제 적용제외'(3.9%)를 꼽았다.

전경련은 이를 바탕으로 올해 6월 '근로시간 유연화를 위한 제도개선 건의서'를 만들었다. 핵심 내용은 ▲근로시간 정산 기간을 자율적으로 정해 연장근로 한도의 적용을 제외 ▲탄력적 근로 시간제를 현행 6개월에서 1년으로 확대 ▲유연근로제 시행 시 근로자대표 합의 요건 완화 등이다. "기존 근로제도가 공장형 노동을 배경으로 설계되었다"라는 등 건의문 배경의 문구까지 연구회가 발표한 권고문의 내용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이 기묘한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연구회는 권고안의 근거로 근로자 근로시간 인식조사도 내세웠다. 전국의 19~70세 노동자 3000여 명을 대상으로 표본 조사한 결과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근로시간에 대한 자기 결정권 존중의 요구가 높았다"라며 근로시간 유연화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소속 사업장 노동조합 조합원 26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에서 응답자의 80% 이상이 윤석열 정부의 유연근무제 확대 등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에 대해 "노동자의 자율적 선택권보다 노동시간에 대한 사용자의 재량권을 확대할 우려가 크다"라고 답한 점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이 조사에서 노동자 10명 중 8명 이상은 월 단위 연장 노동시간 규제 정책과 근로시간저축계좌제 도입에 대해 "업무량이 적을 때 쉬거나 적게 일 할 수 없을 것"이라며 회의적 반응을 나타냈다.

이처럼 주 단위를 넘어서 일정 기간을 정해 연장근로 시간을 관리하는 것을 총량규제라 하는데 프랑스와 같은 유럽선진국에서 활용된다. 노동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연장근로 시간 관리제에 대해 "유럽의 경제 선진국들의 실노동시간이 우리보다 훨씬 짧고(프랑스의 경우 1주 35시간) 줄어든 노동시간에 대한 임금을 각종 복지혜택의 '사회임금'을 통해 보전하고 있기에 효과를 볼 수 있다"라고 지적한다. 정부의 실근로시간의 단축 없는 무분별한 총량규제 방식 도입 시도에 대해 "장시간노동을 방치하며 실질임금의 삭감 결과만 가져올 것"이라 비판했다(권오성 성신여대 법학과 교수,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 교수).

노동법의 기본 목적을 망각하고 노사 이해당사자 중 일방에 치우친 연구회의 근로시간 유연화 권고는 시급히 철회되어야 한다.

 

 

 

이동철(leeseyha00)

 

 

덧붙이는 글 | 이동철 기자는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조직확대본부 부천노동교육상담소에서 일합니다.